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회: RATM, 폭력에 대한 폭력을 말하다 [박효재]

스쿨 오브 록

38회: RATM, 폭력에 대한 폭력을 말하다 [박효재]

2016.09.23
Special

RATM, 폭력에 대한 폭력을 말하다

소문만 무성했던 Rage Against The Machine(이하 RATM)의 전 보컬 Zack De La Rocha의 솔로앨범이 나온다. 2000년 밴드를 나온 뒤 Mars Volta 출신 드러머 Jon Theodore 등과 함께 꾸린 프로젝트성 밴드 One Day AS A Lion에서 활동하고, Killer Mike와 El-P가 뭉친 힙합 슈퍼그룹 Run The Jewels의 싱글 'Close Eyes And Meow To Fluff'에서 피처링을 하기도 했지만 솔로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소식은 El-P가 알렸다. 그는 트위터에 2017년 정규앨범이 나올 것이라고 썼다. El-P는 앨범의 첫 싱글 'Digging For Windows'를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물론 몇 번 속았던 De La Rocha의 팬들로서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2003년 DJ Shadow와 함께 한 싱글 'March Of Death'가 나왔을 때 그해 앨범이 나온다고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Trent Reznor와 작업중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성과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믿어볼 만하다. El-P는 올해 초 De La Rocha가 Run The Jewels, Nas와 함께 스튜디오에 있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는가 하면, RATM의 드러머였던 Brad Wilk 또한 De La Rocha가 앨범작업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RATM의 기타리스트였던 Tom Morello는 Public Enemy의 Chuck D, Cypress Hill의 B-Real과 의기투합해 슈퍼그룹 Prophets Of Rage를 만들어 미국 전역에서 투어콘서트를 하고 있다. RATM 출신들의 활발한 활동은 반갑다.

하지만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추종세력의 글로벌 테러, 미 대선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의 증오발언이 득세하는 이 때 RATM 출신 멤버들이 다시 주목 받고 있다는 건 한 번 생각해 볼 만하다.

RATM은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모든 폭력에 대한 폭력, 지적인 분노로 일세를 풍미한 밴드다. Prophets Of Rage의 투어 콘서트 타이틀은 "Make America Rage Again"이다. 트럼프의 캠페인 슬로건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비틀어 만든 이 이름에서도 분노가 느껴진다. RATM의 분노가 터져나왔던 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모든 권력, 자본주의 체제의 이면에 감춰진 폭력과 모순들을 만나게 된다.

#1

세상을 바꾼 사진, 세상을 바꾼 앨범커버

1992년 발표된 데뷔앨범 [Rage Against The Machine] 커버에서부터 세계 패권을 쥐기 위해 권모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사진 속 남베트남의 67세 고승 틱꽝득은 1963년 사이공의 번화가에서 가부좌를 튼 채 휘발유를 뒤집어 쓰고 스스로 불을 붙여 소신 공양했다.

공산정권을 막으려는 미국의 묵인 하에 불교도를 탄압해온 응오딘지엠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었다. 응오딘지엠은 가톨릭 신자로 지주들과 결탁해 불교도를 탄압했다.

< Malcolm Browne >

이 사진을 찍어 서방세계에 남베트남과 미 정부의 부조리를 알린 저널리스트 Malcolm Browne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역사상 어떤 뉴스사진도 이 사진만큼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진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사진은 남베트남의 국내정치 이슈로 그치지 않고 반미의 상징으로 활용됐다. RATM은 이 사진을 앨범 커버로 쓰며 처음부터 밴드의 정체성을 확실히 나타냈다.

#2

뼛속부터 반항적인

19세기 초 일어난 기계파괴운동(러다이트)를 떠올리게 하는 밴드이름부터 반항적이다. 사회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출신성분을 가진 인물들이 모여 만든 팀이기 때문에 그렇다. De La Rocha는 멕시코계 아버지에서 난 히스패닉으로 어려서부터 인종차별을 겪어왔다. 그는 시카고의 좌파적 성향의 예술집단 "로스 포" 출신인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랩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Morello의 아버지는 케냐 게릴라 반군의 리더였고, 어머니는 "랩과 록을 사랑하는 부모들의 모임(PFRR)"의 전 회장을 지낸 사회활동가였다. PFRR은 앨 고어 전 미 대선 민주당 후보의 부인 티퍼 고어가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만든 대중음악 검열장치 PMRC에 반기를 든 단체다. PMRC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의 음악이 닿지 않도록 부모들이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Morello는 199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엔딩곡으로 'Killing In The Name'을 연주하면서 성조기를 불태우는 등 반골성향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었다. 각종 사회참여적 활동으로도 유명하다. 2010년 한국의 기타회사 콜트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에 연대의 뜻을 밝히고, 이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미 캘리포니아 LA의 한인타운 공연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 'Worldwide Rebel song'을 발표하고 "기타는 결코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쥐어짜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점도 Morello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주류 엘리트로 편입돼 편안한 삶을 누리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에게 대학진학을 권한 것은 어머니다. 무슨 음악을 하건 간에 학력 때문에 음악적 메시지가 좀 더 공신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RATM의 음악은 저항의 논리를 찾길 원하고 근거 있는 분노를 추구하는 식자층에게 사랑 받고 있다.

#3

체제를 정조준하다

RATM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을 정조준하기도 했다. 마이클 무어가 감독한 'Sleep Now In The Fire' 뮤직비디오는 월가의 탐욕스런 돈놀이를 비판한다. 영상에는 무어가 촬영 도중 경찰에 연행되고, 격분한 군중들이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 진입하려다 저지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영상 말미에는 NYSE가 거래 도중임에도 문을 닫는 모습과 함께 "그럼에도 아무런 금전적 피해가 없었다"는 조롱조의 자막이 나온다.

데뷔작이자 명반으로 손꼽히는 [Rage Against The Machine]은 비판적 사회인식을 총망라하고 있다. 밴드는 'Wake Up'에서 급진적인 흑인 인권운동가 말콤 엑스의 암살에 분노하고, 'Freedom'에서는 인디언 인권운동가 레너트 펠티어의 석방을 촉구한다. 'Township Rebellion'과 'Bullet In The Head'에서는 LA 흑인폭동, 여론을 조작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을 노래하고 있다.

#4

Again 2009!

이 앨범이 세상에 나온 지 올해로 24년이 됐다.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좋지만, 다함께 고민하고 분노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앨범을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인 'Killing In The Name'은 앨범이 나온 지 17년이 지난 2009년 크리스마스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Simon Cowell이 이끄는 오디션 프로그램 "더 엑스 팩터"의 상술에 대한 반발때문이었다.

Simon Cowell은 2005년부터 프로그램 우승자의 싱글을 프로듀싱해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의 이전 주말쯤에 발매해 2008년까지 발매하는 싱글마다 차트 1위를 차지하게 만들었다. 이에 신물난 RATM의 팬 존 몰터, 트레이시 몰터 부부가 페이스북에 'Killing In The Name'을 1위로 만들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Cowell이 "바보처럼 저급한 캠페인"이라고 독설을 날리는 바람에 캠페인은 진짜 태풍이 됐다. Paul McCartney와 Dave Grohl까지 이 캠페인에 가세했다. 'Killing In The Name'은 그 해 "더 엑스 팩터" 우승자 Joe McElderry의 싱글 'The Climb'을 누르고 차트 1위에 올랐다. 전 세계가 극단적인 상술과 여러 부조리로 신음하는 지금, RATM 출신 멤버들의 차트 역주행을 다시 바라는 것은 불순한 바람일까.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