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통해 엿보는 프로듀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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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통해 엿보는 프로듀서의 역할

2019.11.06
Special

대화를 통해 엿보는 프로듀서의 역할

며칠 전에 한 지인과 간단하게 술 한잔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엔 음악과 오디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이번 원고에서는 그 대화 중 일부를 정리해 소개해 봅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가 "프로듀서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서촌] 앨범과 그다음 앨범이 왜 그렇게 판매량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런 LP를 사는 사람은 결국엔 음질이고 음질의 차이 때문에 판매량에 차이가 나는 겁니다." 이 이야기에 마치 내 마음을 떠보는 듯 또다시 질문이 들어옵니다.

"어떻게 차이가 날까요?"

(이후부터는 모두 한지훈 필자의 대답입니다. 편집자 주)

"어느 스튜디오나 그 스튜디오 특유의 소리가 있어요. 가장 대표적인 게 리버브죠. 한 사람이 똑같은 악기로 똑같은 곡을 연주한다고 하더라도 어떤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스튜디오는 그게 좋은 의미든 안 좋은 의미든 우리나라에서 잔향이 길기로 세 손가락 안에는 드는 스튜디오예요. 여기까지는 뭐 그러려니 하죠. 이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니까요."

"내가 장담하건대 두 번째 앨범은 원래 엔지니어가 믹싱/마스터링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했습니다. 소리가 달라요. 최 대표는 최 대표 특유의 소리가 있어요. 일단 5㎑ 정도에서 Q값을 높여서 한 번 부스트 시키고, 8㎑ 정도에서 Q값을 낮춰 부스트 시켜요. 그리고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경우엔 프란스(프란스 반 호벤: 베이시스트)가 튜닝을 약간 낮게 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장력이 약하니 볼륨이 좀 작아요. 그렇기에 마이크 게인을 좀 높여야 하는데 그럼 부밍이 발생하죠. 그래서 프란스는 컴프(컴프레서)를 써요. [서촌] 앨범은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근데 그 다음 앨범은 그런 소리가 아니더군요."

"그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화려한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최 대표의 소리는 색조화장까지는 아니더라도 물광 화장 정도는 낸 소리예요. 그렇기에 B&W나 ATC처럼 모니터 성향이 강한 스피커에서도 너무 건조하거나 딱딱하지 않게 들을 수 있죠. 그런데 그다음 앨범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어요. 분명히 다른 사람이 작업한 소리입니다."

"이런 시그니처 소리는 장단점이 있어요. 피아노도 타현악기이긴 하지만 솜뭉치로 치기에 울림은 많이 억제되죠. 하지만 울린 그 자체가 소리인 현악기는 울림이 많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작업하면 피아노는 꽤 그럴듯한 소리가 들리지만 현악기 역시 세팅을 이렇게 하고 작업하면 음질에 관해서는 그리 좋은 평을 듣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스튜디오의 리버브가 너무 길기 때문이죠. 물론 악기에 따라 세팅을 달리하기에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공간을 넘어설 수 있는 세팅은 없죠."

"그리고 또 하나. 이번 앨범 작업할 때에도 프란스는 자기 악기 안 가져왔고, 로이(로이 다커스: 드러머)는 스네어는커녕 자기 심벌도 안 가져왔을 거예요. [서촌] 앨범 작업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더구나 곡도 제대로 안 외워오고 해서 제가 너희들 계약 위반이라고 난리 피운 후에야 그다음 날 제대로 녹음했잖아요.

피아노는 좀 오버라고 하더라도 베이시스트가 베이스 들고 오고, 드러머가 심벌, 스네어, 그리고 페달 들고 다니는 건 상식 중의 상식입니다. 근데 소리의 느낌은 남의 악기 가지고 연주한 느낌이에요. 멤버들의 곡에 대한 이해도는 [서촌] 앨범보다도 더 떨어지는 느낌이고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프로듀서 없이 [After Hours] 같은 앨범 만든 느낌이죠. 문제는 일반적으로 [After Hours] 앨범은 멤버들 간에 눈빛만으로도 곡을 선곡하고, 언제 어디서든 임프로비제이션이 가능한 곡으로 연주를 해야 하는데, 그 앨범은 뭐랄까요? 악보를 따라가기에 급급한 느낌이었달까요?"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이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어요. [서촌] 앨범 작업을 할 때에도 저는 녹음할 때 프로듀싱만 했지 믹싱/마스터링 때 직접 기계를 만진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그다음 앨범은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앨범이고요. 하지만 제가 들었을 때의 느낌은 그랬습니다."

"한 가지 당부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만 이렇게 소리 듣는 거 아니에요. 남들도 똑같이 듣습니다. 다만 나처럼 표현하지 못할 뿐이에요. 그러니 앨범 작업할 때에는 연주자의 마음으로 지금보다 더 신경 써서 작업해야 해요. 최 대표야 매일매일 녹음이 일인 사람이지만 최 대표 앞에 서는 사람들은 최 대표 앞에 서기 위해 몇 년을 준비한 사람들이에요. 내가 이번 책 내면서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전에도 프로듀서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고, 몇몇 기억하면 좋을 프로듀서의 작품들도 소개하는 글을 썼었는데요. 저는 위의 대화가 프로듀서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연주자의 특성을 파악하고, 곡을 파악하고, 녹음실의 장비를 정비하고 등등의 일 말이죠. 이외에도 많은 일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위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기에 Flemming Rasmussen에서 Bob Rock으로 바뀐 것만으로 Metallica는 전혀 다른 밴드가 되었고요.

오늘은 대화로 풀어본 프로듀서의 역할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11월 9일 오후 2시에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북 토크쇼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