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초의 예술, 광고 속 힙합 음악 [힙합엘이]

장르 인사이드

15초의 예술, 광고 속 힙합 음악 [힙합엘이]

2015.11.10

흔히들 광고를 “15초의 예술”이라고 표현한다. 짧은 시간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관련 내용을 각인시켜야만 하는 상업 광고는 창의력과 아이디어, 독창성이 수반되는 복합적인 콘텐츠다. 특히, 요즘 광고는 과거에 비해 다각적으로 변하고 있다. AE들 역시 단순 제품에만 초점을 맞추던 방식에서 벗어나, 화려한 표현기법을 통해 콘텐츠를 다채롭게 포장하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감각적인 영상미에 기반을 둔 촬영 기법과 컴퓨터 그래픽 기술 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광고에 삽입되는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광고에서 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사례를 언급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체감할 것이다. 30초 내외의 짧은 시간 안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바로 음악이다. 흔히 CM송이라는 불리는 광고 음악과 삽입곡들은 해당 콘텐츠를 보완하는 수단이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비책이기도 하다. 제작자들이 광고 음악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간 협주곡, 록, 하우스, 팝, 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사운드가 광고에 더해졌다. 힙합 음악도 마찬가지다. Nas의 'Hip Hop Is Dead'의 샘플 원곡은 맥주 광고에 실리기도 했고, Jason Derulo의 싱글 역시 음료 광고에 삽입되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힙합 음악은 자동차, 휴대 전화, 주류, 의류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더해졌고, 이는 큰 홍보 효과를 이끌었다. 이번 회차에서는 큰 사랑을 받았던 대표적인 광고 삽입곡들을 몇 개 뽑아 소개하고자 한다. 해당 상업 광고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살펴보면 더욱 좋을 것 같다.

Robin Thicke에게 2013년은 커리어 상의 정점을 맛본 해였다. 일찍이 Star Trak Entertainment의 지원 아래 [The Evolution of Robin Thicke]과 [Sex Therapy: The Session]등을 히트시켰지만, 현재 그의 대표작은 단연 6집 앨범 [Blurred Lines]이다. 특히, 리드 싱글로 내세웠던 'Blurred Lines'는 12주 동안 차트의 꼭대기를 차지할 정도로 당시 상반기를 휩쓸었고, Robin Thicke는 데뷔 10년 만에 첫 Billboard 1위를 기록하는 감격적인 성과를 얻는다.

본 곡이 20개국의 음원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며 그는 전 세계적인 보컬리스트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물론, 이후 곡이 Marvin Gaye의 'Got To Give It Up'을 표절했다는 논란을 겪고 실제로 표절 판결을 받기도 하며 잡음에 휩싸였지만, 'Blurred Lines'이 한 해를 대표하는 중요 트랙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Blurred Lines'의 인기는 국내에서도 대단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마니아층에게서나 들어봄 직했던 그의 이름은 일반 대중에게도 퍼져갔다. 그 계기가 바로 현대 캐피탈의 광고에 본 곡이 삽입되면서부터다. 국내 굴지 기업의 광고에 활용될 정도로 'Blurred Lines'의 사운드는 매력적이었다. 특히, 프로듀서로 참여한 Pharrell Williams의 센스는 톡톡 빛났다. 알앤비와 훵크 리듬을 기반으로 디스코 색채를 가미한 사운드는 어깨를 들썩이게 했고, 그 위로 퍼지는 Robin Thicke의 감미로운 음색은 감칠 맛 났다.

블루 아이드 소울의 대표주자인 Robin Thicke의 정돈된 보컬과 끈적한 매무새, 곳곳에 퍼지는 팔세토 창법 등은 지루하지 않은 구성을 이끌었고, 피처링에 참여한 T.I. 역시 유연한 랩으로 곡의 탄력을 배가시켰다. 'Blurred Lines'은 국내 포털 사이트의 광고 음악 순위 리서치에서 1위를 기록하고, 검색어 순위에서도 정상을 차지할 정도로 큰 바이럴 마케팅 효과를 이끌기도 했다.

세계적인 SPA 브랜드이자, 국내에서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의류 브랜드인 Uniqlo는 그간 다양한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여 왔다. 그들은 만화 "One Piece"의 캐릭터를 활용한 협업부터 패션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Carine Roitfeld와의 콜라보레이션 등을 선보이며 활동반경을 더욱 넓혀가고 있다.

최근 Uniqlo의 행보에 있어 가장 두드러진 인물을 꼽으라한다면, 백이면 백 Pharrell Williams를 선정할 것이다. 2014년 Pharrell Williams는 Uniqlo와 손을 잡고 자신의 레이블 명을 딴 "i Am Other" 라인을 선보였다. 본 캡슐 컬렉션에는 UT의 크레이티브 디렉터이자 Pharrell Williams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Nigo가 참여하며 더욱 큰 화제를 낳았다.

이처럼 Pharrell Williams와 Uniqlo의 관계는 긴밀하다. 그의 음악이 브랜드의 광고에 활용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Pharrell Williams의 솔로 앨범 [GIRL]의 수록곡이자 3번째 싱글 'Come Get It Bae'는 UT 라인의 광고에 활용되어 브랜드의 젊은 감각을 더욱 배가시키는 역할을 했다. 스누피, 미키마우스, 스타워즈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캐리커쳐가 중심을 이루는 여름 라인 제품과 Pharrell Williams의 음악은 찰떡궁합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핸드 클랩과 퍼커션 사운드와 초반부를 울리는 훵크 기타의 조화는 복고적이었지만, 트렌디함을 적절히 머금고 있었다. 마치 7~80년대 메인스트림 훵크와 디스코 팝을 재현한 듯한 프로듀싱과 Miley Cyrus의 경쾌한 후렴구는 청량감있는 분위기를 이끌었고, 이는 UT라인이 추구하는 경쾌함과 적절히 어우러졌다. "UT THE NEW MODEL"이라는 이름의 본 광고는 공중파 TV로 송출되며 자연스럽게 마케팅 효과를 이끌었고, 'Come Get It Bae'와 UT 라인은 서로 윈윈 효과를 얻게 된다.

차세대 소울 뮤지션이자 고전적인 감각을 재해석하며 주목 받고 있는 보컬리스트 Leon Bridges는 요즘 세대 같지 않은 뮤지션이다. 89년생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빈티지한 매무새를 중시하고, 아날로그한 질감과 거칠거칠한 분위기를 추구한다. 60년대 소울 음악을 탐구하고 재현한다는 그의 말은 정직하고 굳건하다.

리듬 팝과 힙합 소울이 점차 신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레트로함의 정석을 복각하고 이를 묵묵히 이어나가는 독특한 행보는 점차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Leon Bridges는 자신의 첫 스튜디오 앨범 [Coming Home]을 얼마 전 공개하며 세간의 관심을 더욱 받게 된다. 그는 60년대 음반의 느낌을 재현하기 위해 가상 악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믹싱 역시 당시의 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아날로그 레코딩으로 진행했다. 참으로 뚝심 있는 젊은이가 아닐 수 없다.

Leon Bridges의 음악은 iPhone6의 TV 광고에 삽입되며 엄청난 바이럴 효과를 얻었다. [Coming Home]의 리드 싱글 'Coming Home'은 Apple Inc.의 이미지와 적절히 부합했다. 사실 갓 떠오르는 신인에 불과했던 Leon Bridges의 트랙이 iPhone6의 광고에 활용됐다는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특히, 워낙 감각적인 이미지를 중시하고 소리의 디자인까지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Apple Inc.의 광고였기에 많은 이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캘리포니아주 허모사 비치의 파도 위를 날아가는 갈매기와 바다 풍경을 담아낸 영상은 운치가 가득했다. 갈매기의 날개 짓 하나하나와 넘실대는 파도의 굴곡을 슬로 모션 기능으로 담아 낸 광고 영상은 잔잔한 여운을 제공했고, 이는 느릿느릿한 Leon Bridges의 보이스, 나긋하게 퍼지는 세션 사운드와 어우러졌다.

그의 음악과 TV광고는 한 몸처럼 느껴질 정도로 조화를 이뤘고, 이는 iPhone6 특유의 감성적인 디자인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게 했다. 본 광고의 영상은 전문가가 찍은 것이 아니었음에도 높은 완성도로 주목을 받았다. 덩달아 'Coming Home' 역시 올 해 최고의 광고 음악 중 하나로 손꼽히고 됐다.

지금만 해도 엄청난 사양과 기술을 장착한 스마트폰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지만, 대략 10년 전쯤만 해도 터치 기술 하나만으로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던 시대였다. 특히, 원터치로 휴대폰을 작동시키고, 자연스럽게 음악까지 감상한다는 것은 센세이션과도 다름없었다. 팬택의 SKY Presto는 그런 의미에서 놀라운 기능을 장착한 휴대 전화였다. “매우 빠르게”라는 음악 용어에 따온 본 제품은 화면 터치 하나만으로 음악을 바로 재생할 수 있었고, 잠금 상태에서 정지와 다음 곡 선정, 볼륨 등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는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 현재의 스마트폰과 비교하자면, 조악한 수준이지만 당시에 이런 기능은 혁신과도 같았다.

SKY Presto의 TV 광고는 "매우 빠르게"라는 제품의 슬로건을 돋보이게 함에 초점을 맞췄다. 초 간격마다 순식간에 화면이 전환되고, 빠르게 영상이 흘러가는 구성은 광고에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좀 쉽게 살 순 없어?"라는 카피라이팅 역시 당시에 높은 인기를 끈 구절 중 하나였다. 그리고 본 광고를 더욱 멋들어지게 하는 효과는 음악에 있었다.

해당 광고에는 Kanye West의 4집 [808s & Heartbreak]의 수록곡 'Love Lockdown'이 삽입됐다. 힙합계에서 "혁신"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남자와 휴대 전화 업계와의 만남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당시 Kanye West는 기존의 샘플링 작법에서 벗어나 전자 음악과의 결합을 중시하며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던 시기였기에, 그 결합은 더욱 돋보였다.

80년대 신스팝에서 영감을 받은 'Love Lockdown'의 소리는 퍼커션과 신스,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포함했고, 아카펠라와 백그라운드 보컬이 더해지며 매력적인 구성을 담고 있었다. 오토튠을 잔뜩 먹인 Kanye West의 목소리와 Roland TR-808 드럼의 반복적인 속도감은 광고의 빠르기와 적절히 결부되며 완성도 높은 구성을 완성시켰다. SKY Presto는 광고의 성행과 함께 당시 많은 젊은이들에게 소구되며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힙합 음악은 품목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제품의 광고에 활용됐다. 자동차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남성적인 웅장함과 묵직함을 담고 있는 자동차 광고와 힙합 음악의 마초적인 면모는 적절히 어울리며 높은 궁합을 자랑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경차와 소형차의 비중이 늘어나고, 알록달록한 차체의 컬러감이 강조되면서 무거운 힙합 곡은 광고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자동차 업계는 이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그들은 전형적인 힙합 트랙을 선보이는 뮤지션보다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얼터너티브한 행보를 보이는 아티스트를 물색했다. Theophilus London 역시 그중의 하나였다.

Theophilus London의 데뷔 스튜디오 앨범인 [Timez Are Weird These Days]에 실린 'All Around the World'는 굴지의 자동차 회사인 Chevrolet가 2013년 출시한 “Chevrolet Sonic” 모델의 광고에 사용되었다. 본 광고는 자동차를 스케이트보드에 대입하는 재치 있는 줄거리로 인기를 끌었다.

경차의 가벼움과 젊은 감각을 보드 기술인 알리와 킥플립, 샤빗 등에 빗대어 활용한 줄거리는 20~30대 층을 자극했고, 다이나믹한 과정 속에서도 차에 있는 우유가 넘치지 않는다는 위트 있는 내용은 웃음을 짓게 했다. 'All Around the World'는 본 광고가 표현하는 젊음을 나타내기 위한 최적의 곡이었다.

록에 기반을 둔 기타 리프와 후렴구에 터지는 훵크 리듬, 뿅뿅거리는 신디사이저는 흥을 돋우기에 충분했다. 힙합과 록, 전자음악, 댄스 등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Theophilus London의 감각은 여전했고, 이는 톡톡 튀는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여기에 노래와 랩을 넘나드는 그의 목소리가 더해지며 곡과 광고는 더욱 출중한 궁합을 보였다.

Fool's Gold Records의 창립자이자 Kanye West의 전속 DJ로도 활약하며 많은 힙합팬들의 지지를 받아 온 A-Trak은 일찍이 뛰어난 실력으로 주목 받았다. 그는 1997년, 15살의 어린 나이로 DMC World DJ Championship에서 우승을 화며 화려한 데뷔를 이뤘고, 이후 2000년까지 각종 대회를 휩쓸며 자신의 가치를 높여갔다.

하우스와 힙합을 기반을 한 그의 음악과 재치 넘치는 스크래치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고, A-Trak은 각종 EP와 싱글을 발표하며 커리어를 더욱 넓혀갔다. 그의 독특하고 세련된 음악은 많은 광고 기획자의 입맛을 자극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Adidas Originals다.

국제적인 스포츠 기업이자 스트릿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서브컬쳐와 힙합 문화를 기반으로 한 광고를 종종 선보였다. 2013년 선보인 광고 역시 일맥상통한 개념의 영상이었다. 프리스타일 농구와 스케이트보드, 클럽 문화를 통해 젊음의 자유로움을 표현했던 광고는 개성 넘치고 감각적이었다.

A-Trak의 'Landline 2.0'은 이 젊은 분위기를 더욱 강렬하게 하는 자극제였다. 지직거리는 전자음과 유쾌한 멜로디 라인, 중간중간 흥을 돋우는 격정적인 스크래치는 20대의 자유분방함과 적절히 결부됐다. 그의 독특한 믹스 능력과 사운드를 조립하는 감각은 탁월했고, 음악은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과 화려하게 어우러졌다. 게다가 A-Trak은 직접 영상에 출현해서 음악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선보이며, 노련미를 뽐내기도 했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