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ie Eilish, 바다와 꽃과 불로 사랑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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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ie Eilish, 바다와 꽃과 불로 사랑을 노래하다

2018.10.08
Special

Billie Eilish, 바다와 꽃과 불로 사랑을 노래하다

10대 유튜브 스타가 이제는 조금 흔해졌다. 커버곡 혹은 자작곡으로 유명세를 타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하고, 멋진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게 됐다.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큰 주목을 받는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늘 흥미로운 일이다.

지난 8월 15일, 한국을 다녀간 Billie Eilish (빌리 아일리시)도 그렇다. 그는 10대가 되기 전부터 음악을 시작해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나이에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은 BBC Sound Of 2018에 뽑힐 만큼 고유의 감성을 인정받고 있다. 파릇파릇한 10대 시절에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는 중인 Billie Eilish. 그가 부른 사랑 노래 중 오브제, 키워드가 독특한 노래 다섯 곡만을 꼽아보았다.

바다

'Ocean Eyes'

Billie Eilish의 재능은 데뷔 싱글 'Ocean Eyes'부터 빛을 발했다. 2016년 사운드클라우드를 통해 공개된 이 곡은 Spotify에서 1억 1,600 번 스트리밍 되며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스타트부터 어렵지 않게 호성적을 거둔 건 Billie Eilish만의 퓨어한 감성이 곧잘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그저 전 애인과의 화해하길 바라며 만들었다지만, 상대의 눈동자를 깊고 넓은 바다에 빗대며 불안을 말하는 가사 속 표현력이 풍부하다. 한편으론, 서로 다른 감각을 연결할 줄 아는, 공감각에 민감한 편인 게 확연하게 드러난다고도 할 수 있다. 그 어떤 열네 살의 아이가 너무 매력적이라서 그만큼 무척이나 두려운 사랑의 오묘함을 이렇게 온 감성을 다해 노래할 수 있을까?

'Six Feet Under'

'Ocean Eyes'가 드넓은 바다처럼 끝 모르게 퍼지는 푸르른 신스를 담고 있다면, 'Six Feet Under'는 공허한 드럼, 피아노 톤으로 요즘 같은 날씨에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표현한다. 늘 그렇지만, Billie Eilish의 거의 모든 곡을 프로듀싱한 오빠 Finneas O'Connell의 음악적 상상력이 돋보인다고 할까. Billie Eilish는 'Six Feet Under' 같은 데뷔 초창기 곡부터 줄곧 실연을 겪으며 느낀 다양한 감정, 그중에서도 우울을 꾸준히 노래해왔다. 이 곡에서는 상대와 다시 사랑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자신들의 사랑을 무덤이라 부른다. 그 무덤에 비가 내려서 꽃이 필 수 있을지를 되물으며 가능성을 엿본다. 단, 사랑을 희망하는 목소리에서 그 어떤 밝은 기운도 느낄 수 없다. 사랑이 죽는다는 건 마음속에서 한 사람이 죽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서글픈 노래다.

'watch'

앞선 두 곡을 보면 알겠지만, Billie Eilish는 꽤 자주 자신의 감정을 자연적인 속성을 가진 무언가에 비유한다. 라이터로 불을 켜는 소리가 꾸준히 등장하는 'watch'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곡에서 불은 사랑 그 자체다. 이창동 감독의 문제적 영화 <버닝>에서 차가 불타는 마지막 장면이 떠오르는 후렴이 애정했던 상대를 향한 Billie Eilish의 복잡한 감정을 대변한다. 그는 불처럼 번져간 연정으로 자신이 갈망했던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차를 태워버리려 한다. 마치 끔찍이 사랑한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그 말로 역시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만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한없이 뜨겁고 또 한없이 차가운 'watch'는 전자음악적인 속성의 비트를 곧잘 소화하는 래퍼 Vince Staples가 참여한 다른 버전 '&burn'로도 즐길 수 있다. 취향에 따라 골라 들어보자.

머리칼

'my boy'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흔히 말하는 죽음의 5단계는 이별에도 적용된다. 그러니 우울이 음악의 중심이라는 Billie Eilish라고 해서 늘 처절하게만 지나간 사랑을 노래하지 않는다. 'my boy'는 단계로 따지자면 분노에 가까울 수도 있다. 분노한다기보다는 비아냥댄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어쨌든 그는 철없고 거짓말만 하는 자신의 남자에게 조롱하는 언사로 제대로 어퍼컷을 날린다. 그 와중에 자신을 상한 머리칼 다루듯 내버려 두다 단숨에 쳐내버렸다며 상대의 나쁜 태도를 꼬집기도 한다. 내용이 내용이니 'party favor'와 함께 Billie Eilish의 유일한 EP [don't smile at me]에서 몇 안 되는 발랄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곡이다. 만약 전성기 시절 Lily Allen을 좋아했다면 충분히 마음에 들 것이다.

인질

'hostage'

"인질"이라는 제목이 이 곡의 모든 걸 그대로 말해준다. 하지만 내용이 단순히 "너는 나의 사랑의 노예" 같은 식은 아니다. Billie Eilish는 'hostage'에서 상대와 함께 있고 싶어 하면서 혼자이고도 싶어 한다. 도대체 원하는 게 무엇인가 싶을 수 있겠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이라면 충분히 공감할지도 모른다. 혼자 있으나, 같이 있으나 고독한 건 마찬가지지만, 좋아하기에 영영 떠나가지 않고 곁에 남아 달래주길 바라는 조금은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하면 이해가 될까? 상대를 붙잡아서 보물 상자에 숨겨놓고 싶다는 가사가 그런 Billie Eilish의 소유욕을 한껏 말해준다. 인질은 그저 그 욕심을 극대화한 표현일 뿐이다. 이제 겨우 열여섯이지만, 치기와 성숙이 반씩 어우러진 Billie Eilish만이 소화할 수 있는 화법이라고 하면 적절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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