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의 조건 – 바흐의 '샤콘느'

장르 인사이드

명작의 조건 – 바흐의 '샤콘느'

2018.03.06
Special

명작의 조건 – 바흐의 '샤콘느'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이게 왜 명곡이야?"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죠.

"이 곡이 유명한 이유를 모르겠어"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좋은 작품은 내 마음 안에 있다"

선문답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작품, 그리고 명곡은 내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 곡이 잘 들어오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작품은 과감히 무시하시길.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명곡이라 말하는 데에도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언젠가 바흐의 '샤콘느'를 설명하면서 이 작품이 왜 그리도 대단한지를 한참을 설명하다가 아래와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바흐는 시대가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성실하고도 정교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샤콘느'는 그런 바흐의 장인 정신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작곡가들을 하늘에서 내린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개발과 연마로는 도달 할 수 없는 재능들이 있죠. 하지만 그런 이들조차 그 시대의 아이로 자라고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낸 명작은 하늘이 내려준 작품 보다는 그 시대의 최선에 가깝습니다. 오늘 소개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재능은 정교하게 음악을 다듬어내는 데 있습니다. 마치 스위스의 시계공처럼, 오차를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음악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바흐의 특기였습니다.

'샤콘느'는 바흐의 "파르티타 2번 BWV 1004"의 마지막에 수록된 작품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이런저런 춤곡에 춤을 추고 나면 이 '샤콘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본디 '샤콘느'는 반복되는 반주패턴에 멜로디를 올린 춤곡을 말합니다. 그래서 종종 '샤콘느'는 변주곡처럼 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바흐는 '샤콘느'라는 춤곡에서 최소한의 것만을 가져와 매우 정교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악기의 사용에 주목해주시길.

원래 바이올린은 선율을 연주하는데 특화된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화성을 연주하는 악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바흐는 쾨텐 궁정의 악장으로 재직하던 1720년경에 동료 바이올리니스트를 보고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악기도 화성을 소화해 낼 수 있다"

< '샤콘느'를 연주한 바이올리스트 김응수 >

일동 묵념. 바흐의 순진한 호기심이 뒤이어 태어날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는 고통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바흐는 이 '샤콘느'에서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우직하게 화음을 연주하길 요청합니다. 그리고 화음을 연주하지 않을 때에는 곳곳에 흩어진 성부를 잘 따라가주길 바라죠. 연주자들은 마치 수도승이 순례길을 걷듯이 이 작품의 음표를 하나하나 밟아 나가야만 합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쉽지 않은 구도의 길이죠.

< 페루치오 부조니 >

P. S. 바흐 사후 200여년 뒤에 태어난 페루치오 부조니는 이 "파르티타 2번"의 '샤콘느'를 피아노 용으로 편곡, 바흐가 바이올린으로 만들어 낸 세상을 피아노로 옮겨 확장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 편곡을 둘러싸고는 왜인지 모르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보통의 편곡 작품은 비판에 시달리는 일이 거의 없지만 이 부조니의 '샤콘느'는 꽤나 심한 비판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비판의 주된 내용은 "바흐의 정신이 훼손되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과도한 음표의 사용이 음악을 망치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 '샤콘느'를 지휘한 지휘자 백건우 >

하지만 부조니의 편곡은 이런 비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바흐가 바이올린이라는 한정된 자원으로 튼튼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면 부조니는 바흐의 '샤콘느'를 피아노로 마음껏 펼쳐 냈습니다. 속이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