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밴드 Cigarettes After Sex, 스스로의 미학을 관철시킨 새앨범 [X'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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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밴드 Cigarettes After Sex, 스스로의 미학을 관철시킨 새앨범 [X's]

2024.07.12
Special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밴드 Cigarettes After Sex, 스스로의 미학을 관철시킨 또 하나의 달콤한 신경안정제 [X's]

형체가 불분명한 드림팝 사운드 위에 숨 막힐 듯 차분히 전개되는 중성적 보컬의 밴드 Cigarettes After Sex(이하 CAS)는 절묘한 멜로디, 적은 음수를 사용해 어둡고 부드러운 세계관을 완성했다. 로맨틱한 백일몽으로 구성된 이들의 음악에서 혁신 같은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고 대신 단순하고 안온한 분위기들이 다른 모든 여백들을 메꿔냈다. 그러면서 팬층은 점차 견고해지고 확장되어 갔다.

흑백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때로는 생생하게, 때로는 초현실적으로 곡들을 구성해 낸 CAS는 그 누구든 쉽게 사로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유럽 특유의 낭만과 뉘앙스가 있었는데-이를 테면 공연 도중 화면에 [비브르 사비(Vivre sa vie)]에서 Anna Karina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틀어놓는다 거나 하는- 의외로 미국 출신의 인디 밴드였고 그것도 텍사스 엘 파소 출신이었다. 밴드의 중심에 위치한 보컬리스트 Greg Gonzalez는 CAS의 초창기에 대부분의 녹음을 혼자 해냈고 수많은 멤버들을 거쳤는데 이후 베이스에 Randall Miller, 드럼에 Jacob Tomsky로 정착하게 된다.

EP I.

몇몇 습작들을 거쳐 2012년 발표한 EP [I]에서부터 CAS의 형태가 자리 잡혀간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의 화면과 붙여낸 'Nothing's Gonna Hurt You Baby'의 팬 비디오가 인기몰이를 하게 되는데, 이는 Kurt Cobain의 딸 Frances Cobain이 직접 자신의 SNS에 추천하면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처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들의 곡이 널리 퍼지면서 SNS 세대가 선호하는 슈게이징 밴드로 자리매김해 나갔는데, 이들이 점차 수면 위에 떠오를 무렵 밴드는 거점을 뉴욕 브루클린으로 옮긴다.

Cigarettes After Sex

이후 2017년 공개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결과물이 됐다. 이미 공개됐던 싱글 'K'와 'Apocalypse' 같은 트랙들이 전 세계적으로 애호됐고 한국을 비롯한 다양한 국가를 다녀가면서 여러 매체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밴드로 지목받는다.

Cry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에서 야간 세션을 통해 녹음된 두 번째 앨범 [Cry]는 좀 더 영화적인 접근 방식을 시도한 듯한 모습을 보였다. 데뷔 앨범과 구별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지만 보다 우울하고 진실한 사랑에 도달하려는 듯한 뉘앙스가 감지됐다. 팬데믹 때문에 앨범 발매 이후 약 2년이 지나서야 투어를 할 수 있었는데 이 앨범 이후 밴드는 단순한 인디의 바운더리를 넘어 글로벌하게 활약하면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서게 된다.

5년 만에 공개되는 새 앨범 [X's]
X's

Greg Gonzalez와 Daniele Luppi의 합작 EP, 그리고 싱글 'Bubblegum'을 공개하기는 했지만 정규 작으로는 전작으로부터 약 5년 만이 되는 CAS의 세 번째 앨범 [X's]가 우리 앞에 도달했다. 지금까지의 앨범들이 다양한 연애의 집합이었던 것에 반해 [X's]의 경우 4년 간에 걸친 단 하나의 연애가 중심이 되어 그려지고 있다고 한다.

Greg Gonzalez는 이번 앨범에 자신의 상실에 대해 기록하려 했다. 그것에 관해 곡을 쓰고 노래하고 음악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를 분석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언급했는데, 때문에 그 결과물인 이 앨범을 두고 잔인하게 까지 느껴진다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처럼 기억에서 지우는 것이 아닌 그저 좋은 방향으로 다시금 과거의 로맨스를 복기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그는 이 노래들을 만들고 부르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정화하려 시도한다.

사운드 면에서도 이전 작들 과의 차이가 소폭 감지되는데 기존에 하지 않았던 7, 80년대의 디스코 뮤직으로부터의 영향을 언급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순히 댄스뮤직으로 분류될만한 성질의 음악은 결코 아니었다. 그 보다는 낙담한 채 댄스플로어 옆에 쓰러져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로 처연하게 돌아가는 미러볼을 바라보며 떨구는 눈물 한방울에 가깝다. 물론 기존의 촉촉하면서 느린 팝 무드를 어두운 분위기와 상승하는 멜로디에 결합해 생생한 이미지를 전달하려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다.

Tejano Blue

앨범에 앞서 가장 처음 공개된 곡이 바로 'Tejano Blue'이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히스패닉을 일컫는 'Tejano'는 음악 장르로도 통용되며, 엘 파소에서 성장한 Greg Gonzalez의 경우 테하노 뮤직과 함께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들을 거부하려 들었고 스스로가 끌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몇 년 후 뉴욕에서 살았을 당시 Selena의 'Como La Flor'을 듣게 됐는데, 그 무렵 많이 들었던 Cocteau Twins와 서로 조합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두 가지 요소를 연결해 내면서 'Tejano Blue'가 탄생했다. 어린 시절 주변에서 듣던 음악을 재발견하면서 현재 자신과의 연결을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 것이다.

Dark Vacay

'Dark Vacay'가 이어서 공개됐다. 곡은 파괴적이고 쾌락주의 적인 유럽 투어의 추억을 담아냈다. 여백이 많고 차분한 이들 특유의 어레인지가 아득하게 펼쳐진다. Greg Gonzalez는 로맨스의 끝자락에서 그것의 아름다운 면을 보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듯 보인다.

Baby Blue Movie

'Baby Blue Movie'는 실제로 New Order의 'Temptation'의 기타 리프 같은 것을 차용한 듯 보이며 보다 몸을 움직이기에 좋은 리듬을 가지고 있다. 'Hideaway'와 'Holding You, Holding Me' 같은 트랙들에서도 리듬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사실 이것은 과거 CAS의 곡들과 비교했을 때에 한정되는 것으로 여전히 이 노래들은 희미하게 부유한다.

오프닝 트랙 'X's'에서는 관능적이고 달콤한 연애관계 사이의 나날들에 대해 여유롭게 풀어내고 있다. 가사에는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의 Marilyn Monroe를 Bert Stern이 촬영한 사진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한다. 퇴폐적인 방식의 달콤한 삶이 필요하다 읊조리는 'Silver Sable', 그리고 주로 여름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이번 앨범에서 'Hot'에 접어들 무렵 여름의 로맨스는 절정을 맞이한다.

관계가 끝났을 때 감정의 잔해 속에서 'Dreams From Bunker Hill'을 통해 그 당시를 회상하며, 'Ambien Slide'에 도달하면서는 헤어짐의 고통, 그리고 무력감에 맞서 싸우려는 듯한 제스처와 함께 이번 앨범을 마무리 짓는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는 영화 '파리, 텍사스(Paris, Texas)'의 줄거리나 맥락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Greg Gonzalez는 텍사스 사람이기도 해서 더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솔직하고 직설적인 가사, 그리고 희미한 잔향 사이로 Greg Gonzalez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아니 오히려 달콤하게 노래한다.

인터뷰에서 Greg Gonzalez는 스스로가 겪은 모든 일에 맞서는 것이 스스로가 평화를 얻는 방법이라 언급했다. 그러니까 이 노래들은 일종의 사진 같은 것으로 그가 이 일들을 노래로 만든다면 그것은 언제나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되는 셈이었다. 사랑은 사라졌지만 그것에 관한 노래를 가질 수 있어 운이 좋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파리, 텍사스'를 언급하기도 했고 제목에 '영화'가 들어가는 곡도 있지만 확실히 [X's]는 매우 시각적이며 거의 영화적이기도 하다. 이는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정지 프레임으로 놓고 자신이 느낀 감정의 최고점을 음악으로 기록해낸 결과물이다. 휴대폰 로맨스 시대에 CAS의 [X's]는 그리움, 상실, 관능 등 모든 형태의 사랑을 탐구하려 한다. 먼 나라에서 만들어진 이 곡들이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듯 생생하게 실시간으로 재생되며, 그것을 들은 사람은 또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된다.

밴드의 지속적인 성장, 그리고 성숙함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이별의 복잡한 과정을 CAS는 매혹적이며 또한 감정적인 여정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듣는 즉시, 혹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천천히 당신을 유혹하게 될 것이다. 밴드 자체 또한 무섭게 성장해 나가는 추세인데, [X's] 공개 이후 대규모 월드 투어 또한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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