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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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앨범 평점 4.5/ 47명
  • 발매일 : 2012.11.09
  • 발매사 : ㈜위프엔터테인먼트
  • 기획사 : ㈜위프엔터테인먼트
여백을 노래하다, 피네
 
2012년 겨울, 피네가 첫 번째 싱글앨범을 발매했다. 음악용어로 fine는 끝을 이야기하지만, 소리 내서 불러보면 무엇가가 피어오르는 이미지가 선명한 이 밴드는 임은철(건반), 조정빈(보컬, 베이스), 오평화(보컬, 기타) 3인조로 구성된 밴드이다. 피네의 첫 앨범은 작사, 작곡, 믹싱뿐만 아니라 앨범 아트웍까지 손수 제작하여 인디(independent) 음악에 가장 근접한 독립성을 보여준다. 이에 더불어, 보이스 오브 코리아로 이름을 알린 우혜미와 비둘기우유의 이용준이 피쳐링으로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 한 지점이다. "Intro"와 타이틀곡인 "Home"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은 잘 만들어진 여백의 세계를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너무나 익숙한, 시작처럼 낯선 "intro", 미니멀한 반주와 함께 짙게 깔리는 우혜미의 목소리가 '너무나 익숙한, 시작처럼 낯선'이란 모순의 감정을 조용히 읊조리며 노래는 시작된다. 해마다 내리는 그러나 또 처음처럼 기다리는 한 겨울의 첫눈처럼. 첫눈은 첫눈답게 하얗게 내려서 쌓이고, 녹았다 다시 얼고, 밟히고, 뭉개지기를 반복하며 결국엔 회색으로 변해간다. 곡의 중반부로 갈수록 고조되는 연주는 시간의 풍화처럼 우리의 감정을 어둡게 만들어간다. 끝없이 어두워질 것만 같던 색은 다시 곡의 후반부에서 정리되고, 하얗지도 검지도 않은 어떤 감정에 다다르게 된다. 회색의 감정, 있었다가 없어진, 그 곁에 다시 있는 여백의 감정. 단순히 형용모순이 아니라, 정말로 너무나 익숙하고 시작처럼 낯선 겨울의 문턱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유 없이 조금은 서러운 마음으로.
 
요람과 무덤 "home", 집이란 어떤 공간인가. 우리가 태어나고 죽으며, 만났다 헤어지고, 나갔다 돌아오는 모든 검은색과 흰색들이 한데 어우러진 장소가 바로 집이다. 흑과 백의 변주가 가장 자유롭게 이어지는 공간인 것이다. 곡의 초반은 무겁고 어두운 느낌이 짙지만, 곡의 중반에서 베이스 연주가 시작되며 다소 무거웠던 느낌이 중화되는 지점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잎이 모두 떨어지고 땅이 얼고, 모든 생물들이 영영 끝날 듯이 사라지는 겨울의 초입이 또다시 생명이 약동하고, 얼음이 녹고, 꽃이 필 찾아올 봄을 준비하는 늦겨울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가듯. 
 
이토록 아름다운 회색의 세계 'fine',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집이라는 공간과 시작과 끝이 혼재하는 겨울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유사성으로 맺어진 비유만은 아닐지 모른다.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계속될 fine의 음악적 궤도를 예상할 단서라면 너무 앞서나간 것일까. 피네의 차분한 연주와 목소리를 통하여 그려낸 이 회색의 세계는 멜랑콜리도, 알 수 없는 낙관주의도 모두가 어우러질 수 있는 그런 세계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앞으로가 훨씬 더 많이 기대가 되는 밴드이다.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fine만의 회색의 세계엔 아직 많은 여백이 존재한다. 더 많은 것들이 틈입하여 좀 더 풍성한 음악으로 sempre하길 기대해본다.
 
너무 아름다운 회색이란 때로 백색보다 순수하고 검은색보다도 깊다. - 자유기고가 장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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