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테스트용 음원 pt. 1: 저역 [한지훈]

매니아의 음악 서재

오디오 테스트용 음원 pt. 1: 저역 [한지훈]

2017.09.06
Special

오디오 테스트용 음원 pt. 1: 저역

오늘은 좀 다른 관점에서 음악 이야기를 해 볼까요? 지금처럼 용산과 청계천에 오디오 샵이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충무로와 명동에 오디오 샵이 모여 있던 시절, 어느 가게에 가더라도 흘러나오는 곡이 한 곡 있었습니다. Dave Grusin의 [Night-Lines] 앨범 마지막 트랙이었던 'Bossa Baroque'가 그 주인공이었죠. 수많은 광고에 삽입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이 곡이 오디오 샵 주인들에게도 인기를 끈 이유가 뭘까요?

< Dave Grusin & [Night-Lines] >

오디오 테스트 음원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가장 첫 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조건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곡이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아무리 테스트 음원으로 훌륭해도 그걸 듣는 사람이 그 곡을 모르면 이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모를 테니까요.

다음 조건으로는 녹음이 잘 되어있고, 당연히 원본 CD나 LP, 또는 멜론 Hi-Fi에서 제공하는 것 같은 고해상도 무손실 음원이어야 합니다. mp3 등의 손실 압축 포맷은 사람에게 잘 들리지 않는 대역을 클리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성능이 좋지 않은 오디오를 통해 사람 목소리 위주로 듣는다면 큰 차이를 못 느낄 수도 있지만 배음이 많이 사라지기에 오디오 테스트 음원으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조건으로는 오디오 테스트의 항목, 이를테면 해상도나 스테이징, 배음, 대역 간 밸런스, 저역의 크기와 윤곽, 단단함 등등이 두드러지는 곡이어야 합니다. 실제 노래를 가지고 예를 들어 볼까요? 오디오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앨범 중의 하나가 [Best Audiophile Voices] 시리즈 앨범이고, 이 앨범의 7집에는 Kelly Sweet의 'Je t'aime'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책인 "오디오는 미신이 아니다"를 읽어보신 분들은 의아해하실 텐데요. 저는 제 책에 여성 보컬은 오디오 테스트 음원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썼습니다. 왜냐하면 앰프와 스피커가 어울리도록 조합했을 때, 여성 보컬이 좋지 않게 나오는 오디오는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죠. 즉 여성 보컬이라는 장르는 오디오 테스트용으로는 변별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왜 Kelly Sweet가 부른 'Je t'aime'를 테스트용 음원으로 이야기하는 걸까요?

이 곡은 슈퍼트위터가 장착된 스피커와 그렇지 않은 스피커에서 들었을 때 완전히 소리가 다릅니다. 슈퍼트위터가 장착된 스피커라면 곡의 시작부터 슈퍼트위터를 통해 전해지는 배음 덕분에 소리가 찰랑찰랑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스피커라면 다소 밋밋한 여성 보컬 곡으로 끝나는 곡이지요.

< JBL 4343에 내장되어 있는 슈퍼트위터 JBL 2405 >

실제로 제가 가지고 있는 스피커로 예를 들면, 슈퍼트위터가 장착되어 있는 JBL 4343으로 이 곡을 들을 때와 슈퍼트위터가 없는 2웨이 스피커인 알텍 604-8H, 그리고 슈퍼트위터가 없는 3웨이 스피커인 AR 2ax로 들을 때 모두 느낌이 다릅니다. JBL 4343으로 들을 때에는 찰랑찰랑하고 화사한 느낌이지만 다른 두 스피커로 들을 때에는 그런 느낌보다는 보컬이 더 두드러진다는 느낌이죠. 다시 말해 같은 곡이라도 듣는 오디오 시스템의 구성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나야 하는 것이 오디오 테스트 음원입니다.

이쯤 되면 오디오 샵 주인들이 왜 그렇게 'Bossa Baroque'를 틀어댔는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일단 방송 광고를 통해 전 국민이 아는 곡이 되었고, GRP 레이블의 설립자 음반답게 녹음 상태 역시 그 시절에 이런 녹음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녹음이 뛰어납니다. 또한 거의 대부분의 소리가 중고역대 소리로 이루어진 곡이지만 그렇기에 중간 중간에 나오는 저역이 얼마나 임팩트가 있느냐에 따라 오디오 시스템의 성능을 테스트할 수 있는 음원입니다. 즉 고역과 중저역의 해상도와 단단함을 모두 테스트할 수 있는 음원이지요. 그렇기에 어느 샵에 가건 이 노래만 주구장천 듣던 시절이 있었고요.

그렇다면 오늘은 어느 항목에 대한 테스트 음원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일단 오디오 애호가들의 평생 숙제인 저역의 제어를 테스트할 수 있는 음원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저역의 타격감

Mariah Carey 'My All'

< ATC SCM 20 SL >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이 좋아하는 소리의 성향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헤비메탈이나 EDM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돌덩이처럼 단단하고 깊이 떨어지는 저역을 좋아할 겁니다. 적절한 앰프가 연결되었을 때 ATC SCM 20이나 Acoustic Energy의 AE-1 같은 스피커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지요. 하지만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보다는 아기 궁둥이처럼 몽실몽실한 저역을 훨씬 좋아할 겁니다. 이렇듯 저역이 얼마나 단단하게 들리느냐를 평가하는 잣대로 오디오 애호가들은 "타격감"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My All'은 서정적인 멜로디와 애절한 가사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곡입니다. 하지만 이 곡에는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만한 부분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47초 정도부터 시작하는 'I give my all~'이 나오는 부분에서의 킥드럼을 자세히 들어보면 오디오에 따라 소리가 많이 다릅니다. 댐핑 팩터가 큰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에 저역 구동이 어렵지 않은 스피커와 연결된 시스템에서 이 부분을 들어보면 킥드럼을 딱 끊어치면서 저역의 양은 많지 않지만 상당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진공관 앰프에 연결된 스피커로 이 부분을 들으면 앞서 받은 느낌보다는 저역의 양이 훨씬 많고 타격감은 훨씬 덜합니다. 이건 아무리 비싼 앰프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진공관 앰프의 구조적 한계입니다. 물론 저역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는 솔리드 스테이트 앰프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고요.

오디오 애호가들이 하는 대표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앰프의 힘이 세면 저역이 잘 나온다는 겁니다. 앰프의 힘이라는 표현을 앰프의 출력이라 한다면 앰프의 출력이 크면 클수록 소리가 크게 나오는 건 당연하죠. 하지만 출력이 크다고 저역이 단단하고 크게 나오는 건 아닙니다. 저역은 앰프의 출력보다는 앰프의 댐핑 팩터에 관한 부분입니다. 정리하자면 앰프의 출력이 크면 클수록 소리는 크게 나고, 앰프의 댐핑 팩터가 크면 클수록 저역은 단단하고, 타격감은 커지면, 저역의 양은 오히려 줄어듭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테스트하기에 Mariah Carey의 'My All'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음원입니다.

#저역의 해상도

Led Zeppelin 'Moby Dick'

"아니, 녹음이 잘 된 앨범이어야 한다면서 이렇게 오래된 음반을?" 이라며 의아해할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까지 들었던 음원 중에 이 곡만큼 저역의 해상도를 평가하기에 좋은 음원은 듣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Led Zeppelin의 앨범들은 녹음 상태가 나쁘지 않습니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요즘 나오는 웬만한 가요 앨범들보다 녹음 상태가 좋습니다. 1969년도에 발표된 앨범의 녹음 상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지요. 그렇다면 이 곡에서는 어느 부분 때문에 이 곡을 골랐을까요?

이 곡을 듣다 보면 전체적인 합주가 끝나고 John Bonham의 드럼 솔로가 나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는 John Bonham이 드럼을 스틱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연주합니다. 라이브의 영상을 보면 확인할 수 있지만 저역의 해상도가 살아있는 시스템이라면 보지 않고 듣는 것만으로도 그걸 느낄 수 있죠. 왜냐하면 스틱과 손바닥은 당연히 타격감이 다르니까요.

저역은 고역과는 달리 볼륨이 더 크게 느껴지고, 타격감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의외로 저역의 해상도는 신경을 쓰지 않기 쉽습니다. 고역에 비해 잘 들리지 않는다는 특성도 한 몫 하고요. 음악을 들을 때 기타 소리가 잘 들리는지, 베이스 기타 소리가 잘 들리는지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지요.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역의 해상도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세팅된 오디오라면 저역 역시 고역 못지않게 해상도를 유지해야 하고 그걸 테스트하기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곡 중에서는 Led Zeppelin의 'Moby Dick'이 좋습니다.

#저역의 양

Jennifer Warnes 'Way Down Deep'

오디오 애호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앨범 중에 가장 대표적인 앨범이 이 곡이 수록되어 있는 [The Hunter]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이 한 곡을 듣기 위해서죠.

잘 조합된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스피커의 크기에 어울리는 공간이 있다면 이 곡은 그 공간을 소리로 가득 채웁니다. 단단한 저역부터 부드러운 저역까지 저역의 향연이 펼쳐지면서 각각의 특색 있는 저역이 모두 제대로 들린다면 여러분은 본인의 오디오 시스템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습니다. 하지만 소리가 벙벙거린다거나 모든 소리가 너무 딱딱하게 들린다면 앰프와 스피커, 또는 공간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다음 글은 오디오의 테스트 항목 중에서 어떤 부분을 테스트하기에 좋은지 그 항목을 댓글로 달아주시면 그 항목에 어울리는 음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 드립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