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미손에 이은 또 다른 복면 래퍼, Leikeli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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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손에 이은 또 다른 복면 래퍼, Leikeli47

2018.11.27
Speical

마미손에 이은 또 다른 복면 래퍼, Leikeli47

우리나라 전체를 휩쓸고 간 복면 래퍼 마미손. 계획대로 되고 있다는 말을 계속 되뇌지만, 아무도 그의 계획은커녕 정체조차도 알지 못한다(?). 마미손과는 맥락이 전혀 다르지만, 복면을 쓴 음악가가 전례가 없진 않다. 록 밴드나 DJ, 프로듀서 쪽으로 넘어간다면 이런 콘셉트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단, 힙합 신에서는 MF Doom을 제외하면 흔하지 않은데, 최근 복면을 쓴 모습 말고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래퍼가 등장했다. 바로 Leikeli47이다.

장난이 아니다. Leikeli47은 베일에 꽁꽁 싸여 있다. 그녀(일단 여성이다)는 'F**k The Summer Up'이라는 트랙을 시작으로 2014년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이 곡은 스트리밍 사이트 Tidal에서 Jay-Z의 이름을 달고 나온 "Jigga'sFxxk the Summer Up"이라는 플레이리스트에 첫 번째 트랙으로 실리기도 했다. 그 리스트의 두 번째 트랙인 'L$D'의 A$AP Rocky, 세 번째 트랙인 'White Iverson'의 Post Malone을 비롯해 Young Thug, Future 등 쟁쟁한 빅 네임을 모두 제치고 차지한 첫 번째 자리였으니 꽤나 큰 유명세를 얻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Leikeli47에 관한 정보를 전혀 알지 못한다. 표면적으로 알 수 있는 건 그저 소속 레이블이 RCA Records라는 것뿐이다.

Leikeli47은 SNS를 전혀 하지 않는다. 인터뷰에 출연할 때는 늘 얼굴을 가리는 스키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임했다. 복면을 벗지 않는 건 뮤직비디오에 등장할 때도,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그녀에게 복면과 복면을 쓰는 행위는 많은 의미를 지닌다. HIGHSNOBIETY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Leikeli47은 어릴 때 무척이나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부끄러움을 많이 탔고,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자연스럽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럴 때마다 내면에서 자신을 찾았다고 한다. 결국, 자신의 분출구로 음악을 선택했다. 음악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낸다는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음악으로만 바라봐 주기를 바람으로 복면을 쓴다고 한다. 인터뷰에서는 음악 안에서만큼은 숨기는 것 없이 모든 걸 보여주기에 사실상 가면을 쓰고 있지 않은 셈이라고 능청스럽게 말한 바 있다. 물론, 여전히 부끄럼을 타기에 무대에 설 때 복면이 도움이 된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비주얼이 범상치 않은 만큼 음악 또한 그렇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자라온 Leikeli47은 The Notorious B.I.G.나 Jay-Z와 같은 래퍼에게도 크게 영향을 받았지만, 다양한 음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Michael Jackson이나 Stevie Wonder와 같은 흑인음악 계열의 팝 아티스트들부터 Red Hot Chili Pepper나 Bob Dylan, Greenday까지, 음악적 스펙트럼이 비단 한두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을 다채롭게 들어왔기에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항상 머릿속에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담아두었다고 한다. 이제는 기술적인 여력이 생겨 그걸 실제 음악으로 풀어낼 뿐이다. 예를 들어, 'C&C'에서는 기성 808드럼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입에서 나는 소리만을 조작하여 비트로 만들기도 했다.

지난 11월 14일 발매된 두 번째 정규 앨범 [Acrylic]은 그런 Leikeli47이 이때까지 쌓아온 내공을 모두 담고 있는 앨범이다. 그녀는 어떤 비트에도 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랩을 녹여낸다. 피아노와 드럼뿐인 미니멀한 비트가 강조된 앨범의 두 번째 트랙인 'Acrylic'에서도 지루함 없이 랩을 이끌어 나갈 줄 안다. 직접 프로듀싱에 참여한 'No Reload'에서는 Cardi B를 연상케 할 정도로 쫀득하게 박자를 밀고 당기는 랩을 선보인다. Clyde N Harry가 프로듀싱한 'Girl Blunt'가 단연 절정이다. 잘게 쪼갠 비트 위에서 특유의 단단한 톤으로 툭툭 던지는 듯함과 동시에 찰지게 때려 박는 느낌까지 드는 랩이 일품이다. 이 밖에도 자메이칸 리듬의 'Tic Boom', 락킹함이 청량함을 끌어내는 'Roll Call' 등 Leikeli47은 트랙마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비트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고 랩을 이어간다. 심지어 'CIAA'과 'Hoyt and Schermerhorn'에서는 아예 노래를 하는데, 두 곡도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같은 사람이 부른 게 맞나 싶을 정도다.

Leikeli47의 멋은 내용적인 면에서도 있다. [Acrylic]은 Leikeli47의 첫 번째 앨범 [Wash & Set]과 이어지는 주제를 갖고 있다. 바로 고향 뉴욕, 브루클린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녀는 "Acrylic"이라는 제목에서부터 지난 8월, 중국인이 운영하는 브루클린의 네일 살롱에서 있었던 흑인과 동양인의 갈등을 환기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실제로 길을 걷다 네일샵의 아크릴 냄새를 맡으면 내가 사는 동네에 왔다는 걸 느낀다고. 또, 그녀에게 과장되고 번쩍이는 손톱은 그저 단순 미용을 넘어 여성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스타일을 드러내고 정해진 틀을 벗어남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Leikeli47은 아크릴 그 자체에도 주목한다. 브루클린, 게토 속 삶은 쉽지 않다. 범죄의 영역에 해당하는 안 좋은 일들이 날마다 일어난다. 그녀 역시 부모님 없이 혼자인 삶을 살아왔다. 그러나 고난과 역경은 때론 사람을 단단하게 하고, 반짝이게 하는 법. Leikeli47은 자신의 인생을 아크릴로 표현한다. 2번 트랙 'Acrylic'을 살펴보자. 그녀는 "Walk in and smell the acrylic(걸어 들어오면 아크릴 냄새가 나지)", "Most of the mamas'round here live alone(이곳의 애 엄마들은 대부분 혼자 살아)" 같은 구절이나 경찰에게 조사 당하는 내용 등 그리 밝지 않은 브루클린 여성들의 삶을 그와 대비되는 경쾌한 곡에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렇듯 [Acrylic]은 Leikeli47이 우리를 자신이 살아온 삶의 터전으로 초대하는 메시지다. 복면 래퍼 그 이상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면 당장 [Acrylic]을 들으며 초대에 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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