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정보
- Dataspace
- Radiofear
- 앨범 평점 5/ 2명
- 발매일 : 2021.12.01
- 발매사 : YG PLUS
- 기획사 : EMA Recordings
Radiofear [Dataspace]
‘일렉트로닉 뮤직’은 상당히 많은 종류의 음악을 포함하지만, 대개 ‘일렉트로닉’이라 느슨하게 구분되는 음악이 있다. 전자 음악임이 분명한데 댄스 음악만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며, 주로 루프 위주의 댄스 트랙보다 노래의 꼴을 갖지만 댄스 팝이나 신스 팝과는 다른, 특히나 곡의 ‘일렉트로닉’한 요소가 그 노래의 관습적 기승전결을 앞서는 경우다. 바로 춤추기보다 귀를 기울여 듣게 되고, 흘러가기보다 순간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Dataspace]는 프로듀서이자 DJ인 Radiofear의 데뷔 EP다. 모듈러 신시사이저나 드럼머신으로 커버를 장식하진 않았지만, ‘Data’와 ‘Space’를 합친 데이터 공간이란 음반명에서 은근한 지향점이 이미 드러난다. 전자 음악은 음률 이전에 소리를 다루는 작업에 가깝고, 그 소리를 대하는 절차는 연주와 별개로 데이터를 취급하는 일과 상당히 흡사하다. 신시사이저 프리셋을 하나씩 눌러보든, 파라미터 간의 상호관계를 따져가며 직접 소리를 다듬든 수집과 관찰의 절차를 거치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의의 ‘일렉트로닉' 음악가라면 그 과정을 완전히 건너뛰기는 어렵다.
Radiofear는 그런 일을 벌이는 가상의 공간을 가정했다. 그는 도시를 항해하는 외계 기체의 기장이며, 그 기체에는 수많은 데이터가 탑재되어 있다. 그리고 [Dataspace] EP의 네 수록곡은 그 공간(‘Dataspace’)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음악적 재현이다. 첫 트랙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공간을 지나며” 데이터를 나열하고(‘Ice’), 이어서 “소용돌이를 마주하다가(‘Vortex’)”, 공중에서 유유히 사라진다(‘Levitation’). 가상의 공간일지언정 얼음과 소용돌이는 즉물적인만큼 그 소리는 정직하고 또한 그 본질에 가깝다. 공간계 이펙터 사용이나 개별 소스 모듈레이션은 충분하지만, 이를테면 로파이나 아날로그적 온기 혹은 웨어하우스 사운드 같은 접근에 근거한 과한 가공보다 본래 신시사이저의 고유한 전자적 특성을 살렸다. 시원하게 열리는 필터, 차가우면 차갑고 현대적이면 현대적인 대로 단단히 잡힌 리드와 아르페지오, 과장되기보다 제 자리에 머무는 저역의 차분함으로 균형 잡힌 소리를 낸다. 그런 자연스러움 또한 ‘라우드니스 워’ 시대의 댄스 음악보다는 흐름에 따라 변화해온 ‘일렉트로닉’의 진화에 부합한다.
다만 테크노의 탄생을 ‘완벽한 실수(Complete Mistake)’라 언급한 벨빌 3인방 중 일원의 말처럼, 이 EP는 개인의 상상과 연구로 구축한 ‘일렉트로닉’ 음악으로서 테크노이자 댄스 음악의 가능성을 갖는다. 디트로이트 교외의 지하실과 라디오 스테이션, 신시사이저로 요약할 수 있는 테크노의 시작은 여름철 테크노 페스티벌보다 YMO의 ‘Technopolis’ 혹은 Kraftwerk의 ‘Techno Pop’이 표현하는 음악적 태도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단, 그 완벽한 실수(?)에서 비롯된 시퀀서의 반복적 멜로디와 투박한 드럼 머신 리듬에서 댄스 음악의 가능성이 발견된 셈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지금의 댄스 플로어를 말하는 데 있어, 테크노와 그 형제 격인 일렉트로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101, 303, 808, 909라는 숫자만으로 설명이 충분한 전자악기들이 바로 그런 댄스 음악의 주요한 골격이 됐다. 넷 다 스스로 시퀀스를 짤 수 있으며, 드라이브와 궁합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Dataspace]가 ‘일렉트로닉’인 동시에 댄스 음악의 인상을 지닌 큰 이유 또한 그런 계열의 소리와 패턴을 적극적으로 한편 담담히 사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뼈대 위에 쌓은 패드의 “이모셔널함”은 Radiofear의 취향이자 의도다. 누군가에겐 85 BPM의 음악이 길게 울리는 서브 베이스와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로 인해 댄스 음악일 수 있듯, Radiofear의 댄스 음악 또한 저만의 색이 확실하다.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두운 공간 속에 비치는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은 전자적 소리 특유의 고양감과도 연결된다.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음색이기에 낯설고 무궁무진한 그 ‘일렉트로닉 사운드’ 말이다. 그렇게 이 [Dataspace]의 우주선은 어디로든 갈 준비를 마쳤다. 스튜디오든, 지하실이든, 댄스 플로어든.
글/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DJ)
Written & Produced by Radiofear
Mixed by Go Dam
Mastering by Kim Kate @ Mad Flux Audio
Artwork by Hyuntae Jung
p) 2021 EVO, EMA record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