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아솔 R&B의 완성판 - 브라운 아이드 소울 [The Wind, The Sea, The Rain] (2007)

매니아의 음악 서재

브아솔 R&B의 완성판 - 브라운 아이드 소울 [The Wind, The Sea, The Rain] (2007)

2019.08.14
Special

브아솔 R&B의 완성판 - 브라운 아이드 소울 [The Wind, The Sea, The Rain] (2007)

이것 또한 다소 관성이었다고 본다. 명반 리스트를 집계하면 언제나 거의 자동적으로 브라운 아이즈(Brown Eyes)의 1집 [Brown Eyes]가 이름을 올렸던 결과 말이다.

나는 지금 브라운 아이즈 1집을 내리깎으려는 게 아니다. 이 음반, 정말이지 훌륭하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R&B라는 장르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브라운 아이즈 1집의 가치는 영원불멸일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포스트-브라운 아이즈라 할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음반이 철저히 외면받아온 역사를 보충할 수는 없다. 이 점이 중요하다.

글 | 배순탁 (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Album

브라운 아이드 소울 [The Wind, The Sea, The Rain] (2007)

The Wind, The Sea, The Rain

곡리스트 19


장고 끝에 2집 [The Wind, The Sea, The Rain]을 선정했다. 물론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누군가는 1집에 손을 내미는 와중에 또 다른 누군가는 3집을 더 높게 칠 수도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한데, 딱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역시 2집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1집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2집은 이 출발을 완성의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본격적이다. 앨범 단위로 치자면 한결 더 탄탄하고, 체계화된 결과물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음반은 크게 3부분으로 나뉜다. 'The Wind' 이후가 1부, 'The Rain' 이후는 2부, 그리고 'The Sea'로 3부가 시작된다. 과연, 내용이 형식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잠언 그대로다. 이렇게 틀을 잡아두면 아무래도 전체 완성도에 (그것이 조금에 그칠지라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1집과 2집의 차이를 넘어 2집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인 중 하나다. 물론 브라운 아이드 소울 커리어 사상 최고의 오프닝은 1집의 '북천이 맑다커늘'이라고 확신하지만 이거 하나로 대세에 지장을 주기는 어렵다.

만약 당신이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세계를 딱 한 곡으로 어림짐작하고 싶다면 '바람인가요'를 선택하면 된다. 이 곡 하나에 브라운 아이드 소울 음악의 유전자 정보가 다 들어있는 까닭이다. 여기에는 발라드에 가까운 소울이 있고, 근사한 편곡이 있다. 2분 24초 즈음에 들을 수 있는 능란한 조바꿈은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구간이다. 하나 더 있다. 곡 후반부의 피아노와 동글동글한 톤의 기타 연주다. 재즈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My Story'는 '바람인가요'에 비하면 훨씬 더 "가요적"이다. 뭐, "가요적"이라는 게 대체 어떤 음악을 뜻하냐고 되묻는다면 이런 대답을 던져줄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제작자였다고 해도 이 곡을 첫 싱글로 무조건 밀었을 거라는 뜻이다. 이 곡에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은 4분 30초라는 딱 적당한 시간에 부드러우면서도 인상적으로 고저를 오르내린다. 멤버들의 보컬은 각각의 개성이 분명한 가운데 장기인 하모니를 뽑아내고, 그 와중에 나얼의 개인 기량 발휘 타임을 잊지 않는다. 전형적이어서 도리어 더 좋은,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대표 싱글이다.

사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1960년대 모타운 레코드(Motown Records)과 1970년대 필라델피아 소울의 역사를 조금은 알고 있어야 한다.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모타운은 흑인 소울의 대중화에 불을 댕긴 레이블이다. Stevie Wonder, Michael Jackson, Diana Ross, Marvin Gaye, The Temptations 등의 위대한 이름들이 다 여기 출신이다.

반면, 필라델피아 소울(줄여서 "필리 소울")이라는 장르는 소울의 고급화에 앞장선 것으로 기억된다. 필리 소울의 대표 레이블인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 레코드(Philadelphia International Records)는 스트링과 혼 세션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장르의 고급화에 앞장섰다. 마치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음악이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The O'Jays의 'Back Stabbers'나 MFSB의 'TSOP (The Sound of Philadelphia)' 같은 곡을 감상해보면 바로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수록곡들로 설명해볼까. '꿈', '추억 사랑만큼', 'Life & Love Are The Same'에서 우리는 그 결은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관악기 연주를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정인이 참여한 'Life & Love Are The Same'의 매혹적인 바이브와 보컬 하모니가 단연 압권이다. 만약 관악 아닌 현악 연주를 만끽하고 싶다면 'My Story'를 비롯해 '그대와 둘이', '기다려요' 등을 골라 감상하면 된다.

음악에 저급과 고급 따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브라운 아이드 소울 유의 음악을 우리가 "고급지다"라고 인식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대중음악을 포함한 문화에서 그것을 향유하는 소비자에게 "나는 좀 달라"라는 느낌을 심어준다는 건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기실 이것은, 우리가 문화를 소비하는 바로 그 이유이기도 할 테니까.


연관 아티스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