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의 매력을 담은 브라질 풍의 정기고 트리오 [Junggigo Sings Braz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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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매력을 담은 브라질 풍의 정기고 트리오 [Junggigo Sings Brazil]

2020.02.18
Special

정기고 트리오 [Junggigo Sings Brazil] 앨범 이야기

우리는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듣는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록을 듣다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듣고 재즈를 듣다가 클래식을 듣기도 한다. 나도 재즈를 주로 듣지만 월드 뮤직, 록, 일렉트로니카, 클래식, 솔 음악 등 여러 음악을 같이 듣곤 한다. 당연한 일이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 만족을 위한 것이니 말이다.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추구하는 스타일에 관련된 음악 외에 다양한 음악을 듣는다. 그 또한 기본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듣는 감상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감상의 다양성은 창작에 영향을 주어 새로운 방향으로 아티스트를 이끌기도 한다.

글 | 최규용 (낯선 청춘)


Story

정기고 트리오 [Junggigo Sings Brazil] 앨범 이야기

정기고도 그런 경우다. 그는 R&B 힙합 솔을 기반으로 한 팝 싱어송라이터이다. 2014년 소유 (SOYOU)와 함께 노래한 '썸 (Feat. 릴보이 Of 긱스)'으로 음악적 성과와 함께 아이돌 열풍을 잠재울 정도로 큰 상업적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이런 그가 지난 2018년 정기고 퀸텟이란 이름으로 앨범 [Song For Chet]를 발매한 것은 매우 의외였다. 재즈는 그와 관련된 수업을 받은 사람이 하는 음악이란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선입견을 가볍게 무시하듯 그는 재즈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한 노래를 들려주었다. 게다가 트럼펫을 연주하며 노래했던 Chet Baker를 주제로 노래를 불러 자신이 단지 재즈의 낭만적 이미지만을 가벼이 차용하려 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재즈 전반에 대한 막연한 접근이 아니라 평소 재즈를 많이 듣고 느낀 후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했음을 보여주었다.


Album

정기고 트리오 [Junggigo Sings Brazil]

Junggigo Sings Brazil

지난해 가을 [아무런 이별]이란 솔로 앨범을 통해 개인적인 느낌의 소박한 음악으로 큰 여운을 주었던 기타 연주자 이태훈, 배장은을 비롯한 여러 연주자의 앨범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베이스 연주자 신동하와 함께 트리오를 이루어 발매한 EP 앨범 [Junggigo Sings Brazil]도 그렇다. 이번 앨범의 주제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브라질 음악이다. 보사노바가 중심이 된 우아하고 세련된 네 곡의 연주와 노래를 담고 있다.


그런데 브라질 음악을 주제로 했다고 하지만 단순히 보사노바의 고전만을 노래하지 않았다. 보사노바의 창시자의 한 명인 Antonio Carlos Jobim의 'How Insensitive (Insensatez)'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브라질 밖의 곡을 브라질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곡들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으로 빛난다.

먼저 앨범은 'How Insensitive'로 시작한다. 언급했듯이 이 곡은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이다. 다른 보사노바 스탠더드 곡에 비해 이 곡은 애잔한 서정이 인상적이다. 정기고 트리오 또한 이를 살리려 했던 듯 아르코 주법으로 우수 어린 정서를 극대화한 베이스 솔로 연주로 곡을 시작했다. 이어 외로움을 누르려는 듯한 담담한 분위기의 기타 연주가 더해지고 독백하듯 잔잔한 정기고의 노래가 흐른다. 사랑받고 있을 땐 덤덤히 있다가 사랑을 잃고 홀로 남은 뒤의 깊은 후회와 미련을 제대로 반영한 노래다.

이어지는 'Byebyebye'는 Dok2가 쓴 곡으로 2008년 R&B 솔 스타일로 발표해 관심을 받았었다. 정기고는 어쿠스틱 악기로 구성된 단출한 편성을 사용한 만큼 전에 비해 한층 담백한 스타일로 바꾸어 노래했다. 마치 춤을 추듯 리듬을 이어가며 멜로디 감각까지 드러내는 기타와 사운드에 무게감을 부여하는 베이스의 움직임 위로 촘촘한 결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느껴지는 융털 같은 정기고의 노래가 흐른다. 운명적 사랑을 드디어 발견한 자의 가슴 벅참과 그 마음을 달콤하게 전하려는 마음이 진솔하게 담겼다. 스캣을 통해 기타, 베이스와 보다 농밀하게 호흡하는 후반부는 곡의 정서를 재즈적으로 해석한 좋은 예이다.

세 번째 곡 'Quando Quando Quando (feat. 김혜미)'는 1962년 이탈리아 작곡가 토니 레니스와 알베르토 테스타가 만들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곡이다. 보통의 팝 스타일부터 보사노바까지 다양한 스타일로 편곡되어 연주되고 노래되어왔다.

이 곡을 위해 정기고는 팝 재즈 그룹 쿠마파크의 보컬 김혜미와 듀엣으로 노래했다. 혼자보다 둘이서 노래하니 사랑을 고백하고 확인하는 원곡의 사랑스러운 정서가 보다 잘 드러났다. 여기에 느긋한 템포로 두 보컬의 노래를 은은하게 감싸는 기타와 베이스 또한 달콤한 정서를 배가시켰다. 특히 이태훈의 기타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뒤에서 은은하게 배경음악을 제공하는 악사 같다.

마지막 곡 '샴푸의 요정 (Fairy of Shampoo) (Remastered)'은 장기호가 1988년 빛과 소금 시절에 써 지금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원곡의 달달한 정서를 따라 정기고 또한 부드럽고 달콤하게 노래했다. 삼바 음악의 왁자지껄함에서 벗어나 집에서 조용히 감상하는 음악을 만들려는 욕망에서 보사노바가 탄생했는데 정기고의 노래와 멤버의 연주는 그에 어울리게 실내악적인 맛을 강하게 풍긴다.

그런데 나는 이번 앨범에 담긴 4곡 가운데, 이 곡이 가장 재즈 보컬로서 정기고의 매력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원곡의 멜로디를 살짝 변형하고 박자를 밀고 당기며 노래하는데 그것이 곡의 부드러운 흐름에 은밀한 리듬감을 선사한다. 기타와 베이스 또한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라틴 음악 특유의 탄력적인 움직임으로 정기고의 노래에 반응하며 이번 앨범이 정기고가 아닌 보컬-기타-베이스로 구성된 정기고 트리오의 앨범임을 느끼게 한다.

처음에는 그냥 일상 속에서 소풍으로 기분전환을 하듯 일회성으로 재즈를 노래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EP이긴 하지만 다시 이렇게 재즈의 매력을 담은 앨범을 발매했다. 그래서 재즈 보컬 정기고의 활동이 계속될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재즈 보컬로서 활동에만 집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른 그의 음악도 매력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음악 저 음악을 듣는 것처럼 자신의 기분, 취향을 따라 큰 욕심 없이 그 순간의 진실에 충실한 활동을 하는 것이 최고의 음악을 낳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르보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음악이 사실은 감상자에게 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오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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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고 트리오 미수록곡 '머물러요'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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