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음악인 사람 - Fazil Say의 음악 세계

장르 인사이드

존재 자체가 음악인 사람 - Fazil Say의 음악 세계

2022.07.20
존재 자체가 음악인 사람

Fazil Say의 음악 세계

바흐부터, 모차르트, 베토벤, 그리고 쇼팽리스트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는 모든 작곡가가 기본적으로 연주자였습니다.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을 직접 연주하는 것은 그 당시 음악가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자 이러한 흐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작곡가들이 훌륭한 연주자이기도 했지만, 자신이 작곡한 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연주한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된 것이죠. 작곡가는 여전히 작품의 최고 권위자였지만, 연주에서만큼은 그 역할을 다른 이들에게 서서히 물려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작곡가작곡만을, 연주자연주만을 맡게 되었죠.

그러나 이러한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연주와 작곡 양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음악가들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1970년 튀르키예(터키) 앙카라에서 태어난 음악가, Fazil Say(파질 세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피아니스트로 시작하다

어린 시절 Say가 보여주었던 재능은 그야말로 천재 묘사의 전형이었습니다. 음악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빠르게 멜로디를 익혔고, 음악 교육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연주와 작곡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 것이죠.

작곡과 피아노 연주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Say가 먼저 두각을 나타낸 분야는 피아노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Fazil Say가 처음 국제무대에 등장했을 때 받았던 평가는 '새로운 시대의 글렌 굴드'라는 평이었습니다. Fazil Say가 경력 초기에 발표한 바흐 앨범을 들어보면 깔끔한 터치가 인상적인 연주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튀르키예의 글렌 굴드'라는 평은 이후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Say가 보다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는 연주자임이 명백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Kurt Masur(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한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나,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그리고 거슈윈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작품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작품이자 작곡가였죠.

이러한 Say의 즉흥적인 연주는 지난 2017년에 발매된 쇼팽의 [녹턴집](Nocturn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먼저 가장 유명한 '녹턴 2번'을 들어 보시죠.

쇼팽의 [녹턴]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Say의 연주에서 확실하게 다른 부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쇼팽이 자유롭게 풀어놓은 음표들이 약간 다르게 연주되고 있기 때문인데요. 과거 19세기와 20세기 초반 활동했던 거장들이 자주 보여주었던 즉흥연주의 흔적을 21세기에 재현하는 Fazil Say의 연주는 그런 점에서 매우 특별하다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좋은 연주들이 여럿 나와 있는 쇼팽의 [녹턴]이지만 조금 색다른 연주를 듣고 싶을 때,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앨범, Fazil Say의 [녹턴] 앨범입니다.

곡리스트 15

Fazil Say는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지만,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한 성실한 연주자이기도 합니다. Say가 녹음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 중에서 '튀르키예 행진곡'(터키 행진곡)이 포함된 [가장조 소나타]와, 작곡가의 몇 안 되는 단조 피아노 소나타인 [가단조 소나타]를,

그리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집]에서는 베토벤의 3대 피아노 소나타로 손꼽히는 [비창], [월광], 그리고 [열정]을 소개해드립니다.

곡리스트 9

전통과 혁신을 아우르는 작곡가

피아니스트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Fazil Say는 작곡가로서도 그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교향곡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과 소나타. 그리고 오라토리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로 작품을 남긴 Say 음악의 특징은 크게 3가지 요소가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는 Say가 근간으로 삼는 서양고전음악의 구성요소입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그리고 오케스트라 같은 서양고전음악에서 사용되는 악기는 물론, 어법 또한 서양고전음악의 그것을 그대로 따릅니다. 그리고 Say는 여기에 자신의 고향인 튀르키예와 그 지방의 전통 선율을 적극적으로 덧붙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곡가 특유의 성향이라 할 수 있는 즉흥적인 요소를 약간 섞어내는 것이지요. 작곡가 Fazil Say의 음악은 (대체로) 이러한 틀과 방식 위에서 완성됩니다.

Say의 음악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으로는 피아노와 첼로를 위한 [네 개의 도시] 가 있습니다. 첼리스트 Nicolas Altstaedt(니콜라스 알트슈태트)와 함께 녹음한 이 곡은 각각 튀르키예의 도시인 시바스, 호파, 앙카라, 보드룸에서 부제를 가져온 4악장 구성의 작품입니다. 특별한 리듬과 화성, 그리고 튀르키예 지방의 전통적인 선율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이어 소개할 작품은 2018년에 발표된 피아노 소나타 [트로이]입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의 배경인 트로이 전쟁을 주제로 한 이 작품은 10개의 부제로 구성, 고대 그리스의 명인이 그린 대서사시를 피아노 한 대로 그려냅니다. 작품의 하이라이트는 전쟁의 모습을 포착해낸 8번 트랙 'The War'. 북을 두드리는 듯한 저음 연타와, 피아노의 현을 직접 손으로 긁어내 전쟁에 참여하는 장병들의 함성을 만들어내는 부분은 그야말로 장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Fazil Say가 프랑스의 메조소프라노 Marianne Crebassa(마리안느 크레바사)와 함께한 '게지 공원 3'입니다. 지난 2013년 이스탄불에 위치한 게지 공원에서 시작된 튀르키예의 반정부 시위에서 영감을 받은 '게지 공원'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게지 공원 3'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처럼 가사가 없는 성악곡입니다. 지난 2012년. 이슬람 모욕죄로 튀르키예 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Fazil Say가 고국을 생각하는 마음은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지만, 자국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 답답한 상황에서 이 음악가는 가사 없는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복잡한 마음을 대신 들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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