앨범 정보
- 그 봄을 아직 기다립니다 (뮤지션 유니온 세월호 기억앨범)
- 뮤지션유니온
- 앨범 평점 3.5/ 24명
- 발매일 : 2015.04.13
- 발매사 : (주)디지탈레코드
- 기획사 : 뮤지션유니온 (Korea Musician's Union)
벌써 1년이다. 기억하건대, 2014년 4월 16일은 수요일이었다. 마침 그날은 저녁 생방송밖에는 없는 일정. 푹 자고 일어나서 텔레비전을 켰을 때만해도, 나는 전원 구조라는 단어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벌어진 일련의 결과는 거대한 참사였다. 304명의 목숨이 세월호와 함께 그대로 침몰했고, 국가 차원에서의 구조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면서 저 바다 밑에서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두려움, 슬픔,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다시 한번 상상하려 애써봤다. 아, 인간의 공감 능력이란 이렇듯 보잘 것 없고 유약한 것이로구나. 나는 그들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편하게 앉아 글이랍시고 끼적거리는 내가 그들의 고통을 상상해본다니, 상상만으로도 무거운 죄를 짓는 심정이다.
2014년 4월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유가족들의 눈물만 쌓여가는 와중에 유가족들을 배제한 결정으로 어떻게든 유야무야하려는 꼼수만이 도처에서 난무하고 있다. 설령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유가족들의 곁에 서서 힘을 보태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우리 사회의 일부는 그들에게 ‘종북’이나 ‘좌빨’이라는 낙인을 찍고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수많은 개별적 생명들의 고귀한 가치가 전근대적 진영 논리에 함몰되어버리고 있는 비극적인 풍경. 대체 여기에 왼쪽, 오른쪽이 왜 끼어드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영혼마저 골절된 세월호 이후의 비뚤어진 세계다.
얼마 전에 봤던 세월호 관련 영상에서 한 유가족은 “이 나라 어른들의 밑바닥을 봤다”고 말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사죄해야 마땅할 일이다. 그녀의 말처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희망이란 없어 보인다. 도처에 지옥들만이 산재해있다. 아니다. 인간의 목숨 따위, 경제 회복이라는 마법의 주문만 있으면 얼마든지 거래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나는 음악의 힘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확언컨대, 의식주가 비로소 해결되고 난 다음에야 음악은 저 자신의 자리 하나쯤 겨우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음악이 주는 커다란 위로의 기능이 있다고도 믿는다. 음악을 듣다가 눈물 흘렸던 기억, 그 눈물로 인해 뭔가가 씻겨나가는 듯했던 경험, 다들 한번 씩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대개가 이중적이다. 이 앨범을 천천히 쭉 들어보면서 두 가지를 모두 껴안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봤다.
음반에 실린 음악들이 유가족들에게 과연 어떤 위안을 줄 수 있을까. 형언할 수 없을 슬픔에 빠져있을 그들에게 음악이라는 것이, 과연 다가갈 수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음악들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부디 1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여기에 담겨진 노래들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타임캡슐이다. 음악적인 성취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치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 음악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임을 약속하고, 또 약속한다. 이 글은 약속을 위한 나만의 첫 번째 징표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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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저 바다 밑에서 하염없이 구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두려움, 슬픔, 외로움 같은 감정들을 다시 한번 상상하려 애써봤다. 아, 인간의 공감 능력이란 이렇듯 보잘 것 없고 유약한 것이로구나. 나는 그들의 고통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편하게 앉아 글이랍시고 끼적거리는 내가 그들의 고통을 상상해본다니, 상상만으로도 무거운 죄를 짓는 심정이다.
2014년 4월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유가족들의 눈물만 쌓여가는 와중에 유가족들을 배제한 결정으로 어떻게든 유야무야하려는 꼼수만이 도처에서 난무하고 있다. 설령 유가족이 아니더라도, 유가족들의 곁에 서서 힘을 보태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가. 우리 사회의 일부는 그들에게 ‘종북’이나 ‘좌빨’이라는 낙인을 찍고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비난을 퍼붓고 있다. 수많은 개별적 생명들의 고귀한 가치가 전근대적 진영 논리에 함몰되어버리고 있는 비극적인 풍경. 대체 여기에 왼쪽, 오른쪽이 왜 끼어드는 것인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영혼마저 골절된 세월호 이후의 비뚤어진 세계다.
얼마 전에 봤던 세월호 관련 영상에서 한 유가족은 “이 나라 어른들의 밑바닥을 봤다”고 말했다.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부끄럽고, 사죄해야 마땅할 일이다. 그녀의 말처럼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희망이란 없어 보인다. 도처에 지옥들만이 산재해있다. 아니다. 인간의 목숨 따위, 경제 회복이라는 마법의 주문만 있으면 얼마든지 거래 가능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일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음악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곱씹어보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나는 음악의 힘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확언컨대, 의식주가 비로소 해결되고 난 다음에야 음악은 저 자신의 자리 하나쯤 겨우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음악이 주는 커다란 위로의 기능이 있다고도 믿는다. 음악을 듣다가 눈물 흘렸던 기억, 그 눈물로 인해 뭔가가 씻겨나가는 듯했던 경험, 다들 한번 씩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대개가 이중적이다. 이 앨범을 천천히 쭉 들어보면서 두 가지를 모두 껴안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봤다.
음반에 실린 음악들이 유가족들에게 과연 어떤 위안을 줄 수 있을까. 형언할 수 없을 슬픔에 빠져있을 그들에게 음악이라는 것이, 과연 다가갈 수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 음악들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부디 1년이 흐른 지금,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필사적으로 지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필사적으로 기억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여기에 담겨진 노래들은 기억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타임캡슐이다. 음악적인 성취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 작품이 갖고 있는 가치가 하나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이 음악들을 소중히 간직할 것임을 약속하고, 또 약속한다. 이 글은 약속을 위한 나만의 첫 번째 징표다.
글, 배순탁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