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가격에 숨겨진 하이엔드의 과학, BOSE

매니아의 음악 서재

저렴한 가격에 숨겨진 하이엔드의 과학, BOSE

2018.10.04
Special

대중 친화적 하이엔드, BOSE

그리 많은 나라를 여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나라의 청담 사거리보다 좋은 차가 많은 곳은 두바이가 유일했습니다. 주말에 가볍게 등산이라도 할라치면 왠지 엄홍길 대장님을 따라 칸첸중가라도 올라가야 할 것 같은 옷차림을 셀 수도 없이 접합니다. 남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마음과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장비병이 더해지면서 생기는 일들이죠.

오디오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당 가격이 1억 원에 육박하는 초고가 CD 플레이어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한 조에 몇 억씩 하는 스피커를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집보다 그 집 안에 있는 오디오가 더 비싼 집 역시 부지기수지요. 그런 오디오 시장에서 믿기 힘든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이번 글은 그 주인공인 BOSE와 그 스피커에 어울리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식당이나 카페에 갔는데 음악 소리가 괜찮다고 느꼈다면 그곳에는 아마 BOSE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브랜드의 자동차에 장착되어 있는 오디오 시스템 역시 BOSE 시스템입니다. 이처럼 오디오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분들에게도 익숙한 브랜드가 BOSE인데요.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BOSE 스피커의 플래그쉽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901 스피커조차도 다른 브랜드의 엔트리급 모델보다도 저렴할 만큼 가격이 저렴합니다. 하지만 가격이 저렴하다고 소리까지 저렴한 것은 아니지요. BOSE 901에는 엄청난 과학이 숨어있습니다.

BOSE 901 스피커의 그릴을 벗겨보면 앞쪽에 하나, 뒤쪽에 여덟 개의 스피커 유닛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요. 음향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콘서트홀의 소리 비율을 소스로부터 직접 듣는 비율과 반사된 음을 듣는 비율을 조사했는데 우리가 듣는 소리는 반사된 음이 89%에 이르고 소스로부터 직접 듣는 소리는 단 11%에 불과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죠. 즉 1/9만큼의 소리는 직접 들리게 스피커의 전면에 유닛을 배치하고, 8/9만큼의 소리는 반사된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의 뒷면에 유닛을 배치한 겁니다(이렇게 반사된 소리를 듣는 방식의 스피커를 리플렉팅 스피커라고 합니다. 필자 주).

또 다른 특징으로 BOSE 901의 스피커 유닛은 모두 같은 유닛을 사용합니다. 일반적인 2웨이 스피커가 미드우퍼 + 트위터의 조합이고, 3웨이 스피커인 경우 우퍼 + 미드레인지 + 트위터의 조합인데 비해 BOSE 901에는 모두 똑같은 4.5인치 풀레인지 유닛이 9개 장착되어 있죠. 그렇기에 스피커의 재생 주파수 대역을 인위적으로 나눠주는 네트워크가 필요치 않습니다. 당연히 대역 간의 중첩이 있을 수 없고, 그렇기에 대역 간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죠.

물론 이런 방식이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닛의 크기가 작기에 저역은 깊이 떨어질 수 없고, 별도의 트위터가 없기에 찰랑거리는 고역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반사된 소리를 듣는 방식이기에 음상도 흐릿하며, 그렇기에 B&W의 스피커처럼 각 연주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그려주는 소리 같은 건 BOSE 901이라는 로고가 박혀있는 스피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똑같은 풀레인지 유닛이 9개나 달려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평탄하고 평범한 소리가 난다는 의미입니다. 한 마디로 심심한 소리가 난다는 의미이지요. 그렇기에 BOSE의 창립자이자 MIT 공학박사인 Amar Bose 박사는 이런 문제의 해결책으로 액티브 이퀄라이저를 생각했습니다. 즉 이퀄라이저를 통해 각각의 유닛에 10~15㏈의 음량이 분포하게 전기를 공급하면서 특정 대역을 부스트시킬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퀄라이저를 통해 BOSE 901 스피커는 전혀 다른 스피커로 재탄생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BOSE 901은 1968년도에 출시되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스피커 자체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직 이퀄라이저에만 변화가 있었을 뿐이지요.

그렇다면 이 스피커에는 어떤 장르의 음악이 어울릴까요? 일단 유닛이 크지 않고, 여러 개가 장착되어 있다는 점에서 깊이 내려가는 저역은 아니지만 단단한 저역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트위터가 없다는 점에서 중역대의 소리가 좋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죠. 즉, 이 스피커는 선명한 해상도나 아래층에까지 떨어질 것 같은 저역 또는 저 멀리 구름에서 소리가 나는 듯한 찰랑거리는 고역은 없지만 단단한 저역과 두툼한 중역, 즉 클래식 대편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장르, 그중에서도 록, 힙합, 팝 등의 장르에는 발군의 실력을 발휘합니다.

제 생각에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나 Quincy Jones의 'Ai No Corrida' 같은 곡이 BOSE 901의 존재의 이유라고 생각되는데요. 이 세상에 싸고 좋은 물건은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그 물건의 가치를 의미하죠. 물론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판단의 기준은 달라지지만요. 오디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비싼 오디오에서는 비싼 소리가 나고, 싼 오디오에서는 싼 소리가 납니다. 오디오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상품이니까요.

Album

Earth, Wind & Fire [September]

September

Album

Quincy Jones [The Dude]

The Dude

하지만 오늘 소개해드린 이런 음악을 들을 때에 BOSE 901은 이 세상 그 어떤 스피커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비단 901 모델에만 한정되는 건 아닙니다. 초저가로 좋은 소리를 들어보고 싶을 때 어떻게 시스템을 꾸미면 좋겠냐는 질문을 들으면 BOSE의 컴퓨터용 스피커에 중고가로 10만 원 정도 하는 D/A 컨버터 하나 달아서 PC로 음악 들으라고 합니다. 아마 당신이 클래식 대편성을 듣지 않는다면 그 가격에 "0"하나를 더 붙여도 그만한 소리를 못 들을 거라는 말과 함께요.

Album

Boney M [Greatest Hits Of All Times - Remix `88]

Greatest Hits Of All Times - Remix '88

한때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겨 했었는데요. 다른 하이엔드 스피커를 스타크래프트에 비유하자면 풀업된 캐리어나 배틀크루저 같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비하면 BOSE의 스피커는 공3업에 발업과 아드업을 찍은 저글링입니다. 스타크래프트가 한창 인기일 때 격언처럼 내려오는 말이 있었죠. "물량 앞에 장사 없다." 오디오에서는 BOSE 스피커가 그런 스피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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