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 상세

2002
1위
제목
No.1
아티스트
보아 (BoA)
심사평

후렴구 하나만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인데, ‘No.1’은 노래의 각 부분이 모두 킬링 포인트로 기억된다. 그중에서도 오케스트라 힛 사운드를 엇박자로 잘게 쪼갠 도입부는 지금 들어도 단번에 이 노래임을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단조로 시작되는 멜로디 라인은 후렴구와 함께 장조로 옮겨가며 속도감 있게 점차 고조된다.
이러한 구성은 달을 은유한 시적인 가사와 만나 신비하면서도 뭉클한 느낌을 자아내면서 감정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아련한 노랫말과 경쾌한 리듬이 뒤섞여 만드는 낯선 조화는 지금까지도 이 노래를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기억하게 한다. 적절히 절제하고 변주하며 곡의 완급을 조절하는 세션 파트의 활용 또한 인상적이다. 여기에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보아의 다채로운 목소리와 파워풀한 퍼포먼스가 더해져 모든 감각을 유혹한다. ‘No.1’이라는 노래 제목은 [Listen To My Heart] 앨범으로 일본에서 <오리콘 주간차트> 1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보아의 위치와 맞물려 그의 야심과 패기를 느끼게 한다. 당시 핸드마이크를 들고 격렬한 안무를 하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라이브 실력을 선보인 ‘No.1’ 활동은 지금까지도 보아의 레전드 무대 중 하나로 평가된다.

보아의 성장은 개인뿐 아니라 케이팝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본 시장에서의 보아의 성공은 중국을 중심으로 발화하고 있던 한류의 흐름을 더 큰 대중문화 시장인 일본으로 확장해 케이팝의 확산력과 폭발력을 키웠다. 세계 2위 음악 시장인 일본의 대형 기획사 에이벡스에 소속되어 오랜 기간 몸으로 부딪치며 습득한 노하우는 이후 한국식으로 벤치마킹되어 훗날 에스엠엔터테인먼트뿐 아니라 한국의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아이돌 트레이닝 시스템이 지금의 명성을 차지하는 데에도 큰 몫을 했다. 보아의 성장은 케이팝의 성장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겨울, 데뷔 20주년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보아는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가수였다’라고 자평했다. 그의 디스코그래피만 살펴봐도 보아가 얼마나 성실하고 치열하게 성장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 아이돌로 데뷔해 이제는 작사·작곡을 포함해 셀프프로듀싱까지 선보이며 매 앨범에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 가능성을 차례로 증명하고 있는 보아는 트렌드를 따르기보다 늘 우직하게 본인이 잘 할 수 있고 잘하는 것을 과감하게 밀어붙인다. 이제까지 성장해왔는데, 아직도 보아에겐 보여줄 것이 많은 듯하다. 또 다른 출발선에서 더 많은 이야기와 음악을 보여주길 고대한다.

from 성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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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2위
제목
으르렁 (Growl)
아티스트
EXO
심사평

한국 아이돌 그룹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엑소의 ‘으르렁(Growl)’은 결코 빼놓아서는 안 될 곡이다. ‘으르렁’은 뮤직비디오와 안무 영상, 무대에까지 원테이크 촬영 기법을 도입해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화면 밖과 안에 각각 존재하는 관객과 퍼포머의 평면적인 관계를 조금 더 입체적인 관계로 바꿔놓았다. 관찰자의 역할을 하는 관객이 보다 적극적으로 퍼포머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갈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든 연출의 힘. 이것은 관행을 흔드는 흥미로운 균열이었다.

‘으르렁’의 퍼포먼스는 멤버 숫자가 많은 보이그룹에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모두 낭비 없이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으르렁’의 뮤직비디오 속에서는 몇 개의 유닛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고, 또다시 새로운 멤버들로 신선한 동선이 만들어지기를 반복한다. 순식간에 동선이 바뀌면서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흐름의 조화가 ‘으르렁’ 퍼포먼스의 핵심이었으며, 이런 식의 접근은 멤버 한명 한명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오로지 엑소라는 하나의 팀을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이처럼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퍼포먼스는 엑소라는 팀이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게 된 계기를 만듦과 동시에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며 다인원 그룹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고수하던 이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했다.

분명 ‘으르렁’은 코러스 파트마다 같은 의성어를 반복하는 매력적인 후크송이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기억돼야 할 부분은 이 곡이 1절 도입부와 2절 도입부를 차별화하고 탑라인의 리듬을 바꾸는 등 멜로디 라인에 끊임없이 변주를 주면서 보컬 멤버들의 가치를 퇴색시키지 않는 몇 안 되는 후크송이었다는 점이다. 카메라 워크부터 카메라를 의식하는 멤버들의 제스추어까지 고려해 밀도 있게 구성한 퍼포먼스는 이런 음악적 고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엑소의 ‘으르렁’은 한국 아이돌 산업에서 늘 선구자 역할을 해왔던 SM엔터테인먼트가 성공적으로 정착시킨 아이돌 퍼포먼스의 사례 중에서도 단연 첫째로 꼽힐 만한 작품이 되었다.

from 박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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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위
제목
강남스타일
아티스트
싸이 (PSY)
심사평

‘강남스타일’은 전대미문의 대사건이었다. 그 누구도 각종 논란으로 기세가 한 풀 꺾인 댄스 가수의 여섯 번째 정규 앨범 타이틀곡이 2010년대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2010년대 빌보드 통합 스트리밍 수 1위, 한국 노래 최초로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 진입, 세계 33개국 이상 공식 차트 1위 등 휘황찬란한 성적은 싸이 스스로도 꿈꿀 엄두조차 내지 못한 기적이었다. 지구촌 모두가 ‘오빤 강남스타일’을 외쳤고 도시 곳곳의 어마어마한 군중이 일사불란하게 ‘말춤’을 추며 환호했다.

우리에게 싸이와 ‘강남스타일’은 익숙한 콘텐츠였다. 그러나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것이 친근했을 뿐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다. 싸이가 누구인가. 꾸미는 대신 망가지는 것을 자청하고,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함께 울고 웃고 뛰노는 해학의 살풀이 춤 한 판을 맛깔나게 펼치는 베테랑 광대다. ‘아름다워 사랑스러워 바로 너’를 거듭 반복하며 흥을 선동하고 ‘지금부터 갈 데 까지 가볼까’라며 현실을 돌파하다 급격하게 커브를 틀어 부와 명예의 상징 ‘강남스타일’이라 스스로를 호명한다. 그와 동시에 추는 ‘말춤’은 결코 강남의 스타일이라 볼 수 없는 경박한 동작이다. 계급적 개념으로 출발하였으나 탈권위적이고, 내수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나 부차 설명 필요 없는 바디 랭귀지다.

이 점에서 유튜브가 ‘강남스타일’의 성공에 날개를 달아준 매체인 사실은 우연 아닌 필연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영상으로 하나가 되는 디지털 플랫폼에서 ‘강남스타일’의 뮤직비디오는 전 세계 만국 공통어로 기능했다. 당시 유행하던 셔플 댄스 스타일을 적극 가져온 탓에 장르적 격차도 없었다. 현재까지 ‘강남스타일’의 조회수는 40억 회. 미국에서, 영국에서, 전 세계에서 유튜브를 통해 싸이를 보고 싸이를 듣고, 싸이를 찾기 시작했다.

‘강남스타일’이 일반적인 K-POP의 규칙을 따른 곡은 아니다. 댄스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 모든 면에서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 노래가 없었다면 오늘날 K-POP의 역사는 먼 길을 돌아왔을 것이다. ‘강남스타일’부터 비로소 세계는 한국의 대중문화에 귀를 기울이고 눈을 뜨기 시작했다. 마니아들의 문화로 여겨지던 K-POP은 ‘강남스타일’부터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하는, 쿨하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새로운 문화적 대안으로 인식되었다. K-POP을 넘어 너른 문화 진영이 ‘강남스타일’의 성공과 디지털 마케팅, 바이럴을 적극 연구했음은 물론이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세계 문화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로 미국 '로컬' 시장을 정복했다. 경쾌한 '말춤'으로부터 출발한 음악이 이제 거대한 말발굽 소리가 되어 온 세계인의 심장을 울리고 있다.

from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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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위
제목
Dynamite
아티스트
방탄소년단
심사평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세계 음악 산업의 지도에 K-POP의 본고장 한국의 위치를 새겨넣었다면 BTS의 ‘Dynamite’는 팝의 본고장인 미국의 중심을 타격하며 예외적이나마 ‘1위’라는 인증을 함께 얻어냈다. 표면적으로는 ‘Dynamite’라는 곡이 얻은 결과이지만 결코 이 곡만으로 얻어낸 성과는 아니다. 이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BTS가 대중음악사상 거의 유례가 없는 방식으로 미국 시장의 정상을 밟게 된 과정을 되돌아 봐야 한다.

이들은 미국 주류 음악 산업의 관점에서는 사실상 인디에 가까운 존재에 불과했고, 이들에 대한 미디어의 뒤늦은 관심역시 그 어떤 전략의 부재속에 팬들의 자발적 홍보만으로 이끌어낸 것이었다. 미국 시장을 겨냥한 홍보용 싱글이나 그 어떤 흔한 현지화 공략 없이 이들은 어느새 빌보드 차트에 앨범을 진입시켰고, 미국 팝 스타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탑 소셜 아티스트> 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 그 후의 이야기는 그대로 전설이다. <빌보드 200> 정상, <빌보드 뮤직 어워드> 수상 등 미국 주류 시장의 정복이 현실화 되었고,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빌보드 HOT 100>의 정상을 ‘Dynamite’를 통해 밟게 되었다.

K-POP 뿐 아니라 세계 대중음악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록되어 모자람이 없을 이 기적적인 성공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 풀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단 한곡의 바이럴 인기나 맞춤형 전략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Dynamite’는 유례없는 펜데믹 한복판에서 발표된 BTS 커리어 최초의 영어 싱글이다. 디스코 리듬에 얹은 경쾌한 복고풍 멜로디, 마이클 잭슨이나 르브론 제임스를 비롯한 미국 아이콘의 소환 등은 분명 이 곡이 미국 FM 라디오라는 높은 장벽을 넘을 수 있게 만든 요인이다. 하지만 전략은 그게 다였다. 언뜻 그렇게 특별하지 않게 들리는 매끄러운 댄스곡 ‘Dynamite’의 성공은 너무 당연하게도 그게 BTS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로벌 아미들의 든든한 지원 속에 K-POP은 그들을 통해 비-서구권 팝 스타들이 일찍이 성취하지 못했던 글로벌 팝 아이콘이라는 상상치 못한 영예를 얻게 되었다.

from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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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5위
제목
Gee
아티스트
소녀시대 (GIRLS' GENERATION)
심사평

2000년대 후반은 과장하면 ‘소녀들의 시대’였다. 보이그룹이 아이돌 시대를 개막하고 K-POP을 선점했다고 해도, 아이돌/K-POP의 대중화를 성취한 쪽은 걸그룹이었다. 그러한 ‘걸그룹 열풍’에서 정점을 찍은 것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소녀시대였다. 데뷔 후 얼마간 절치부심하는 기간도 존재했지만 ‘Gee’의 부상을 통해 2009년 한 해를 뜨겁게 달구며 전국적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었다. 같은 해, 원더걸스의 ‘Nobody’(JYP엔터테인먼트)가 미국 모타운 걸그룹의 노스탤지어를 복제하고, 2NE1의 ‘Fire’(YG엔터테인먼트)가 힙합 무드를 기반으로 꿈과 기개를 거침없이 펼치는 기조와는 다르게, 소녀시대는 단정하고 조화로우며 신비로운 유형을 보여주었다. 같은 소속사 선배이자 1세대 걸그룹 S.E.S.의 계보를 이어받으면서도 좀더 보편적인 소녀 이미지를 구현했다.

애초부터 동일한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것은 아니었다. 데뷔 싱글 [다시 만난 세계](2007)에서 자신감 넘치는 가사와 로킹한 사운드로 힘차고 단단한 인상을 부여했던 것과 달리, ‘Gee’에서는 수줍음과 생기발랄함을 전달하는 노선으로 선회한 결과였다. 첫사랑의 이미지와 반짝반짝 눈이 부시게 만드는 대상이 결국 소녀시대 자신으로 환원된다는 점에서 재귀적인 산물이기도 했다. 소녀의 감정과 노래의 의미는 감탄사(또는 의성어나 의태어)의 무한 반복이 ‘훅’으로 작동하는 순간, 그리고 ‘gee’와 ‘baby’의 반복적 도열이 충돌하는 순간 확정된다.

무엇보다 상큼하고 세련된 감각의 유로 팝 및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으로 향하는 이트라이브의 작사·작곡도 중요하다. 동시대적 감수성이 고스란히 이식되며 (같은 해에 발표된 드자인뮤직 작곡의 ‘소원을 말해봐(Genie)’와 함께) 글로벌 팝을 지향하는 걸그룹의 좌표를 획득했다.

앨범 이미지와 무대를 통해서는 흰 티와 청바지(또는 원색의 스키니진), 그리고 롤러스케이트만으로도 압도하는 활기찬 분위기와, 9인조라는 대규모 편성임에도 깔끔하면서도 일사불란한 군무가 더해진다. 이는 쇼윈도우에 전시된 마네킹의 이미지를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성에게 통용되는 여러 다양한 이미지를 계량하여 한 가지 모범 답안을 완성한 결과이다. 그런 점에서 조화와 균형, 표준과 모범은 항상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게 만드는 당의정 같다.

from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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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6위
제목
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
아티스트
소녀시대 (GIRLS' GENERATION)
심사평

‘다시 만난 세계’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지난했다. 본래 2003년 밀크의 2집 타이틀곡으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그룹의 급작스런 해체로 빛을 보지 못했고, 계류 상태에 있던 곡을 소녀시대가 1년에 달하는 준비 기간을 거쳐 2007년에야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해묵은 세월만큼이나 ‘다시 만난 세계’는 당시 트렌드와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뚜렷한 기승전결을 따라 우직하게 사력을 쏟아붓는 4분 25초의 대곡은 당시 아이비, 이효리, 천상지희, 원더걸스, 카라 등이 시도하던 시크한 댄스 팝과는 거리가 있었고, 직후 EDM과 힙합을 배합한 빅뱅의 ‘거짓말’과 후크송의 시대를 쏘아 올린 원더걸스의 ‘Tell Me’로 뒤집힌 K-POP의 흐름 속에서 더욱 예스러운 느낌을 풍겼다.

그러나 노래의 생명력은 질기고도 강했다. 전조와 함께 터질 듯한 합창으로 격정에 치닫는 마지막 후렴구처럼 ‘다시 만난 세계’는 시간이 갈수록 위력을 더해갔다. ‘다시 만난 세계’의 하드코어한 에너지, 희망찬 메시지, 군더더기 없는 앙상블은 아이돌 데뷔곡의 교과서로 여겨지며 숱한 연습생들의 커버 레퍼토리가 되었고, 2014년 도쿄 돔 라이브 영상, 2016년 Mnet <프로듀스 101> 평가 무대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며 노래방에서 가장 꾸준히 사랑받은 소녀시대의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이화여대 시위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졌을 때, 언론은 앞다투어 “새 시대의 투쟁가”라는 헤드라인을 내보냈다. 하지만 현장에서 ‘다시 만난 세계’가 선곡된 이유는 단순했다. “모두가 알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라는 것. 저항의 목적을 띤 투쟁가이기보다 여성-청년 동지 간 연대의 확인에 더 가까웠던 셈이다. 무심코 시작된 노래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라는 대목에 다다랐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촛불 시위와 다양한 인권 집회, 그리고 태국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끝내 시대의 상징이 되어 퍼져나간 연대의 돌림노래를 들으며 생각해본다. K-POP은 물론 그 어떤 대중가요에서도 ‘다시 만난 세계’만큼의 생명력을 지닌 곡은 찾기 어려울 거라고.

from 스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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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위
제목
내가 제일 잘 나가
아티스트
2NE1
심사평

CL의 입에서 이 당찬 일곱 글자가 쏟아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걸그룹 스왜그의 영원한 캐치프레이즈라 불릴 이 상징적인 오프닝은 이듬해 등장할 문제작 ‘강남스타일’의 도입부와 함께 K-POP 역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제일 잘나가’를 단순히 당대의 히트가요, 혹은 2NE1이라는 그룹의 커리어를 규정하는 대표곡 정도로만 기억하기엔 아쉽다. 이 곡은 K-POP, 그 중에서도 걸그룹의 음악에 완전히 새로운 태도와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곡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 이제 막 아이돌 산업을 탄생시킨 K-POP은 스파이스 걸스와 TLC로 대표되는 블랙뮤직 기반의 ‘걸크러시’ 영미권 걸그룹 열풍을 바라보며 기존에 가요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미지와 사운드의 실마리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걸스힙합‘ 혹은 ’뉴질스윙‘이라는 용어로도 불렸던 이 유행은, 통제되지 않는 자유분방하고 발랄한 소녀 혹은 여성의 태도를 앞세우고 블랙뮤직, 그 중에서도 힙합과 알앤비의 문법을 주된 사운드적 정체성으로 삼는다. 디바나 베이비복스 같은 새로운 형태의 걸그룹이 잇따라 등장했고, YG는 그들 최초의 걸그룹인 스위티(Swi.T)를 통해 향후 2NE1에 시도될 여러 음악적 문법을 미리 시험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2NE1은 음악과 이미지, 태도 모두에서 훨씬 현대적으로 진화된 그룹이었다. 최신 힙합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자양분으로 삼은 이들의 음악은 프로덕션의 수준이나 만듦새에 있어서 외국 음악들에 비교해도 손색없을 동시대성을 획득하고 있었고, CL과 박봄 등의 출중한 보컬과 랩 능력을 통해 구현되는 존재감은 그들의 ’스왜그‘에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그 정점에 바로 ‘내가 제일 잘나가’가 있다. 현재 글로벌 K-POP 신을 이끌고 있는 블랙핑크의 성공도, 사실상 블랙핑크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는 수많은 후배 걸그룹들 역시 이 곡을 통해 2NE1이 제시한 모델의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from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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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위
제목
Abracadabra
아티스트
브라운아이드걸스
심사평

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는 2009년 발표 이래 현재까지 최고의 K-POP 곡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노래 앞에 감히 어떤 곡을 놓을 수 있을까? 곡이 발표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노래처럼 압도적인 K-POP을 찾기 어렵다. 히치하이커(지누) – 이민수 - 김이나라는 K-POP의 기라성같은 프로덕션팀이 만들어낸 훌륭한 음악, 당시로서는 낯선 콘셉트였던 ‘센캐’를 확실하게 구현한 ‘시건방춤’ 퍼포먼스, 그리고 파격적인 뮤직비디오까지 그야말로 K-POP의 삼위일체를 이루어낸 혁명과 같은 곡이 바로 ‘Abracadabra’다.

2009년을 돌이켜보면 ‘Abracadabra’와 같은 노래가 탄생했다는 것은 거의 기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장르적인 측면에서 K-POP 사상 최초로 ‘딥 하우스’ 계열의 음악을 선보였다는 점. 당시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던 K-POP 트렌드에서 일렉트로닉 장르를 제대로 구현한 편곡이 대중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K-POP의 수준이 몇 단계 도약한다.

사실 ‘Abracadabra’는 우연한 계기로 완성됐다. 아이돌그룹 작업 경험이 전무했던 롤러코스터 출신의 지누가 클럽 DJ 시절 만들었던 딥하우스 트랙에 히트곡 메이커들이었던 이민수 작곡가가 사비를 만들어 붙이고 김이나 작사가가 가사를 쓰면서 기존 K-POP에서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지누는 ‘히치하이커’란 이름의 K-POP 전문 작곡가로 변신한다.
배윤정 안무가가 만든 ‘시건방춤’은 당시로서 낯선 장면이었던 걸그룹의 ‘센캐’를 제대로 구현한 기념비적인 퍼포먼스였다. 이 춤이 김이나 작사가의 도발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가사와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면서 전대미문의 걸그룹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로써 브라운아이드걸스는 섹시함과 귀여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기존 한국 걸그룹 씬에 새로운 길을 여는 도약을 이루어낸다.

황수아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에는 무려 연인의 몸에 폭탄을 설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메타포는 ‘Abracadabra’가 지닌 독한 에너지를 표현해내기에 충분했다. 여러가지로 이 곡은 당시 한국 정서상 시도하기 힘든 모든 것들을 너무나 멋지게 이뤄내 버렸다. 제아, 미료, 나르샤, 가인은 피나는 노력으로 이를 구현했고 대중은 2009년 음원 수익 3위라는 열렬한 반응으로 화답했다.

from 권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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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9위
제목
Tell me
아티스트
원더걸스
심사평

전세계적 트렌드로 등극한 K-POP의 위용엔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여러 순간들이 존재한다. 만약 그 연대기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을 꼽는다고 하면, 주저없이 ‘이 노래가 일으킨 나비효과’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던 이 전대미문의 히트는, 단순한 인기곡을 넘어 당시만 해도 지분이 크지 않았던 아이돌 신을 순식간에 메인 콘텐츠로 끌어올렸다. 지금과 같은 K-POP신 형성에 단초를 제공한 선구자적 상징성. 다른 위대한 노래를 대적하게 한다 한들, 업적의 측면에서 이 곡을 능가할 결과물이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특히 이 노래는 현재에도 유효한 ‘K-POP 트렌드’를 정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구절을 반복해 중독성을 유발하는 이른바 ‘후크송’ 유행의 시작점이자, 아이돌 팝에 있어 ‘안무’의 중요성을 본격적으로 부각시킨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스테이시 큐의 ‘Two of hearts’ 샘플링을 통한 디스코 리듬 기반의 포인트 있는 춤은 보는 재미를 넘어 ‘따라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 결과 수많은 ’00 텔미’가 탄생했고, 전국민이 참여하는 범세대적 콘텐츠로 퍼져 나가며 폭발적 인기를 견인하기도 했다. ‘커버 댄스’의 시초이기도 한 셈이다.

이 노래가 주도했던 걸그룹 열풍은 중장년층 팬덤을 탄생시켰고, 아이돌이 10대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보편적인 콘텐츠로 정착하는 배경이 되었다. 더불어 제작자들은 기억에 남는 ‘퍼포먼스’ 개발에 골몰하며 무대의 중요성을 제고하게 만든 계기이기도 했다. 물론 동시대에 활약했던 소녀시대와 카라 역시 아이돌 신 부흥에 어느 정도 그 지분이 있지만, 결국 판도를 바꾼 자에게 조명되는 스포트라이트는 이 곡의 몫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K-POP의 개념을 정의함과 동시에 그 중흥기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힌 작품.

from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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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0위
제목
주문-MIROTIC (Original Ver.)
아티스트
동방신기 (TVXQ!)
심사평

‘주문-MIROTIC’의 첫인상은 조금 허전하다. 도무지 장식이랄 게 없다. 곡의 도입부부터가 그렇다. 심장 소리 같기도, 경고성 노크 같기도 한 둔탁한 리듬만 ‘우리 사이에 통성명은 필요 없겠지’ 같은 기세로 몇 번 던져주고 말 뿐이다. 뒤이어 본격적인 후렴구가 나올 때까지 곡을 이끌어가는 건 오로지 멤버들의 목소리뿐이다. 곡을 만들다 만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본적인 비트만 주어진 가운데 ‘시작은 달콤하게 평범하게 나에게 끌려’로 시작되는 영웅재중, 최강창민, 시아준수, 믹키유천의 목소리가 곡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음정 하나, 노랫말 하나마다 숨 막힐 정도로 섬세하게 조율된 화자와 청자의 밀고 당기기가 끝난 뒤 네가 기다려온 그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듯 강압적인 후렴구가 폭발한다. ‘넌 나를 원해 / 넌 내게 빠져 / 넌 내게 미쳐 / 헤어날 수 없어 / I got you under my skin’.

그룹 동방신기의 대표곡이자 K-POP의 섹시함과 강렬함을 언급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대표곡 ‘주문-MIROTIC’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노래다. 이 곡이 발표된 2008년 당시 동방신기의 기세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꾸준히 공 들여온 일본 시장에서 처음으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K-POP 대통합을 이루었다는 대형 팬덤은 2년 가까이 이루어지지 않은 국내 컴백을 손이 곱을 지경으로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용암 분출 직전처럼 끓어오른 분위기 속 등장한 ‘주문-MIROTIC’은, 예상과는 달리 동방신기의 그 어떤 전작보다 정제된 느낌을 주는 감각적인 곡이었다. ‘허전하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최소화된 리듬과 절제된 퍼포먼스는 'Rising Sun'이나 'O"-正.反.合.'같은, 당시까지 동방신기를 대표하던 곡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이 주효했다.

멤버들의 성숙함과 보컬 실력을 전면에 앞세운 노래는, 이전보다 훨씬 쉽고 빠르고 넓게 팬과 대중을 장악해 갔다. 차분히 가라앉은 노래는 얼핏 쉬워 보이지만, 가창에서 퍼포먼스까지 일정 이상의 능력치가 없으면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타이트함으로 가득 차 있다. 셀 수 없는 K-POP 그룹이 다시 부른 곡이지만, 원곡 느낌을 내기 가장 어려운 노래로 손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K-POP 역사상 가장 뜨거운 실력과 에너지를 가졌던 그룹의, 가장 뜨거웠던 노래다.

from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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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1위
제목
Sherlock•셜록 (Clue + Note)
아티스트
SHINee (샤이니)
심사평

이른바 ‘Hybrid Remix'로서 ‘Sherlock’이 놀라운 것은 ‘Clue + Note'라는 부제와 함께 EP에 직접 두 트랙을 수록하며 “서로 다른 곡들을 섞어 하나의 곡으로 재탄생 시킨” 단서를 몽땅 제시함에도, 곡 자체만 놓고 들었을 때에 ‘Clue’와 ‘Note’, 그리고 ‘Spoiler’의 도입부까지 섞였다는 것을 쉽사리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토록 말끔하게 가능했던 것은 ‘주문’과 ‘NU 예삐오’ 등에 참여했던 작곡가 토마스 트롤슨(Thomas Troelsen)이 각 트랙에 모두 참여하며 조합을 위한 공동의 바탕이 마련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Sherlock’은 ‘두 곡과 하나의 인트로의 조합’이기보다는 마법처럼 짜 맞춰져 ‘하나의 트랙’이 된다.

이를테면, ‘Clue’에 속한 "긴 밤 불꽃처럼 터져 baby"가 빽빽한 화성으로 긴장감을 잔뜩 끌어올려 브릿지를 매듭짓자마자 정말로 폭발하듯 솟아오르는 신스 리프가 이어지며 ‘Note’의 후렴구로 도입하는 구간이 상징적이다. 양쪽 부분에 모두 등장하는 브라스 사운드와 기초적인 박자가 저류에서 이어지는 덕에, 이 극적인 진행의 연결부에서는 짜릿한 쾌감이 만들어지면서도 전개의 연속성 또한 단단하게 보장된다. SMP식 작법이 주로 이질적인 음색, 선율, 화성, 속도 간의 강한 충돌을 대조하는 것과 달리, ‘Sherlock’은 도리어 그 조합적인 성질을 전면적으로 내세우면서도 화려한 탑 라인을 롤러코스터 트랙처럼 연결해, 거기서 발생하는 낙차를 능숙하게 강조한다. 그러한 ‘연속적인 불연속성’은 샤이니의 인상적인 정규 3집을 예비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구간들을 하나로 봉합할 때 맞닿으며 생기는 충격파를 강조하는 아이돌 팝의 문법을 대표하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토니 테스타(Tony Testa)가 제공한 전례 없이 격렬하고 정교한 안무를 소화하고 안정적인 보컬 실력까지를 갖춘 다섯 멤버들의 역량 덕에, ‘Sherlock’은 완성도에 걸맞은 퍼포먼스까지 겸비하게 되었다. 미스터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범인의 단서를 찾아나서는 노랫말은 멤버들의 동작이 각기 다른 잔상처럼 남거나, 때로는 일치단결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서로 모이고 흩어지는 안무로 표현되어 이 추리극을 완성한다. 그렇게 ‘Sherlock’은 아이돌 팝의 안팎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이 유감없이 결합된, 가장 상징적인 트랙으로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from 나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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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2위
제목
쏘리 쏘리 (Sorry, Sorry)
아티스트
SUPER JUNIOR (슈퍼주니어)
심사평

지금의 슈퍼주니어를 있게 해준 곡이자, K-POP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곡 중 하나다. 2009년에 나온 이 곡은 202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많은 후배 그룹에 의해 커버되거나 회자되는 중이다. 유튜브 조회수 1억 기록은 물론 <대만 KKBOX 차트>에서는 121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국내에서도 <멜론 연간 음원차트 >9위에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곡을 발표하기 전까지 슈퍼주니어의 인지도가 크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작품 이후 그룹의 위상이나 대우가 완전히 달라졌다. 워낙 어수선한 이미지의 그룹이었지만 대규모 인원의 결속력 있는 안무와 동선, 단체 활동을 통해 이들은 결속력을 얻게 되었고 그 덕에 두 번째로 장수하는 아이돌 그룹이 되었으며 후에 자신들의 레이블을 얻게 되기도 한다. 곡은 이른바 ‘SJ Funky’라 불리며, 비슷한 구성의 곡인 ‘Mr. Simple’과 ‘미인아’, ‘Sexy, Free & Single’로 이어지는 활동을 만들기도 했다. 존재감 강한 신스에 비교적 단순한 구조의 사운드 구성과 후렴, 2000년대 후반에 유효했던 전자음악과 컨템포러리 알앤비의 결합에 훵크의 요소까지 더하며 곡은 기존에 SM엔터테인먼트가 선보였던 여러 곡과는 여러모로 다른 분위기와 지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꽤 많은 인원이 단순히 같은 동작의 집단 군무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캐치한 안무를 포인트로 두는 동시에 공간을 활용하면서 구조적으로 멋진 안무를 선보이며 이후 많은 K-POP 그룹에 영향을 줬고, 사실상 1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 보이그룹의 시초 격이기도 한 이들은 ‘Sorry, Sorry’ 전후로 각 멤버가 예능에서도 활약하며 탄탄한 활동을 이어 나간다.

‘Sorry, Sorry’ 덕분에 슈퍼주니어는 중화권 최고의 아이돌로 급부상했고, 이들의 월드 투어인 역시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일본에서는 공연 때마다 10만 명이 넘는 관중을 모으기도 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고초를 겪어야 했지만 끝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후 각종 사건 및 사고 때문에 이미지에 타격을 입기도 했지만,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긴 존재감 있는 K-POP 보이그룹에게 가능성과 활동 방향을 제시해준 곡이다.

fr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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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3위
제목
뚜두뚜두 (DDU-DU DDU-DU)
아티스트
BLACKPINK
심사평

Pretty Savage. 블랙핑크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닐까. 2021년 현재 블랙핑크는 파격의 아이콘이다. 2016년 데뷔 이후 2NE1의 아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세간의 걱정을 비웃듯 이들은 2018년 첫 미니앨범 [SQUARE UP] 하나로 모든 우려를 순식간에 날려버렸다. 그리고 그 파격적 컴백의 중심에는 희대의 명곡, ‘DDU-DU DDU-DU’가 있다.

파워풀하고 누구에게도 주눅들지 않는 핑크색 불꽃은 이 곡을 통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K-POP 걸그룹으로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뮤직비디오에서 제니가 타고 등장하는 강력한 반짝이 탱크는 원한다면 무엇이든 우리 것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블랙핑크의 포부였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Toxic하고 Foxy함을 굳이 숨기지도 않는 당당한 퍼포먼스는 대한민국을, 나아가 세계를 매료시켰다.

블랙과 핑크가 결합한 세계관 속에서 그들은 오빠의 사랑을 갈구하는 소녀도 적당히 멋진 구석이 있는 흔한 센 언니도 아니다.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쏴버리겠다는 네 여성의 선언은 치밀하게 짜여진 음악과 맞물려 하나의 에너지로 폭발했다. 테디의 노련한 프로듀싱과 멤버들의 조화로 블랙핑크는 블랙하면서도 핑크한, 그들만의 색을 창조해냈다.

블랙핑크는 이 노래를 통해 한국 여성 아티스트가 세워온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며 이 이후에 있을 성공공식을 완성시켰다. EDM 트랩 비트를 기반으로 쌓아올린 에너제틱한 곡 전개, 전국민이 따라부를 수 있는 “Hit you with that ddu-du ddu-du du” 라는 강렬한 훅과 이를 소화하는 멤버들의 환상적인 조합. 거기에 중독성있는 총알 춤까지 더해져 ‘뚜두뚜두’는 K-POP의 심장부에 블랙핑크라는 강력한 바주카포를 날렸다.

‘뚜두뚜두’는 블랙핑크라는 팀의 정체성을 대중들에게 완전히 인식시킴과 동시에 앞으로 그들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야흐로 지금은 Savage한 ‘Pink Queen’들의 시대다.

from 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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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14위
제목
('Cause) I'm Your Girl
아티스트
S.E.S.
심사평

음악 전문 케이블 방송 채널을 통해 ‘I’m Your Girl’의 뮤직비디오를 처음 봤던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이야 사진은 물론 영상에도 보정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당시만 해도 흔히 볼 수 없었던 밝고 화사하게 처리된 영상 속에서,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자주 볼 수는 없었던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3인조 댄스그룹이 등장하여 너무도 열심히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그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뮤직비디오가 나온 직후 S.E.S.는 곧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고, 그것은 데뷔곡 ‘I’m Your Girl’의 대히트로 이어진다.

물론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 김완선을 비롯하여 90년대 신세대 댄스음악으로 넘어온 이후에도 댄스음악을 하는 여성 가수는 항상 존재했지만, 대체로 그들은 솔로 가수이거나 혼성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러한 공식은 1997년 데뷔하여 인기를 얻은 3인조 여성 그룹 ‘디바’의 등장으로 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창 인기를 누리던 H.O.T.나 젝스키스처럼 ‘아이돌’로서의 인기를 누렸던 걸그룹은 여전히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S.E.S.는 이전까지의 여성 그룹들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이뤄냈다. 즉 H.O.T.가 ‘국내 최초의 아이돌 그룹’이자 ‘K-POP의 시작’이라면 현재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K-POP 걸그룹의 시작은 바로 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음악 스타일은 물론 보정이 잔뜩 들어간 뮤직비디오 영상 색감과 분위기, 패션, 무대에서의 춤, 외적 이미지는 이후 곧 등장하는 다른 1세대 걸그룹의 전범(典範)이 되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핵심은 크게 변하지 않은 채로 현재 K-POP 걸그룹에게까지 이어져 왔다.

따라서 ‘I’m Your Girl’은 발매 당시 음악계에 준 충격이나 후세에 끼친 영향력 모두 K-POP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H.O.T.의 ‘전사의 후예’/‘Candy’ 등과 더불어 K-POP의 시작인 동시에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를 현재 위치에 올려놓은 중요한 분기점이 된 노래다.

from 이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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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5위
제목
좋은 날
아티스트
아이유
심사평

작금의 아이유에게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의 수많은 히트곡이 존재하지만, 그중 아무 곡을 짚어 발생지를 추적해보면 ‘좋은 날’이라는 중심지로 귀결되기에 이른다. 그만큼 ‘좋은 날’은 아이유 세계관의 기반이자 모든 연결점에 존재한다. 이 곡에 소량의 판타지 요소를 추가하면 ‘너랑 나’가, 복고적인 성향을 더하면 ‘분홍신’이 되며, 그리고 주제 의식과 시적 가사를 추려내어 간소한 어쿠스틱에 입히면 ‘금요일에 만나요’가 된다. 그의 역사를 논하기 앞서 이 곡을 제외하고는 설명하기가 불가할 정도로, 명실상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에 반열에 올라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큰 도움을 준 곡이다.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오케스트라 세션 기반의 경쾌한 작법과 이야기 형식을 취하는 노랫말이다. 이민수 작곡, 김이나 작사라는 이미 검증된 조합은 ‘좋은 날’과 더불어 후속곡 ‘너랑 나’ ‘분홍신’에서도 그 기세를 유지하며 전성기 아이유의 트레이드 마크로 명백하게 자리잡는다. 이는 당시 K-POP 전반에 유행하던 전자음과 오토튠 중심 세력과 궤를 달리하는 구분점이기도 했다. 각인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지니더라도, 그 방식은 중독적인 후크 스타일이 아닌 다채로운 악기 운용과 세련된 멜로디 라인을 촉매로 한 세대 막론의 자연스러운 접근 유도였다. 그에게 ‘국민 여동생’ 타이틀이 붙은 것도 곡이 지닌 너른 포용력에 기반한다.

무엇보다 주어진 환경을 완벽하게 소화한 아이유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양질의 K-POP 노래 가운데서도 ‘좋은 날’이 여느 입지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던 것은 단박에 떠오르는 하이라이트의 존재에 기인한다. 일명 ‘3단 고음’이라 불리는 ‘I’m in my dream’ 파트에서 약 15초간 지속하며 펼치는 퍼포먼스는 무수한 패러디와 오마주를 낳으며 그 파괴력과 화제성을 증명했다. 안정적인 음역대와 선명한 고음 처리가 빛을 발한 이 구간은 보컬리스트의 역량을 입증함과 동시에 가창력의 중요도를 제시하며 훗날 시장의 전반적인 기준과 퀄리티를 높이는 데 일조했다.

산뜻한 도입부를 기점으로 세밀한 층위를 쌓아 나가며 전체적인 풍경을 스케치하는 기악 편곡, 장르 불문의 악기가 보컬과 문답을 주고받는 재치 있는 형식, 게다가 화자를 부각하며 서사성을 강조하는 영리한 구조와 광범위한 기호를 고루 충족하고 몰입감을 높이는 뮤지컬적 연출, 또한 적시에 찾아온 기회를 최고의 결과로 환산했다는 시기적인 운까지. 2010년대를 맞이해, 아이유 시대의 개막을 연 ‘좋은 날’은 대중음악이 제시하는 모든 기준을 전부 충족하는, 가장 모범적인 K-POP의 예시일 것이다.

from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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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16위
제목
10 Minutes
아티스트
이효리
심사평

쟁쟁했던 1세대 아이돌들 사이에서 종국에 이효리가 가장 놀라운 인물이 되어 세상을 흔들 것이라고 미리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10 Minutes’와 함께 시작됐음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당대 힙합 R&B의 트렌드를 깔끔하게 끌어온 비트는, 이를테면 핑크 팬더의 한 장면처럼, 해학스럽고도 수상한 긴장을 제시했다. 끝없이 반복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그 사운드 위를 걷는 것은 낙천적이고 유쾌한 악역이었다. 자기도취와 자신감으로 가득한 그는 클럽에서 처음 만난 상대를 애인에게서 빼앗을 것이며, 거기에 사랑 따위가 개입하는 것을 참을 수 없을 것이었다. “순진한 내숭에 속아 우는 남자들”이 즐비한 희극적 풍경 뒤로 그는 장난스럽다는 듯 즐겁게 웃고 있었다. 빨간 립스틱은 촌스럽다고 말하는 그는, 사실은 순정이 가득하고 뒤에서 눈물짓는 신파 세계의 팜므파탈에 돌이킬 수 없는 종지부를 찍어냈다. 이효리는 마침내 도래한 현대였다.

그러니 이후의 이효리는 늘 첨단이어야만 했고, 아티스트 자신에게는 주박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 곡은 오래도록 K-POP에 깊은 족적을 남겼다. 청자를 향해 여성 가수의 목소리로 자신의 매력을 브랜딩하듯 주장하는 언어나, 비장하거나 달콤하기만 하기보다는 유쾌한 순간을 제공하는 걸그룹의 정서적 태도 등, 이후 최소 6, 7년간 K-POP 시장의 문법은 이 곡의 줄기 위에서 꽃피었다. 이효리를 보며 꿈을 키웠다는 가수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것도 놀랍지 않은 일이다.

또한 이 곡은 많은 소녀에게 단지 지루해서, “왠지 끌려”서, 모든 여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상대를 선택해도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K-POP식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실제의 청자는 노래의 사소하게 지나쳐가는 부분들까지도 흡수하여 표면적 메시지와는 또 다른 말들을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금의 K-POP에 코어 팬을 사로잡기 위해 심어지는 노림수 가사나, 조금 무거운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기술 등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K-POP식의 ‘더블미닝’ 역시 ‘10 Minutes’에 크게 빚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from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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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7위
제목
Candy
아티스트
H.O.T.
심사평

먼 훗날 K-POP 연대기가 거대하면서도 까마득한 신화로 남았을 때 이야기의 첫 주인공은 누가 돼야 할까? 다양한 의견과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 만일 이를 K-POP 아이돌의 세계관으로 한정했을 때 H.O.T.가 반드시 가장 처음 언급돼야 할 것은 확실하다. 20세기에 대한 향수를 본격적으로 퍼뜨린 드라마 <응답하라 1997>(2012)과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특별 기획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2014)가 당대 문화의 중심으로 누구를 지목했는지 여부와 답은 일치한다. 그리고 이러한 H.O.T. 신화의 기원에는 ‘캔디’가 있다.

물론 ‘캔디’ 이전에 H.O.T의 데뷔곡 ‘전사의 후예’(1996)가 있기는 하다. 이제는 유명무실한 그룹명 ‘High-five of Teenager’(10대의 외침) 때문인지 당시 H.O.T에는 ‘10대의 대변자’라는 이명이 항상 뒤따랐고, 그룹 멤버들 역시 그들 자신의 우상이자 비슷한 시기에 EP [시대유감(時代遺憾)]을 발표하며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쏟아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따라 학교 폭력과 청소년 범죄를 가사 소재 삼은 ‘전사의 후예’를 타이틀곡으로 원했다. 그러나 이 노래가 차근차근 인지도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표절 논란에 휩싸여 H.O.T는 급히 후속곡 ‘캔디’ 체제로 전환한다.

무채색의 어둡고 둔탁한 힙합 사운드의 ‘전사’들이 귀엽고 말랑말랑하며, 오색찬란한 댄스 팝 ‘소년’들로 순식간에 둔갑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꽤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데뷔곡의 승승장구를 넘어선 초기 아이돌 역사와 20세기 문화사 우뚝 솟은 대성공. H.O.T는 신비주의 콘셉트 아래 ‘문화 대통령’이라고 불린 서태지와 또 다르게 우리 주변의 아이콘이자 신드롬이 되었고, ‘캔디’를 이루는 노래와 여러 가지 춤, 관련 패션, 다양한 파생상품과 이를 소비하는 팬덤 문화는 모두 오늘날 K-POP 비즈니스의 선구적 모델이 되었다.

어쩌면 세기말을 눈앞에 둔 1990년대 중반, 대중이 더는 20세기 재즈 스타나 록스타처럼 우울하거나 거친 스타를 바라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이후 유피의 ‘뿌요뿌요’나 H.O.T의 ‘행복’(1997) 등 가요사에서 밝고 희망찬 선율과 서사를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장용진이 불과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곡을 썼다는 사실은 ‘캔디’의 탄생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게도 한다.

from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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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18위
제목
미스터
아티스트
카라
심사평

‘미스터’는 2009년 발매한 카라의 2집 [Revolution]의 수록곡인데, 사실 이 앨범의 타이틀은 ‘미스터’가 아닌 ‘Wanna’였다. 그러나 ‘Wanna’가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얻은 반면 후속곡 개념으로 공개된 ‘미스터’가 의외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드디어 카라는 정상급 아이돌 그룹으로 올라선다.

사실 이 때까지만 해도 앨범 발매와 함께 공개되는 타이틀곡이 아닌, 앨범의 다른 수록곡이 후속곡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후에 더 큰 인기를 얻는 것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K-POP 가수들의 활동이 정규 앨범 기반이 아닌 ‘미니 앨범(EP)’과 싱글, 정규 앨범이 혼재된 방식으로 바뀌고 음악의 소비 방식도 싱글 단위 스트리밍 중심으로 바뀌다 보니 ‘후속곡’이나 ‘늦깎이 히트’ 같은 개념은 사라지고 대표 싱글이 앨범 발매 한 달 이내에 차트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조금 늦게 알려지는 노래들은 ‘역주행’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게 되는데, 그렇다면 이 ‘미스터’는 후속곡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던 시대의 끄트머리에 있는 곡이자 역주행 현상의 시작점과 같은 곡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미스터’가 K-POP 역사에서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바로 K-POP을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찾아 듣는’ 장르의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점일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한류에 시큰둥하던 일본은 <겨울연가>의 대히트와 욘사마 열풍으로 한류의 주요 대상국으로 자리 잡게 되지만,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는 중년층 이상 여성들만의 마니아적 문화로 인식되었고 K-POP 역시 한국드라마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듣는 음악일 뿐 대중음악 트렌드의 중심인 젊은 세대로부터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보아나 동방신기처럼 현지에서 일본 작곡가가 만든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며 활동하는 가수들만이 제이팝의 일부로 여겨지며 인기를 얻었을 뿐이다. 그러나 카라의 ‘미스터’가 젊은이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일본 시장에서의 K-POP은 그 영역을 크게 확장했고, 이후 소녀시대와 빅뱅을 비롯한 많은 K-POP 그룹이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미스터’는 K-POP 역사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 곡으로, 지금보다 조금 더 대접받아야 하는 곡이 아닐까 한다.

from 이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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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9위
제목
거짓말
아티스트
BIGBANG (빅뱅)
심사평

2006년 데뷔한 5인조 빅뱅을 스타덤으로 올려놓은 최고의 견인차이자, 새로운 세대의 아이돌이 도래했음을 천명한 곡은 2007년 [Always]의 타이틀곡 ‘거짓말’이다.

인트로는 일종의 클리셰 같기도 하다. 일본의 프리 템포(Free Tempo)나 다이시 댄스(Dashi Dance) 등 당시 트렌드에 영향받은 듯 멜랑콜리하게 공명하는 건반 사운드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한숨 섞인 여성의 목소리가 교차한다. 그렇지만 하우스 리듬 위에 랩 또는 보컬이 다층적으로 얹히며 쌓여나가는 순간, 그리고 백비트를 기반으로 “I’m so sorry but I love you 다 거짓말 이야 몰랐어 이제야 알았어 니가 필요해”라는 코러스 파트와 만나는 순간, 편안하면서도 귀에 감기는 일렉트로닉 힙합 댄스곡의 진가가 발휘된다. 빅뱅이 데뷔한 후 1년간 쌓아온 싱글 및 정규 음반보다 한결 다듬어지고 세련화되는데, 이는 지드래곤(GD)의 작사·작곡 및 용감한 형제의 편곡과 맞물리며 시너지를 발산한 덕이기도 하다.

거리에서 헤매고 부표처럼 부랑하는, 또는 반항하고 질주하는 이미지의 뮤직비디오와 스트리트 패션도 빅뱅 세계관의 한 축으로 결합한다. 반어적으로 또는 자조적으로 실어나르는 거친 외면(外面) 뒤에, 지순한 사랑에 대한 꿈이 내장되어 있다는 ‘나쁜 남자’ 서사도 동시에 완성된다.

이후 2007, 2008년 동안 ‘마지막 인사’, ‘하루 하루’, ‘붉은 노을’(리메이크) 등의 히트 행렬을 이어가며 빅뱅의 첫 번째 전성시대가 개막했다. 빅뱅은 음악적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진정성’ 마케팅 전략을 펼치며 ‘진화하는 아이돌’의 대표주자가 되었고, 이를 통해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음은 물론 진지한 음악 팬까지 포섭하게 되었다. 아이돌의 새로운 표준을 정립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YG엔터테인먼트도 동반 성장을 거듭했다. 몇몇 사건·사고에도 끄덕 없이 영원할 것 같던 불패의 신화가 ‘거짓말’처럼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질 줄은 그 시절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from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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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0위
제목
빨간 맛 (Red Flavor)
아티스트
Red Velvet (레드벨벳)
심사평

여름이 걸그룹의 격전지가 된 건 그리 오랜 일은 아니다. 여름의 파티와 축제 또는 휴가와 여행의 감각은 건강한 활력, 또는 상큼한 청량함 등의 감성을 여성 아이돌에게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그 촉매제 중 하나는 색채이다.

색상(레드)과 촉감(벨벳)의 이중 콘셉트를 교대하기로 작정한 레드벨벳에게 좀더 대중적으로 다가서기 쉬운 노선은 밝고 명랑한 ‘레드’의 노래들이다. 가령 ‘빨강’과 ‘여름’을 명시적으로 조합한 앨범 [The Red Summer](2017)이 있고, 그중에서도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충만한 ‘빨간 맛(Red Flavor)’이 있다.

켄지의 가사는 무엇보다 강렬하다. 색감과 미감(味感)의 공감각적 심상을 기반으로 딸기/사탕—여름—사랑이라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스트로베리 그 맛"에서 "여름 그 맛"을 넘어 "태양보다 빨간 네 사랑의 색깔"로 이어지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여름의 너”라는 결론으로 수렴되는 과정도 탁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시작되는 “빠-빠-빨간 맛”의 첫 구절과, 입에 손을 가볍게 가져다대는 수줍고도 깜찍한 안무도 인장처럼 즉각 새겨진다.

한편, 이 곡은 레드벨벳을 비롯한 K-POP 여성 아이돌의 작곡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스웨덴 작곡가들(Ludwig Lindell, Daniel Caesar)이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서도 레드벨벳, 나아가 SM엔터테인먼트 산(産) K-POP이 무엇을 겨냥하는지 알 수 있다. 작곡가가 직접 녹음하여 변조한 남성 목소리가 증식하는 가운데, 캐치한 선율, 발랄한 랩, 흥겨운 리듬이 다채롭게 가공되며 ‘이상하고 신비로운’ 판타지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는 수박, 포도, 키위, 파인애플, 오렌지로 각각 낙점된 멤버들의 시그니처 과일 이미지가, 음반 표지와 CD 알판 같은 앨범 아트워크부터 뮤직비디오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조합된 세계이다.

이를 통해 ‘빨간 맛’은 2017년 한 해뿐 아니라 여름 시즌 송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2018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팝 노래’ 부문에 선정된 것을 위시해 비평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from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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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21위
제목
난 알아요
아티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심사평

‘난 알아요’ 이후 모든 게 바뀌었다. 가요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등장과 함께 변화를 갈망하던 이들의 영웅이 됐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듯, 10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았다. 음악을 넘어 사회와 문화 전반의 흐름을 바꿔버린 이들의 영향력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살아있다. 오늘날 우리의 K-POP 중심 음악 시장은 사실상 이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전까지 가요는 누구나 즐기는 것이었다.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었고, 부모와 자식이 같이 무대를 봤다. ‘난 알아요’는 달랐다. 기성세대는 이들의 첨단 사운드, 빠르게 내뱉는 랩, 현란한 댄스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난생처음 보는 스타일에 어른들이 당황하는 사이, 그들만의 문화가 필요했던 10대들은 그룹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일반 대중이 랩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던 시절에 젊은이들은 “난 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을 따라 했고, 신발 밑창이 닳도록 ‘회오리 춤’을 연마했다. 상표를 떼지 않고 옷을 헐겁게 입는 일명 ‘서태지 패션’은 곧장 신세대의 유니폼이 됐다. ‘난 알아요’를 기점으로 음악 팬의 세대 분리가 이루어졌다.

이들의 음악과 춤에선 가요 팬들이 그토록 선망하던 본고장의 느낌이 났다. 이것이 서태지와 아이들에 앞서 춤을 추고 랩을 하기도 했던 김완선, 박남정, 소방차, 현진영 등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서태지는 멜로디가 아닌 랩을 중심으로 곡을 구성해 우리말로 하는 랩도 그럴듯하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록과 댄스를 절묘하게 결합한 사운드 또한 새로웠다. 양현석과 이주노의 맹렬한 브레이크 댄스는 어떤가. 그야말로 새로움의 결정체였던 이들은 순식간에 거대 팬덤을 형성했다. 모든 면에서 부모 세대와 다름을 추구한 X세대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운명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오면서 우리는 해외의 틴 팝 가수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뒤를 이을 영미의 보이그룹을 굳이 찾아 나설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가요계엔 젊고 감각적이면서도 우리말로 이루어진, 우리 정서에 맞는 팝이 늘어났다. 훗날 세계인을 들었다 놨다 하게 될 K-POP은 그렇게 태어났다. ‘난 알아요’가 비록 독일 듀오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의 ‘Girl You Know It’s True’(1988)를 재구성한 곡이라는 의심을 거두긴 어렵지만, ‘난 알아요’의 역사적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케이팝의 신화는 이 노래에서 시작됐다.

from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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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22위
제목
아티스트
이정현
심사평

그야말로 파격적이었다. 새로웠으며, 특별했다. 과거의 가수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접한 적이 없었다. 1996년 개봉한 영화 <꽃잎>으로 얼굴을 알린 이정현은 1999년 가수로 데뷔했을 때에도 <꽃잎>에서와 마찬가지로 광기 어린 퍼포먼스를 벌여 보는 이를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독보적인 아티스트의 출현이었다.

데뷔곡 ‘와’의 안무는 사실 그다지 과격하지 않다. 하지만 전주의 리듬이 나오자 무언가에 홀린 듯한 눈빛을 지으며 상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동작이 이정현의 무대를 인상 깊게 만들었다. 후렴을 부를 때 표독스러운 표정을 띤 채 양옆으로 몸을 흔드는 것도 강렬했다. 종종 음악방송에서 본격적으로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틀었던 앨범 1번 트랙의 이상한 언어로 된 내레이션 또한 이정현을 독특하게 느껴지게끔 해 줬다.

의상과 소품도 이정현이 독자성을 띠는 데에 한몫 단단히 했다. 댄스 가수들은 대부분 헤드셋 형태의 마이크를 착용하지만 이정현은 새끼손가락에 마이크를 달아서 참신함을 뽐냈다. 중국 무협 영화에서 보던 고전적인 옷, 정수리 부분만 틀어 올린 머리, 한쪽 눈만 그려진 커다란 부채 등을 통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서는 전자음악의 하위 장르인 테크노가 인기를 얻고 있었다. 사이버 문화와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는 세기말을 앞두고 생긴 뒤숭숭한 마음을 현란하고 빠르며, 때로는 음울한 테크노 음악으로 달랬다. 테크노를 골격으로 하는 ‘와’도 이 흐름을 타고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더불어 반주에 동양적인 선율을 얹어 서정미와 친근함도 확보했다.

2001년에는 이탈리아 댄스음악 그룹 반디도가 ‘와’를 표절한 ‘Vamos Amigos’를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 작곡가가 외국의 노래를 모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에 ‘와’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반디도 측이 표절을 시인하고 음반 크레디트에 최준영을 작곡가로 기재하면서 시비는 일단락됐다. 외국 뮤지션이 베껴서 내고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와’가 매력적인 노래임을 일러 주는 사례다. 우리 대중음악이 팝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는 사건이었다.

from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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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3위
제목
내꺼하자
아티스트
인피니트
심사평

K-POP은 과잉이 미덕이 되는 장르다. 언제부터 시작된 풍습인지는 알 수 없지만, K-POP을 만들고 즐기는 이들은 성대를 갈고, 관절을 부수고, 무대를 찢어야만 비로소 ‘장인’의 칭호를 선사한다. 젊고 건강한 육체만이 감당할 수 있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뒷받침하는 건 그만큼 과격한 음악이다. 편의상 K-POP이라고 묶어 부를 뿐 장르도, 스타일도 천차만별인 노래들이 가진 유일한 공통점 가운데 과잉이 있다. 장담컨대 누구의 어떤 노래건, 그것이 K-POP이라면 노래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가운데 적어도 하나 이상은 지금도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넘쳐흐르고 있을 것이다.

인피니트의 ‘내꺼하자’는 그런 K-POP 과잉의 상징인 작곡팀 스윗튠과 그들의 과잉을 누구보다 맛있게 소화해낸 그룹 인피니트가 만나 탄생시킨 역작이다. 다짜고짜 ‘내꺼하자’며 들이미는 설익은 사랑의 마음이 이끄는 노래의 전반을 휘감는 건 80년대 팝 시장을 강타한 유로 댄스, 신스팝의 기운이다. 쿨한 사운드와 선명한 멜로디가 매력적이지만, 세련되기보다는 음악 좀 들었다는 사람들의 추억을 자극하는데 더욱 적합한 이 장르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뜻밖의 적자 스윗튠과 인피니트를 만난다. 노래는 내 사전에 공백이란 없다는 기세로 달려드는 스윗튠 특유의 숨 막히도록 빡빡한 사운드 메이킹 위로 인피니트의 메인 보컬인 성규와 우현의 K-POP ‘쪼’가 살아있는 보컬이 널을 뛴다. 전반적인 분위기만 80년대를 연상시킬 뿐 그 자체로 K-POP 역사의 개성 넘치는 한순간을 그려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사운드와 보컬 모두 도무지 승부를 가릴 생각이 없는 공격과 수비를 반복하는 가운데, 한 번 휘몰아치기 시작한 노래는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내 걸로 만들게’라는 바람인지 다짐인지 모를 가사에 맞춰 멤버 모두가 이글대는 눈으로 주먹을 치켜드는 엔딩까지, 노래는 눈을 가린 경주마처럼 그저 앞만 바라보며 내리 질주한다.

개성 있는 작곡가와 개성 있는 그룹이 만나 탄생시킨 이 한심할 정도로 올곧은 에너지는 이후에도 ‘Paradise’, ‘추격자’ 같은 전설의 노래들을 낳으며 두 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제는 맵고 얼얼한 맛과 강한 향신료로 유명한 음식 마라탕이 K-POP을 대표하는 시대,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는 K-POP 과잉의 끝판왕이 여기에 있다.

from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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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24위
제목
FANTASTIC BABY
아티스트
BIGBANG (빅뱅)
심사평

진짜가 나타났다. 옆으로 길게 내린 주황색 머리, 온몸을 뒤덮은 타투, ‘STOP MUSIC’이라는 푯말을 든 경찰에 대항하며 ‘심장 소리에 맞춰’ 춤추는 익명의 개인들. ‘오늘 밤 내게 금기 따윈 없다’며 마음껏 춤추는 뮤직비디오 속 다섯 주인공은 YG엔터테인먼트가 만들어낸 K-POP의 코어이자 대중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2세대 아이돌의 주인공이다.

보통 빅뱅의 히트곡을 꼽으면 ‘거짓말’을 떠올리지만, K-POP 커리어에 있어 화룡점정 히트곡은 ‘Fantastic Baby’다. 당시 빅뱅은 음악, 패션을 비롯한 각종 트렌드를 선도하는 문화현상에 가까웠고, 마침 핫하게 부상하기 시작한 ‘유튜브’라는 플랫폼의 힘과 맞닿아 수많은 기록을 갈아치우며 K-POP의 매력을 세계에 알렸다.

파격적인 패션과 강렬한 뮤직비디오, 틀을 깨고 나간다는 화끈한 주제의식.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자고 외치며 사회의 기본 통념에 대항하는 그들은 음악적으로도 매력이 넘쳤다. “붐샤카라카”, “여기 붙어라”, “다 같이 놀자” 등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는 중독적이고 명민한 가사 활용, 게다가 힙합을 베이스로 두면서 일렉트로닉 사운드, 한국씩 ‘뽕끼’까지 매시업해버린 ‘Fantastic Baby’는 그야말로 음악 장르의 빅뱅이나 마찬가지였다.

‘Fantastic Baby’는 빅뱅과 K-POP 역사에 있어서 일종의 전환점같은 곡이기도 하다. 음악과 철학 모두 시대를 앞서가는 곡이면서 동시에, 노래방에서 “Wow, fantastic baby” 한번 안 따라해 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대중적인 애창곡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 곡을 통해 빅뱅은 명실상부한 K-POP 명예의 전당 최상단 자리에 오르게 된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도 ‘금기를 깨며’ 세계관에 무리가 가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평가도 전에 비해 인색해졌지만, 적어도 빅뱅이란 이름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레전드로 남을 것이고. ‘Fantastic Baby’는 거리마다 울려퍼졌던 국민 애창곡으로 남을 것이다.

from 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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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5위
제목
피 땀 눈물
아티스트
방탄소년단
심사평

방탄소년단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많은 사람이 한 번쯤 느껴봤을 법한 공통 서사를 노래에 녹여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탁월한 그룹이다. 데뷔 시절에는 ‘학교 3부작’으로 힙합이라는 장르를 통해 10대 시절의 꿈과 사랑, 고민을 표현하더니, 이후 ‘청춘 2부작’을 통해 20대의 불안하고 방황하는 위태로움을 화양연화에 빗대어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계속해서 음악에 녹인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라고 하건만, 방탄소년단은 가장 보편적인 서사로 가장 개인적인 마음을 음악으로 위로한다.

‘피 땀 눈물’은 당시 음악 트렌드인 뭄바톤에 트랩을 결합해 그들의 초기 음악의 기반인 힙합적 요소를 잃지 않으면서도 보다 폭넓은 대중을 공략한다. 이 곡은 최소한의 구절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절제된 구조를 통해 중독성을 자아낸다. 그런데도 노래가 결코 단순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함축적 의미로 가득한 가사, 해석의 여지를 더욱 확장하는 뮤직비디오, 서사를 담아낸 안무 등 다양한 장치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청자들을 매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 땀 눈물’은 서사적으로도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공감의 대상을 확장하는 새로운 전환점에 있음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한국뿐만 아니라 영미권에서도 공통으로 의미를 공유하는 관용어 ‘피 땀 눈물’을 제목으로 사용한 점이나 이 곡의 모티브가 된 [데미안]의 상징을 가사와 영상에서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그들의 작가주의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상처와 슬픔, 성장이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은 댄서블한 비트의 ‘피 땀 눈물’에서도 처연하고 애잔한 노랫말로 구현되며 그들의 오리지널리티를 더욱 더 단단하게 구축한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지켜내겠다는 뜻인 방탄소년단의 그룹명처럼 자신들만의 내러티브로 세대와 인종, 국적을 막론하며 공감대를 형성한 그들의 지금을 10년 후에는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기대된다.

from 성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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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6위
제목
Bad Girl Good Girl
아티스트
미쓰에이
심사평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은 흔히 한국 걸그룹 역사상 최고의 데뷔 곡으로 회자된다. 이 곡이 나온 지 10여년이 지났지만 위 사실엔 변함이 없다. 최고의 데뷔 곡이라는 수식어도 설득력 있지만, 최고의 K-POP 걸그룹 노래라고 평해도 이견이 없을 정도로 이 노래의 완성도는 대단하다. 작품성으로 봤을 때 박진영이 만들어낸 최고의 노래이며 1996년 H.O.T. 등장을 기준으로 한 아이돌그룹 25년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이 곡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K-POP 수난시대에 걸그룹의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 K-POP 역대 최고의 데뷔곡”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노래가 나왔을 당시만 해도 K-POP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둘로 갈리곤 했다. 한쪽에서는 K-POP의 상품성을 높이 샀고, 한쪽에서는 K-POP의 시장독점을 걱정했다. 걸그룹의 경우 한쪽에서는 그들의 무대에 열광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선정적인 퍼포먼스와 의상을 손가락질했다. 이처럼 걸그룹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가 팽배하던 시절에 과감한 메시지로 펀치를 날린 곡이 바로 미쓰에이의 Bad Girl Good Girl’이다.

“춤추는 내 모습을 볼 때는 넋을 놓고 보고서는 끝나니 손가락질하는 그 위선이 난 너무나 웃겨”라고 말하는 가사는 당시 걸그룹에 대한 비난을 음악적 언어로 반박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외에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라는 가사는 걸그룹이 아닌 일반 여성들도 십분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이처럼 이 곡은 남성(박진영)이 가사를 썼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로 여성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박진영은 사운드를 꽉꽉 채우기보다는 공간을 남겨두는 간결한 프로듀싱을 선호하는 편이다. ‘Bad Girl Good Girl’은 일정한 루프가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간결한 트랙 위에서 드라마틱한 멜로디로 청자를 사로잡는다. 이 곡의 멜로디가 가진 힘은 실로 대단하다. 가장 많이 커버하는 K-POP 곡인 만큼(심지어 대선배 이효리도 커버했다) 다양한 리메이크가 존재하는데 어떠한 장르로 편곡이 돼도 멜로디의 독창성이 살아있다.

또한 미쓰에이는 이 곡에서 현대무용을 응용한 고난도의 댄스를 선보이며 걸그룹 퍼포먼스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때문에 미쓰에이 이후의 걸그룹들은 더욱 더 격한 안무를 소화해내야만 했다. 이처럼 ‘Bad Girl Good Girl’은 마케팅의 힘보다는 노래와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정공법으로 2010년 <멜론 연간 음원차트> 1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룬다.

from 권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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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27위
제목
Nobody
아티스트
원더걸스
심사평

이름처럼 ‘경이’로운 날들이 펼쳐졌다. 2007년 UCC 열풍에 힘입어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은 ‘Tell Me’에 이어 원더걸스는 이듬해에도 ‘So Hot’으로 여러 음원차트와 음악방송 정상을 누볐다. 다섯 멤버는 2008년 ‘So Hot’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Nobody’로 또 한 차례 가요계를 활보했다. 원더걸스는 시원하게 삼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Nobody’는 ‘Tell Me’와 마찬가지로 귀에 잘 들어오는 명확한 후렴 멜로디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후렴에서 같은 문장을 반복해 빠르게 기억될 만했다. 대부분 노래처럼 1절을 마치고 후렴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후렴이 노래 첫머리부터 흘러서 한 번만 들어도 후렴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미국 가수 킴 칸스 버전의 ‘Bette Davis Eyes’를 떠올리게 하는 차진 드럼 프로그래밍도 노래가 탄력을 띠는 데에 한몫했다. 박진영은 ‘Tell Me’, ‘So Hot’에 필적하는 흡인력 강한 노래를 만들었다.

간단하면서도 포인트가 명확한 안무도 노래의 히트를 도왔다. ‘Nobody’도 ‘Tell Me’처럼 춤이 전반적으로 간결했다. 춤에 소질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따라 하기가 수월해서 노래는 많은 이에게 자연스럽게 하나의 유희로 퍼질 수 있었다. 더불어 “날 위해 그렇단 그 말. 넌 부족하다는 그 말.” 이 부분에도 돋보이는 동작을 넣어 ‘Nobody’는 대중의 뇌리에 깊게 들어갔다.

2009년 초 미국 진출을 공언한 원더걸스는 그해 6월 ‘Nobody’의 영어 버전을 미국 데뷔 싱글로 출시했다. 이후 원더걸스는 미국 보이 밴드 조나스 브라더스의 북미 투어 오프닝 무대에 서며 열심히 자신들과 노래를 알렸다. 10월 피지컬 싱글 음반을 발매하자 ‘Nobody’는 <빌보드 싱글 차트> 76위에 올랐다. 이로써 원더걸스는 싱글 차트 100위 안에 든 최초의 한국 가수가 됐다.

아쉽게도 이것이 끝이었다. ‘Nobody’는 더 높은 순위로 오르지 못하고 금방 차트에서 밀려났다. 이때는 K-POP이나 한국 가수에 관심을 보이는 미국 음악 팬이 많지 않았던 탓이다. 상업적 성과는 미미했을지라도 ‘Nobody’는 한국 가수들도 얼마든지 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것을 일러 준 사례가 됐다. 그래서 ‘Nobody’는 K-POP 역사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from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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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8위
제목
가시나
아티스트
선미
심사평

선미를 운동선수에 비유하자면 그는 단거리도 뛰었다가 높이뛰기도 뛰었다가 마라톤도 뛰는 선수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2007년 원더걸스의 멤버로 데뷔해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던 때에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같은 소속사를 통해 솔로 가수로 가요계에 복귀해 ‘24시간이 모자라’와 ‘보름달’로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솔로 가수의 입지를 넓히던 중 다시 원더걸스에 재합류해 상상도 못 한 베이스를 멘 모습으로 등장해 놀라움을 안겨주더니, 아예 둥지를 옮겨 자신만의 확고한 음악 세계를 신나게 펼쳐 보인다. 이게 한 사람의 디스코그래피가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행보는 아이돌 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모습이었다.

다양한 콘셉트와 음악으로 활동했던 선미지만 선미를 대표하는 곡을 떠올리면 단연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으로 이어지는 경고 3부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만큼 ‘가시나’를 시작으로 지금의 선미가 보여주는 디스코그래피는 선미라는 아티스트의 유일무이한 고혹적이고 독보적인 존재감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3년의 공백기 후 발표한 ‘가시나’는 대중이 선미에게 기대했던 모습을 보란 듯이 뒤집어엎으며 대담함과 강렬함을 드러냈다. 특히 "왜 예쁜 날 두고 가시나"라는 가사에 맞춰 분위기를 반전하는 표정 연기와 총을 쏘는 듯한 퍼포먼스는 동료 연예인은 물론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커버 영상을 양산했다. 이 노래로 패션, 메이크업, 뮤직비디오 감독, 안무가까지 조명하게 했으니 그 인기가 가히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다.

선미의 노래는 이제 ‘선미팝’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지금도, 앞으로도 많은 후배 가수들의 롤모델로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잘하고, 잘 어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자유롭게 음악 세계를 선보이는 선미.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성장한 좋은 예를 보려거든 선미를 보라.

from 성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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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29위
제목
커플
아티스트
젝스키스
심사평

문화 현상은 라이벌 경쟁을 통해 더욱 발전한다. K-POP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후반의 초기 K-POP은 H.O.T.와 젝스키스의 라이벌 구도를 통해 팬덤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었다. 후발주자였던 젝스키스는 H.O.T.에 비해 당시 팬덤의 규모에서 2위를 달렸다.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에 있어서는 때때로 H.O.T.를 앞서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대표적인 노래가 국민 러브송이었던 ‘커플’이다.

젝스키스는 시작점에 있어서 일정 부분 H.O.T.를 벤치마킹했다. H.O.T.가 학원폭력을 다룬 ‘전사의 후예(폭력시대)’로 데뷔하자 젝스키스는 입시지옥을 다룬 ‘학원별곡’으로 데뷔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젝스키스는 정규앨범을 거듭할수록 H.O.T.와 차별화된 고유의 색을 선보이며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젝스키스의 히트곡들은 오히려 H.O.T.의 노래들보다 다양한 연령층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젝스키스의 최고의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커플’은 10대 아이돌 팬덤 사이에서만 소비되지 않고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대표적인 K-POP 노래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 곡은 발매된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널리 사랑받으며 아이돌그룹의 노래가 단지 한때의 유행가로 그치지 않고 올 타임 리퀘스트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커플’은 80년대에 헤비메탈 밴드 아발란쉬의 보컬로 활약했던 마경식이 작곡한 곡이다. 마경식은 ‘커플’ 전까지는 히트곡이 없었던 작곡가로 그의 곡을 타이틀곡으로 선택한 것은 용단이었다. 언뜻 캐럴 느낌을 주는 이 노래는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만큼이나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키며 대표적인 K-POP 러브송으로 자리하고 있다.

젝스키스 그리고 ‘커플’은 아이돌그룹에 대한 여러 고정관념을 깼다. K-POP 초기에는 아이돌그룹의 수명이 짧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하지만 젝스키스는 해체의 아픔을 겪긴 했지만 재결성 후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며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들이 이처럼 장수할 수 있는 것은 탁월한 자기 관리 덕분이기도 하지만, ‘커플’처럼 오래 사랑받는 노래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젝스키스는 2016년에 극적인 재결성 후 기존 곡들을 다시 녹음한 앨범 [2016 Re-ALBUM]을 발표하면서 ‘커플’의 뮤직비디오를 다시 찍었다. 이 영상을 1998년의 뮤직비디오와 비교해보면 멤버들의 외모가 약 20년 전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커플’의 변치 않는 인기를 상징하는 장면 같다.

from 권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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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30위
제목
거짓말
아티스트
god
심사평

아무나 ‘국민’이 붙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국민 호칭을 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1999년 데뷔해 밀레니엄을 전후로 ‘국민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았던 god의 위치는 무엇보다 이들의 노래가 가진 대중 친화적인 면모로 만들어졌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로 기억되는 이들의 데뷔곡 ‘어머님께’는, 당시 H.O.T나 젝스키스로 대표되던 1세대 남성 아이돌 그룹이 전형적으로 내세우던 시대와의 불화나 기성세대를 향한 반발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실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보다 다양한 세대와 긴밀하고 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게 옳다. 어려운 어린 시절, 어머니가 숨겨둔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을 먹던 기억을 주요 소재로 다룬 노래는, 태생부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 저 깊은 곳 어딘가에 숨겨둔 K-감성을 건드리며 god가 세대를 막론한 강력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진한 밑그림을 제공했다.

‘거짓말’은 그런 ‘한국적’ 감성의 화살표를 ‘가족애’에서(‘어머님께’)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만 했던 모든 사람’을 거쳐(‘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젊은 시절 이별 앞에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으로 옮긴 노래다. 데뷔곡부터 이어온 박진영과의 호흡이 절정에 달한 곡은 그룹에 가장 많은 상과 가장 많은 앨범 판매량을 안겼다. 90년대 중반 이후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R&B와 한국 발라드 문법을 적절히 혼합한 특유의 스타일은 god 멤버들의 다소 서툰 그러나 진심이 느껴지는 가창과 결합하며 더없이 편안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메인 보컬 김태우와 작곡가 박진영의 조화가 만들어내는 심상은, god의 음악이 왜 그렇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는지를 노래로 증명하는 수준이다. 멜로디에서 후렴구의 코러스 합창까지, 전반적으로 큰 전환이나 감정의 굴곡을 드러내지 않는 노래에서 유일하게 격렬한 감정선을 드러내는 건 김태우의 보컬뿐이다. 읊조리듯 부르는 후렴구의 마지막 인가 ‘잘 가’에서 곡 후반부를 화려하게 수놓는 애끓는 애드리브까지, ‘거짓말’은 한국에서 가요를 듣고 자란 이라면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순간투성이다.

바르고 친숙한 옆집 청년들이 애절하게 노래하는 ‘나를 떠나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는’ 이별. 싫으나 좋으나 한국인의 유전자에 새겨진 모든 것이 god과 ‘거짓말’ 안에 있다.

from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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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31위
제목
CHEER UP
아티스트
TWICE (트와이스)
심사평

2016년 4월, 걸그룹 트와이스의 ‘CHEER UP’은 발매가 되고 머지않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주요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스트리밍 순위에서 오랫동안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1위에서 내려온 후에도 쭉 최상위권에 머무르며 트와이스라는 팀을 완전히 정상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쉬운 멜로디 라인, 무대를 보면 더더욱 잊히지 않는 간단한 팔 동작 위주의 안무로 구성된 ‘CHEER UP’은 사랑스럽고 명랑한 하이틴의 정서를 추구하는 이 팀의 정체성을 단번에 대중에 납득시켰다.

누구나 쉽게 안무를 따라하고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는 메가히트곡의 등장.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이목을 끈 파트는 일본인 멤버 사나가 맡은 "Shy Shy Shy"였다. 아직까지도 원 가사인 "Shy Shy Shy"를 기억하는 사람보다 사나가 귀엽게 발음하는 "샤샤샤"가 익숙한 사람들이 많고, 덕분에 "샤샤샤"는 대중이 트와이스라는 팀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그니처로 남았다. 수많은 연예인들이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세요”라는 주문을 받으면 모두가 두 뺨에 가볍게 쥔 주먹을 갖다 대고 "샤샤샤"를 부르며 손목을 앞뒤로 움직였던 시절. 당시에 트와이스가 어떤 걸그룹에 비해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는 증거다.

‘CHEER UP’은 트와이스의 다음 행보를 예측하게 하는 중요한 키였다. ‘CHEER UP’ 이후의 트와이스 또한 ‘TT’, ‘KNOCK KNOCK’, ‘LIKEY’, ‘What is Love?’ 등의 트랙 안에서 귀엽고 순진한 하이틴의 이미지를 고수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Feel Special’처럼 멤버들의 자연스러운 목소리와 서사를 부각시킨 곡을 부르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CHEER UP’은 이 곡의 히트 여부와 상관없이 큰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돼", "여자니까 이해해주길"과 같이 가사에 여성을 지나치게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구시대적 관점이 녹아있다는 지적이 계속 따라다녔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흔치 않은 메가히트곡에 따라붙은 꼬리표는 해가 바뀌어도 지워지지 않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인기가 높았던 만큼 비판도 피해갈 수 없었던 작품. 바로 트와이스의 ‘CHEER UP’이었다.

from 박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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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2위
제목
봄날
아티스트
방탄소년단
심사평

지금도 방탄소년단의 대표곡으로 ‘봄날’을 꼽는 이들이 많다. 화제로만 따지자면 국제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활약을 시작하던 시기의 ‘DNA’나 ‘Fake Love’,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의 대기록을 세운 ‘Dynamite’와 ‘Butter’가 앞선다. 그러나 한국에서만큼은 가온차트 기준 2억 스트리밍 이상을 기록했고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의 <2010년대 시대 차트> 종합 순위 4위에 오른 ‘봄날’이 제일이다. 더불어 ‘봄날’은 오늘날 글로벌 팝 스타 방탄소년단을 가능케 만든 소중한 곡이다. 이 노래를 통해 방탄소년단은 데뷔 초부터 쌓아 올린 성장 서사를 긍정과 위로, 희망의 날개로 펼쳐 보이며 그들, 더 나아가 소속사 HYBE의 유토피아적 정체성을 완성할 수 있었다.

유년기를 함께했던 소중한 친구와의 이별을 바탕으로 한 ‘봄날’은 방탄소년단의 자전적인 이야기였다. 치열한 선발 과정을 거쳐 2013년 데뷔했음에도 방탄소년단은 단번에 톱스타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2015년 [화양연화] 시리즈로 주목을 받으며 차츰 인지도를 높여갔고 두 번째 정규 앨범 [WINGS]와 ‘피 땀 눈물’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때였다. 화려한 퍼포먼스, 다음 단계를 향한 멋진 선언이 등장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한 걸음 쉬어가는 쪽을 선택했다.

‘봄날’은 방탄소년단이 시대와 호흡하는 방법이었다. ‘봄날’이 나온 2017년 2월의 겨울은 너무도 시렸다. 많은 이들이 ‘봄날’의 뮤직비디오 속 노란 리본과 버려진 옷들, 9시 35분을 가리키는 시계에서 3년 전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여긴 온통 겨울뿐이야, 8월에도 겨울이 와"라는 RM의 쓸쓸한 랩처럼 긴 시간 우리는 어른들의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차디찬 물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들을 기억하며 어둡고 차가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쓸쓸한 목소리로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봄날’은 그래서 소중했다. ‘어떤 어둠도 어떤 계절도 영원할 순 없으니까’라는 믿음,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라는 일상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비록 그룹은 정치적 해석에 조심스러웠지만, ‘봄날’은 편을 가르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따뜻한 희망을 전했다.

그렇게 결국, 우리에게도 방탄소년단에게도 봄이 찾아왔다. ‘봄날’로 완성한 위로와 긍정의 정서를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라는 메시지로 확장하며 소통과 위로, 공감과 사랑의 메시지로 온 세계를 매혹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어두운 그림자에 맞서 ‘Dynamite’와 ‘Butter’, ‘Permission To Dance’로 격려와 용기의 메시지를 건넨다. 스스로를 위안하고자 한 작은 곡으로부터 출발해 시대를 위로하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가 현실로 펼쳐진다. 방탄소년단의 가장 깊은 곳에 ‘봄날’이 있다.

from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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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3위
제목
I Got A Boy
아티스트
소녀시대 (GIRLS' GENERATION)
심사평

‘I Got A Boy’의 보란 듯한 1월 1일 발매는 마치 그 자체로 SM엔터테인먼트의 기념비적 성격을 띠는 것만 같았다. 한때는 경박하고, 근본 없고, 유치한 것으로 폄하되던 아이돌 팝이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고 있을 때, ‘오래전부터 우리가 옳았다’는 자랑스러운 선언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 소위 ‘SMP’라 불리는 장르 실험의 모든 것이 그곳에 열거되어야 함은 당연했다.

곡은 일견 혼란스러웠다. 다양한 음악적 순간을 마구 이어붙인 듯했다. 급격한 템포 변화만으로도 당혹스러웠다면, 가수가 곡의 내용에서 외부로 뛰쳐나오며 “Let’s bring it back to 140”를 외치는 순간은 또 얼마나 뻔뻔하고 당당했나. 청자를 향해 노래하기보다 멤버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형식의 가사와 연출, 문법을 이탈한 표현이 흔하다고는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듯한 “I got a boy 멋진” 등의 대목은 또 어땠나. 모든 것이 거칠었다. 그러나 여기서 ‘거칢’은 미숙함이 아닌 과격함이었다. 쉴 틈 없이 충격을 안기고 이를 통해 청자를 휘몰아가며 마침내 매료시켜버리는, 이것이 새로움이고 아름답다고 반강제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런 기세였다. 대중음악에 불을 지르고 그다음으로 넘어가게 해온 혁신가들이 보여주곤 하던 바로 그런 것이었다.

다양한 정서와 순간을 조합해 한꺼번에 전달함으로써 K-POP의 방법론이 마치 한 편의 뮤지컬 같다는 형용을 받았다면, 바로 그 대목을 이 곡은 최대한도로 밀어붙였다. 다만 그 뮤지컬 무대는 유쾌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걸그룹 팝이 제공하는 핵심 정서 중 하나인 바로 그것이다. 친구들이 모여 연애에 관해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는, 경쾌하고 때로 익살스러우며 가끔은 다소 촌스러운 표현까지 등장하는, 안전하고 재미있게 구경할 수 있는 희극의 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버블팝 같은 사소함이 왁자지껄하게 부글거리며 커다란 생동감으로 부풀어, 철두철미한 군무와 강렬한 비트를 타고 폭발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 복잡한 장치는 어느 것 하나라도 부족하면 바로 주저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움과 파격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었고, 또한 모든 것이 각기 양날을 가진 검들이었다. 모험이었다. 그럼에도 이 기획이 진행되고 실제로 시장을 설득해내는 데에는, 커리어와 팀워크 모두 정점에 달한 소녀시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후광과 완벽성이 승부의 열쇠로 기능했다.

from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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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4위
제목
스물셋
아티스트
아이유
심사평

아이유는 일찌기 음악성 있는 소녀로 인정 받았다. 통기타와 ‘삼단 고음’으로 대표되는 그의 초기 커리어는 ‘어린 여자 아이가 실력이 제법이다’ 라며 베푸는 인정 위에 쌓아올려졌다. 그가 예리한 완성형 음악가라는 사실은 [Modern Times - Epilogue]의 ‘금요일에 만나요’ 같은 자작곡에서 이미 짐작 가능했다. 그러나 그가 예의 예리한 음악성으로 스물 세 살 예술가의 자의식을 뾰족하게 표현하기 시작했을 때, 2016년의 대중들이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 때의 분위기를 잊을 수 없다.

‘스물셋’은 10대 시절부터 그저 소녀 아이돌이라는 ‘대상’으로서 존재했던 그가 사실은 그 대상화의 시선을 모두 자각하고 있었다는 고발임과 동시에, 그런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전유하겠다는 선언이다. 자신을 향한 상반된 평가(심지어 이들은 서로 상충한다)를 모두 꺼내어놓고 그래서 어느 쪽인 것 같냐며 도리어 질문을 던져 파문을 만든다. 본래 현대인은 사회 생활을 위해 다양한 페르소나를 만들어 갈아끼우며 산다. 반평생을 대중 앞에 노출 되며 성장한 창작자가 자기 인생을 소재로 작품을 쓰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 대부분은 설마 ‘국민 여동생’이 이렇게까지 날 것의 생각을 소재로 음악을 만들 줄은 몰랐다. 그런 ‘설마’까지가 ‘스물셋’ 탄생의 배경이었다.

그의 대대적인 도전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시그널을 영 잘못 읽고 격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잔뼈가 굵은 대중가수이니 날선 반응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감수하고 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종국엔 그런 반응까지가 이 곡을 한 곡의 노래보다 큰 음악으로 만들어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우리는 노래에 극단적으로 반응했던 그들이 곧 노래 속의 그 시선들임을 안다.

‘스물셋’을 시작으로 이어진 아이유의 나이 시리즈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끼친 영향은 그의 노래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와닿는다. 음악가 개인의 고민과 성찰에서 출발한 노래가 시대와 조응해 해마다 ‘아이유의 스물셋’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매해 스물 세 살이 된 젊은이들이 이 노래를 찾고, 곱씹고, 인간의 다면성을 자각하며 성숙하는 계기로 삼는 것을 보며, 이 곡이 얼마나 현대적인지, 지금의 시대성을 명징하게 보여주는지를 실감한다.

from 랜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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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5위
제목
Heartbeat
아티스트
2PM
심사평

Can you feel my Heartbeat?
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심장박동이 느껴지는 노래.

음악이 시작될 때 함께 뛰던 우리의 심장이, 음악이 끝나는 순간 함께 멈출 수도 있다.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가슴이 찢어지는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격한 감정이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함께 어우러지는 심장박동소리와 드럼베이스가 내 몸과 동기화 되는 느낌이다. 신기하게도 가사와 멜로디로 내용을 전달하는 다른 노래들과 달리, 심장박동소리와 감정이 실린 소리를 통해서 몸이 먼저 반응한다.

이 음악을 표현한 투피엠의 연기가 2009년 겨울을 뜨겁게 했고, K-POP에서 퍼포먼스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줬다. 한편의 뮤지컬 장면을 연상시키는 듯한 음악방송 무대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는데, 6명의 멤버들이 목소리와 몸으로 울부짖는 모습이 가슴을 울린다. 짐승돌이라고 불리면서 야성미를 드러내는 투피엠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무대들이었고, 심장을 움켜쥔 손 연기, 옷을 찢어버리는 퍼포먼스, 그리고 절제된 좀비 춤은 지금 봐도 멋진 장면이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무대는 서울가요대상 본상무대인데, 잊지 못하는 사랑을 향해 포효하는 투피엠의 레전드 무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강하고 절도있는 퍼포먼스를 하는 투피엠의 모습은 해외팬들에게 K-POP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줬다. 아마도 투피엠이 없었다면, 지금의 K-POP신에서 쎈 캐릭터의 아이돌이 조금 늦게 등장 했을 것이다.

“Listen to my Heartbeat It's beating for you, Listen to my Heartbeat It's waiting for you”이 곡은 정말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하는 한편의 영화 같은 노래다. 노래 한곡을 듣는 3분 동안 누구나 마치 한편의 스크린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이 함께 안타까워하며 심장을 움켜지게 된다. 이런 멋진 곡을 K-POP 역사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최근 ‘우리집’으로 역주행하면서 완전체 활동을 시작한 투피엠을 보면서, 이 훌륭한 아이돌의 무대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다. JUN. K, 닉쿤, 택연, 우영, 준호, 찬성, 이 여섯 멤버의 열정을 응원한다.

from 손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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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6위
제목
MOVE
아티스트
태민 (TAEMIN)
심사평

'MOVE'에서 태민은 움직인다. 안무가 스가와라 코하루가 담당한 퍼포먼스에서는 어깨부터 골반까지 모든 신체 부위에서 다룰 수 있는 미세한 움직임들이 끊임없이 강조된다. 이 모든 동작들을 어색한 단절 없이 유동적으로 흘려보내며 강약을 깔끔히 조절하는 몸에서야말로 발매 당시 10년의 연륜이 쌓인 퍼포머로서 태민의 능력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러한 자질 자체는 당연하게도 그의 솔로 활동 전체에서 분명히 나타나지만, 'MOVE'가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트랙이 될 수 있는 것은 태민이라는 본체가 발휘하는 힘 덕분일 것이다.

물론 이것은 기존의 남성 아이돌 솔로, 더 올라가 국내의 남성 댄스가수들이 종종 과장되게 자랑하는 어떠한 위력과는 거리가 멀다. 그 힘은 이를테면 즉흥적으로 보이는 트랙 첫 부분의 미묘한 동작들을 후반부의 정교하게 맞물린 운동으로 자연스레 연결시키면서도 텐션을 전혀 잃지 않는 출중한 통제력이고, 그루브를 밀고 당기는 베이스가 돋보이는 미니멀한 비트 사이 스네어 드럼과 맞물리는 춤선을 절도 있게 맞춰낸 순발력이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이를 이용해 아이돌 팝에서 주로 이항 대립적으로 나타났던 젠더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들어 특정 불가능한 지점으로 옮길 수 있는 감각적인 표현력이기도 하다. 태민이라는 퍼포머의 신체 안에 담긴 그러한 힘들은 'MOVE' 안에서 온전히 맞아떨어진 후, '우아한 손짓'과 ‘은근한 눈빛’이라는 움직임으로 발현되어, 고정된 정의에서 벗어나 ‘묘한 그 느낌’이라 할 수밖에 없는 그 ‘아찔한 끌림’을 가져다준다.

'MOVE' 이전까지의 솔로 활동에서도 섬세한 박력을 제법 강조하던 안무가 이렇게까지 고혹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것은 태민의 경력에 있어서도 하나의 분기점이 된 듯 보인다. 해당 트랙이 실린 정규 2집 자체에서도 몽환적인 전자음들로 꾸려진 알앤비 사운드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거나, 이후의 활동에서는 이 때의 인상 깊은 이미지를 달리 변주해가며 강도를 조절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러 의미에서, 'MOVE'는 태민이 샤이니의 다재다능한 막내에서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당당한 솔로 댄스 가수로서 이행하는 부드러운 내실이자 확실한 연결점이 되었다. 곧 데뷔 때부터 부단히 재능과 실력을 가꿔가며 자신을 꾸준히 재발명한 태민이 마침내 닿은 정점이 'MOVE'였고, 태민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from 나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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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37위
제목
Fire
아티스트
2NE1
심사평

17층, 18층, 19층, 20층… 솔로 퍼포먼스를 꾸민 민지, 다라, 봄, CL이 차례로 올라탄 엘리베이터가 21층을 향한다. 이윽고 21층에 올라섰을 때, 선전포고와도 같은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며 무대에 불이 켜진다. “21세기의 새로운 진화(New Evolution)”라는 거창한 이름을 단 그룹 2NE1의 등장이었다.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7분여에 달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2NE1의 SBS <인기가요> 데뷔 무대는 당대 7~8% 남짓의 평균 시청률을 훌쩍 넘겨 분당 최고 시청률 약 15%를 기록했다. 이후 Mnet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2NE1 TV> 역시 케이블 채널로서는 이례적인 3%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결코 대형 기획사의 후광이나 데뷔 전 이들을 둘러쌌던 소위 “여자 빅뱅”이라는 별칭만으로 넘겨짚을 수 없는 신드롬이었다.

강렬하고 이색적인 콘셉트를 표방한 솔로 여가수나 걸그룹은 이전에도 있었으나 2NE1이 ‘Fire’로 보여준 역동은 남달랐다. 나이도 외양도 특기도 판이하게 다른 멤버들이 통일되지 않은 스트리트 웨어를 입고 나온 데서 온 시각적 충격도 대단했지만, 곡의 들끓는 원기가 주는 압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파죽지세로 곡을 뚫고 나가는 4마디 루프 위에 수시로 울려 퍼지는 “We’re 2NE1"이라는 자기 선언과 그저 “미치고 싶”다는 무지막지한 외침은 K-POP 사상 가장 날것의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의 네 범주 에로스, 스토르게, 필리아, 아가페 중 어떤 쪽으로도 묶어볼 수 없는 가사와 행간을 곡해할 조금의 가능성마저 차단해버리는 와일드한 퍼포먼스는 걸그룹의 정형을 보란 듯이 배반했다. 걸그룹이 사랑이 아닌 유희를, 꿈과 희망이 아닌 자유를, 응원이 아닌 해방을 노래하는 것이 얼마나 드물게 허락되는 일이었던가. 2NE1은 이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웠다.

‘Fire’의 비정형성은 곧 2NE1의 근간이 되었다. 미래에 그들이 ‘Lonely’, ‘내가 제일 잘 나가’, ‘Ugly’ 같은 곡들을 나란히 부르고도 위화감이 없을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Fire’에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이 불을 지른 자리는 K-POP의 새로운 생태가 탄생하는 옥토가 되어 현세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까이는 포미닛부터 최근의 블랙핑크, 있지에 이르기까지 강한 이미지를 표방하는 걸그룹의 계보에서 여전히 ‘Fire’가 일으킨 “새로운 진화”의 불길을 읽는다.

from 스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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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38위
제목
Get Up
아티스트
베이비복스
심사평

베이비복스는 ‘Get Up’으로 성공을 거두기까지 멤버 변화 등의 과정이 있었다. 첫 번째 앨범의 흥행 부진 이후 두 번째 앨범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멤버 교체를 겪어야 했고, 이후 전성기 시절의 라인업이 완성되며 처음 낸 작품이 바로 ‘Get Up’이다. 청순한 분위기의 ‘야야야’ 이후 다소 강렬한 인상을 주는 ‘Change’에 이어 선보인 발표한 정규 3집의 타이틀곡은 여러 매체에서 한국 최초의 섹시 컨셉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가사에는 직설적인 표현이나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은밀하게 느껴졌다는 사람들도 있다. 막내인 윤은혜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비판을 피할 수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멤버들이 지닌 음색과 창법만으로도 충분히 섹시함을 자아낸다. 특히 래퍼, 메인 보컬, 댄스 담당 등 파트가 잡혀 있는 그룹으로서 그 부분을 잘 활용했다. 앳되지 않은 톤과 농염한 창법, 김이지의 힘 있는 랩까지 곡은 김형석의 조율 아래 높은 완성도를 갖추면서 매혹적인 느낌을 살리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1990년대 당시 북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던 댄서블한 알앤비 음악을 가져와서 세련된 면모를 챙겼고, 나름대로 안무도 강도가 높고 동작이 많았으며 음악 트렌드도 잘 가져갔다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S.E.S.나 핑클(Fin.K.L)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상대적으로, 여러모로 그 세가 작았지만 이 앨범의 성공을 기점으로 베이비복스는 중화권 및 아시아 일대에서 활동을 펼치게 된다. 베이비복스는 이 앨범 이후 중국에서 앨범을 발표했고 중국 현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동남아시아 일대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상당한 시간을 해외에서 활동했고, 그 결과 한국 걸그룹 최초로 베이징에서 대규모 콘서트를 가졌고 최초로 태국에 진출하는 등 최초라는 타이틀도 많이 챙겼다.

베이비복스의 ‘Get Up’ 활동 이후 몇 걸그룹은 청순한 컨셉 이후 섹시한 컨셉으로 전환하는 시도를 참고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베이비복스의 음악과 안무가 다소 한국 가요에 그친다는 평이 있었지만, 다수의 곡은 재평가하기에 좋은 수준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fr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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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9위
제목
피어나
아티스트
가인
심사평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막내 가인은 2009년 ‘Abracadabra’의 ‘시건방춤’으로 선보인 놀라운 카리스마에 힘입어 이듬해 탱고 풍의 ‘돌이킬 수 없는’으로 솔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아이유의 ‘좋은 날’과 ‘너랑 나’, 써니힐의 ‘베짱이 찬가’ 등 당대 가요계 유행을 선도하던 김이나와 이민수는 비련의 주인공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가인에게서 놀라운 잠재력을 발견했다. 오래도록 금기시되고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 주제를 노래하는 K-POP 여성 솔로 가수로의 가능성이었다.

가인은 그렇게 새로이 피어났다. [토크 어바웃 에스(Talk About S)]라 이름 붙여진 앨범의 타이틀곡 ‘피어나’는 모두의 넋을 잃게 만들었다. 우아한 피아노 터치와 경쾌한 펑키(Funky) 기타 리프의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인상을 남기더니 테이블 위에서 사뿐사뿐 춤을 추는 가인은 "이렇게 좋을 건 뭐니 / 날 갖고 뭘 했던 거니"라 노래하며 샐쭉 웃는다. 차분한 고조의 시간을 지나 화사하게 두 팔을 벌리며 날아오르는 후렴구에서 황홀하게 "원더랜드", "완전히 새로운 세상(A Whole New World)", "마법(Magic)"을 부르는 데는 어떤 주저함도, 돌려 말하기도 없다.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다 묘사할 수 없는 순간을 이처럼 아름답게, 그리고 노골적으로 표현한 곡은 없었다.

엄정화의 ‘초대’, 박지윤의 ‘성인식’ 등 성을 은유한 곡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피어나’는 완전히 다른 곡이었다. 기존의 노래들이 남성을 유혹하고 분위기를 묘사하며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정도에 머물렀다면 ‘피어나’는 전복과 반전의 언어로 주도권을 탈취하는 혁명이었다. 순결은 ‘꺾이고’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른해지는 오늘 밤 난 다시 피어나"는 것이 되었다. 타인을 유혹하는 대신 순간의 오감에 집중하며 상대를 더욱 깊이 파고들게 만들었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첫 경험은 부정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닌, 소중하고 꿈결같이 "별이 쏟아지던 아름다운" 행위로 격상되었다.

인상적인 무대 역시 ‘피어나’의 가치를 높였다. 가인은 스테이지 위 테이블과 의자를 소품 삼아 정장을 입은 백댄서들과 함께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형형색색 패션과 미성숙한 풍의 메이크업은 갓 사랑을 깨달은 소녀의 인상 그 자체였다. 소녀시대 써니, 여자친구 은하 등 섹시를 의도한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노래를 커버했지만 원곡의 아우라에 견줄 만한 무대는 없었다. 오직 가인만이 이 황홀한 꽃봉오리를 온전하게 피워낼 수 있다.

from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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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0위
제목
4 Walls
아티스트
f(x)
심사평

아이돌 그룹의 가장 큰 위기는 멤버 이탈에서 온다. 책 한 권은 거뜬히 엮어낼 정도로 촘촘히 짜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도, 쉽게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만들었어도 멤버 일부가 팀을 이탈하는 순간, 완벽해 보이던 세계에 회복할 수 없는 금이 간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같은 이름 아래 모인 멤버들이 자의든 타의든 주어진 이름 아래 하나가 되어 만들어 가는 세계가 알고 보면 이 복잡하고 거대한 K-POP의 모든 시작이자 모든 끝인 탓이다.

f(x)의 ‘4 Walls’는 그렇게 회복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균열을 유려하게 메운 뒤 팀에 새 생명까지 부여한 마법과도 같은 노래다. 숫자 4는 당시 f(x)를 둘러싸고 있던 무엇보다 중요한 지표였다. 멤버 설리가 팀을 떠난 후 5인조였던 그룹은 4인조가 되었고, 이들은 이후 활동의 분수령이 될 정규 4집 발매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이들이 돌파구로 삼은 건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동안 f(x)의 중요한 음악적 축을 담당해 온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강화, 또 다른 하나는 숫자 4로 만들 수 있는 이미지의 총합이었다. 음악을 도와줄 파트너로는 당시 샤이니 ‘View’와 레드벨벳 ‘Dumb Dumb’으로 SM엔터테인먼트 그룹들과 좋은 호흡을 만들어 가고 있던 영국 작곡가 팀 런던노이즈가 꼽혔다. 비주얼은 2010년대 SM의 제2의 전성기를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아트디렉터 민희진이 힘을 보탰다. SM의 드림팀이 꾸려진 셈이었다.

온몸을 감싸 안는 신비로운 저 너머를 꿈꾸는 사운드 사이로 크리스탈의 목소리가 새로운 차원의 문을 조심스레 연다. "감정이란 꽃은 짧은 순간 피어나는 걸 / 티끌 하나 없이 완벽했던 시작을 넘어 / 낯선 파란 빛이 파고들어". 작사가 이스란의 손끝에서 탄생한 더없이 시적인 노랫말을 타고 주문처럼 반복되는 후렴구까지, 노래는 줄곧 우리를 지금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데려간다. 팀으로서도 앨범으로서도, 그래야만 했다. ‘4 Walls’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건 비단 4인조 f(x)뿐만이 아니었다. 타이틀곡 외에도 순도 높은 일렉트로 팝을 꾹꾹 눌러 담은 완성도 높은 앨범과 함께, 그룹 f(x)는 세상이 흔히 말하는 10대가 선호하는 아이돌 그룹을 뛰어넘어 ‘세련된 K-POP’ 하면 떠오르는 신비롭고 세련된 음악과 이미지의 총체가 되었다.

from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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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1위
제목
U-Go-Girl (With 낯선)
아티스트
이효리
심사평

압도적인 퍼포먼스의 정점을 찍은 ‘U-Go-Girl’은 3분이라는 시간에 이효리의 팔색조 같은 매력을 최대치로 보여준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박자와 리듬, 독특한 곡 구성,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는 한 번만 들어도 뇌리에 깊게 각인된다. 레퍼런스가 느껴졌던 이전의 곡과는 다르게 신선하고 유쾌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에 맞춰 바뀌는 이효리의 표정 연기 또한 홀린 듯 이 노래를 보게 하며, 무대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연출까지 더해져 듣는 음악뿐만 아니라 보는 음악으로서도 한 편의 뮤지컬과 같은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Hyorish]라는 앨범 제목에서도 자신감이 느껴진다.

기존에는 없던 이런 음악이 나타난 건 이효리가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꾸준히 주류와 비주류의 음악 사이를 오가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을 찾는 실험을 지속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선구안이 빛나는 이유는 당시 무명에 가까운 신예 작곡가 이트라이브(E-TRIBE)의 곡을 타이틀로 정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Who’s that girl’이라는 이 곡의 제목을 ‘U-Go-Girl’로 바꿈으로써 자신을 누군가로부터 바라보아지는 객체에 놓지 않고 곡의 화자로 위치시킴으로써 동시대의 여성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하다.

이효리는 이름 뒤에 따르는 여러 수식어 때문인지 능력보다 늘 음악이 저평가되는 가수가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삶에 관한 깊은 성찰을 꾸준히 음악과 비주얼로 녹여낸다. 특히 ‘U-Go-Girl’에서 ‘Bad Girl’, ‘미스코리아’를 거쳐 ‘Black’으로 이어지는 노래는 동시대 여성에게 단단한 연대와 임파워링 메시지를 전한다. 6집 앨범이 나온 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계속해서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그가 이번엔 어떤 음악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뭐가 됐든, 반갑게 맞이할 자세가 되어있다.

from 성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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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2위
제목
위아래
아티스트
EXID
심사평

요즘은 브레이브 걸스의 소식에서 이 단어를 종종 발견할 수 있지만, 사실 ‘역주행’이라는 키워드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만큼 이 노래는 K-POP 신의 새로운 경향을 만든 넘버이기도 하다.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된 직캠이 홍보 포인트로 작용하며 뒤늦게 1위를 일궈낸 과정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짐과 동시에 관계자들에게 큰 시사점을 주었다. 특히 대형 기획사의 거대 자본에 속수무책이었던 영세 제작자들에겐 더욱 그랬다. 팬들에 의한 프라이빗 콘텐츠와 SNS의 조합이 가져온 히트, 그것은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었던 셈이다. 물론 여기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우연과 운이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낸 신사동호랭이의 대중적인 감각이 곳곳에 스민 송라이팅, 여기에 각자의 포지션을 부족함 없이 소화해 내는 멤버들의 기량은 뒤늦게 이끌어 낸 반응을 정상으로 캐리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지금이야 다수의 작곡가가 참여하는 송캠프 방식의 노래들이 K-POP 신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지만, 이와 달리 기승전결의 명확함을 고수하는 ‘레트로 댄스뮤직’의 매력을 무기로 한다는 점은 음악자체를 언급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에 결과가 판가름 나는 혹독한 음악시장. 그 안에서 희망적 변수를 만들어 냄과 동시에 프로모션에 있어 SNS의 역할에 주목하게 한 상징적인 사례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K-POP 아티스트의 이미지는, 그것이 자신의 꿈을 이뤄줄 가장 쉬운 방법임을 증명한 이들의 지분이 꽤나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내일의 스타를 꿈꾸는 이들, 그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의 이유로 자리하는 노래.

from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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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43위
제목
Bubble Pop!
아티스트
현아
심사평

대체 왜 특정한 사운드를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붙여 놓았는데도 신나고 짜릿한가? 내가 느끼는 K-POP의 괴상한 즐거움 중 하나는 이런 어이없는 접합에서 비롯된다. 이런 현상이 실험성과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언더그라운드 씬이 아닌 상업적 성과를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메인스트림 팝 음악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은 그 괴상함을 한층 더 배가시킨다. 팝 음악이 꼭 매끈함과 명료함만으로 자신을 치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는 K-POP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실감했다.

‘Bubble Pop!’은 그런 실감의 계기가 된 괴상한 K-POP 트랙 중 하나다. 여름에 어울리는 장조 위주의 멜로디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댄스 브레이크에 이르러 웃음기를 싹 뺀 덥스텝이 튀어나오는 것은 ‘Bubble Pop!’을 유명하게 만든 ‘뜬금없는 접합’이다. 그렇지만 이런 굵직한 부분 외에도, ‘Bubble Pop!’에는 비눗방울이 터지는 모습을 흉내낸 보컬 샘플, 금관악기 소리처럼 베이스에 깔리다 어느 순간 톱니파를 닮은 악센트를 끼얹고 가는 신시사이저, ‘F-C-D-A-C’의 달콤한 멜로디를 ‘우-우우우우~’란 이어웜(earworm)으로 전환시키는 훅 등 온갖 종류의 사운드가 미시적인 괴접怪接을 이루고 있다.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참 듣기 좋지만, 이걸 덕지덕지 붙여 놓아도 과연 좋을까? 라고 생각하게 되는 재료들.

그렇지만 차마 ‘세련된’ 방식으로 붙었다고는 말할 수 없음에도, ‘Bubble Pop!’에서 그 재료들은 서로를 방해하며 어그러지는 대신 각자의 매력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듣는 이의 귀 속에서 팡팡 터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좌충우돌하면서도 자신을 폭죽처럼 터뜨리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운드의 풍경은 자신의 육체가 지닌 힘을 힘껏 발산하며 밝은 기운으로 노래하는 현아의 노랫말과 공명한다. "말은 좀 예쁘게 해 / 웃을 땐 얌전하게 / 연락은 좀 자주해 / 너나 잘해!" 정말 그렇다. 팝은 예쁠 필요도, 얌전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비록 가사에는 "거품처럼 커진 맘을"이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Bubble Pop!’을 들으며 종종 이 파트를 "폭풍처럼 커진 맘을"이라고 착각한다. 이후 ‘Lip & Hip’, ‘Flower Shower’, ‘I’m Not Cool’ 등에서 폭풍처럼 무대를 휩쓸고 다니게 되는 솔로 아티스트로 성장한 현아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 쪽이 더 어울리는 가사가 아닐까, 하고 멋대로 상상하면서. 그 시발점이 되었던 ‘Bubble Pop!’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괴상하고 즐거운 트랙이다.

from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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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44위
제목
꿍따리 샤바라
아티스트
클론
심사평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재회였다. 클론의 동갑내기 두 멤버 강원래와 구준엽은 현진영의 백업 댄싱 팀 ‘와와’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아쉽게도 활동 중에 입대하게 됐고, 제대 후 구준엽은 이탁과의 듀오 탁이준이로, 강원래는 안무가 겸 다른 가수들의 백업 댄서로 활동했다. 한동안 떨어져 있던 둘은 프로듀서 김창환의 제안을 받고 클론을 결성한다. 학창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낸 친구이자 소문난 춤꾼들, 많은 히트곡을 배출함으로써 미다스의 손이라 불린 김창환이 뭉쳤으니 훌륭한 아웃풋이 예견됐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클론의 데뷔곡 ‘꿍따리 샤바라’는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번화가 곳곳에 울려 퍼졌고, 여러 음악방송 1위에 올랐다. 이국적인 느낌을 발산하는 도입부, 팡파르를 떠올리게 하는 씩씩한 신스 브라스 테마, 다이내믹한 리듬 등 노래의 요소들은 일제히 경쾌함으로 수렴했다. 두 멤버의 춤도 무척 시원스러웠다. 노래의 핵심 안무처럼 ‘꿍따리 샤바라’는 1996년 많은 이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들었다.

무의미한 음절을 조합한 제목과 달리 노랫말은 유의미했다. 정작 강원래와 구준엽은 처음 노래를 받았을 때 가사가 건전가요 같아서 노래를 부르기 싫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불만스러웠던 그 부분이 히트를 이루게 한 원동력 중 하나다. “다 그렇게 사는 거야. 희비가 엇갈리는 세상 속에서. 내일이 다시 찾아오기에 우리는 희망을 안고 사는 거야.”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노랫말 덕에 대중은 ‘꿍따리 샤바라’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실 김창환도 노래를 완성하고 나서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강원래와 구준엽은 가창력이 그리 출중하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김창환은 좁은 음폭에서 단조로운 멜로디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을 고려해 만들었더니 동요처럼 느껴지는 곡이 나왔다. 김창환은 자신의 작품을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도리어 이 단순함이 ‘꿍따리 샤바라’의 또 다른 장점이 됐다. 걸걸한 보컬은 간단한 선율 덕에 음악 팬들에게 원만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빠른 래핑 뒤에 등장하는 후렴은 한결 수더분하게 들렸다.

1998년 클론은 1, 2집의 대표곡들을 추린 베스트 앨범으로 대만에 진출한다. 한국어로 부른 노래들을 수록했음에도 앨범은 큰 인기를 끌며 35만 장 넘게 팔렸다. 이로써 클론은 1990년대 후반 한류의 대표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꿍따리 샤바라’가 대단한 업적의 밑거름이 됐다.

from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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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45위
제목
NU 예삐오 (NU ABO)
아티스트
f(x)
심사평

무언가 완전히 다른 것이 나올 것이라는 예감. f(x)의 첫 EP [NU ABO]가 공개되기 직전이었던 2010년 4월, 나는 그런 예감으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 전해, f(x)는 ‘La Cha Ta’와 ‘Chu~♡’라는 훌륭하기 그지없는 두 싱글을 내놓았던 기대되는 신인이었고, 포토그래퍼 하시시박이 찍은 티저 이미지들은 이전의 아이돌 그룹이 흔히 보여주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신비로운 미감을 지니고 있었다. 발매 닷새 전 공개된 티저 영상에서 으르렁거리는 전기톱처럼 진동하는 신시사이저와 즐거운 듯이 "나나난나나" 하는 기이한 멜로디를 외치는 f(x)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예감의 크기를 한층 더 키웠다. 어쩌면, 이 곡은 단순히 ‘다른 것’ 정도가 아니라, K-POP이라는 장르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분수령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그런 종류의 예감이 맞아떨어졌는지는 그것을 느낀 당시에는 확신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NU 예삐오’라는 곡이 지닌 혼돈적 에너지가 과거의 K-POP과 완전히 다른 결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팝 음악이 허용하는 노이즈의 한계까지 다다른 시끄러운 신시사이저 리프와 사람들의 환호성이 아무런 가감 없이 소리의 배경에서 뒤섞이고, 그 까끌까끌한 소리 줄기를 단호하게 절단하는 킥 드럼 위로 사랑과 성장의 의미를 조각낸 가사가 얹힌다. "독창적 별명 짓기 / 예를 들면 꿍디꿍디" "딱 세번 싸워 보기 / 헤어질 때 인사 않기"… 이해불가능성, 혹은 너무나도 다양한 방향으로 치닫는 이해의 가능성을 품은 소리가 우리의 귀 속으로 들이밀여진다. 아니, 그것은 이해보다는 차라리 느낌에 가까운 경험이다.

이 곡이 나온 지 11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NU 예삐오’는 여전히 내가 K-POP, 혹은 메인스트림 팝을 대하는 관점에 있어 하나의 준거점으로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도 넓고 광대해 보이는 메인스트림 팝의 지평은, 그 이면에 ‘대중성’이나 ‘상업성’ 등의 애매하고도 좁은 경계선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라는 개념 이전의 혼돈을 직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팝이 존재하며, 그들은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여기는 메인스트림 팝의 경계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넘어선다.

때로는 소리를 충돌시키며, 또 어떤 경우에는 감각을 확장시키며, 2010년 이후의 K-POP은 그러한 ‘무단 이탈’을 두려워하지 않는 음악이 되었다. 그 시발점에 ‘NU 예삐오’, 그리고 f(x)가 있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from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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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46위
제목
눈, 코, 입
아티스트
태양
심사평

단순하게는, 가장 돋보이는 역할을 늘 지드래곤(G-DRAGON)과 탑(T.O.P)에 내주면서도 빅뱅(BIGBANG)의 메인 보컬과 메인 댄서를 겸했다는 사실이 태양(TAEYANG)의 위치를, 그의 솔로 곡으로서 국내외에 모두 최절정의 인기와 평가를 동시에 가져다준 곡이라는 사실이 ‘눈, 코, 입’의 가치를 설명한다.

조금 더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면, ‘퍼포머’로서 K-POP 아이돌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뒤집은 곡이기도 하다. 애초에 빅뱅은 인기와 성공을 떠나 탄생부터 상당히 의미 있는 논쟁을 불러 일으킨 그룹이다. 지드래곤의 송라이팅 및 프로듀싱 능력과 적극적인 앨범 참여 경력을 앞세워 YG엔터테인먼트는 빅뱅이 ‘실력파 아이돌’이라는 개념과 프레임을 적극 활용했고, 이는 당대의 낡은 관점, 이른바 아이돌과 아티스트 사이 경계, 아이돌의 아티스트쉽 증명에 있어 작사, 작곡 능력의 필요 유무와 같은 다양한 논의점을 낳았다. 이러한 와중에 프로듀서나 송라이터로서의 면모 대신 오롯이 퍼포머로서의 역량을 집중한 태양의 데뷔 EP [HOT](2008)은 K-POP 신에 분 반전의 신호탄이었다. 이후 이어진 증명에 증명의 과정은 6년 후 ‘눈, 코, 입’이라는 성취로 결실을 맺었다.

앞서 ‘나만 바라봐’는 태양의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Trey Songz 내지는 Junstin Timberlake를 위시한 미국 본토 R&B의 감각을 (보컬 테크닉으로든, 성적 매력으로든) 가요 형태로 훌륭히 이식한 예였다. 지드래곤과 함께한 ‘링가 링가 (RINGA LINGA)’(2013)는 그룹 활동 외 솔로 프로듀서와 퍼포머 조합에 있어 선배 이현도와 김성재가 다 보여주지 못한 역사를 이어가는 콤비네이션이기도 했다. 반면에 ‘눈, 코, 입’은 태양이 할 수 있는 것과 당시 대중의 니즈를 절묘하게 절충한 완성형 팝에 가깝다.

이전의 활동을 거치며 태양 자신과 아이돌의 음악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명실상부 해외 팝에 비견할 좋은 장르 음악으로 점차 인정을 받았다면, 이 곡은 여전히 보컬과 댄스 퍼포먼스에 있어 높은 퀄리티를 유지하면서도 느린 템포와 더욱더 단출한 반주, 감성적인 가사를 통해 이전보다 확연히 K-POP 입맛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태양은 국내라는 무대에 한정한 선구자를 넘어 국내외 어디에도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로 남았다. 국내 음원사이트 5주 연속 1위 기록, 여러 국가 글로벌 앨범 차트 및 R&B 차트에서의 1위 석권, K-POP 역대 세 번째로 솔로 가수로서 수록 앨범 [RISE]의 <빌보드 Hot 200> 진입 등 성적은 당연한 것이기도, 덤이기도 했다.

from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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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47위
제목
삐딱하게 (Crooked)
아티스트
G-DRAGON
심사평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고 몇 번이나 외치지만 GD의 음악만큼은 여태 남아 있다. 위악적 포즈와 차라리 분장에 가까운 메이크업, 과감함을 넘어선 그만의 믹스매치 패션 같은 것들은 영원하지 않았던 듯하다. 무엇보다 젊음의 뜨거운 취기와 취기처럼 훅 달려드는 인기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찬찬히 감상한 ‘삐딱하게’ 뮤직비디오는 마치 그러할 줄 다 아는 사람이, 그러니까 다가올 날이 선사할 허망함을 이미 맛본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을 담아냈다. 미래에까지 남을 음악을 만들 테지만, 미래에 나라는 존재는 현재의 나와는 분명 다를 것이라는 절체절명의 사실을 당시 겨우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서던 아티스트는 직감적으로 알아버렸던 것이다. 현재에 대한 감각과 미래에 대한 직감은 독보적인 뮤지션들의 공통된 특징이며 GD에게서 더욱 도드라진다.

그룹과 솔로를 막론하고 절정의 성공을 달리고 있는 시기에 발매한 두 번째 솔로 정규 앨범 [쿠데타(COUP D'ETAT)]는 미시 엘리엇, DJ 디플로, 바우어, 보이즈 노이즈 등의 해외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제를 모았다. 그 세대 아이돌로서는 괄목한 만한 해외에서의 성과를 보였음은 물론이다. 수록곡 중에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린 곡은 GD 혼자만의 목소리가 담긴 ‘삐딱하게’이다. 일렉스토닉한 사운드가 곡 전반을 지배하지만 GD의 긁히는 듯 반듯한 랩과 여린 듯 시원한 가창은 드림과 기타를 뚫고 듣는 이의 귀에 정확하게 안착한다. 중독성 있는 멜로디와 전달력 있는 가창은 숱한 흥얼거림과 커버 영상과 패러디를 낳았다.

무한도전 멤버 정형돈과 동묘에서 펼친 GD의 활약은 ‘삐딱하게’의 범접하기 힘든 청년을 대중에게 보다 가깝게 만들었다. 삐딱한 방향이든 정방향이든 그렇게 GD는 앞으로만 나아갈 것으로 보였다. 그래 보였는데…… 영원한 건 절대 없고, 결국엔 누구든 변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은 여기에 남아 있고, 그를 기다리는 팬들도 무수한 변화 속에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기에 남아 있으니 다시 삐딱한 자세의 뮤지션 권지용이 동묘든 멜론이든 엠카든 다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from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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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7위
제목
FIESTA
아티스트
IZ*ONE (아이즈원)
심사평

K-POP 신을 무대로 가장 화려한 축제를 즐긴 아이돌에게는 축제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불꽃놀이와 같은 곡. 'FIESTA'를 아이즈원의 전체 타이틀곡 중에 최고의 노래로 꼽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 또한 곡이 주는 임팩트가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숨 가쁘게 달리는 베이스 위로 후렴에서 터져 나오는 브라스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폭죽을 음악으로 구현한다면 반드시 이런 형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높은 음역을 쨍하게 찔러대는 멜로디 라인에서는 축제에 모인 인파의 환호가, 그 어느 때보다 직선, 사선의 대형을 강조하고 있는 퍼포먼스에서는 퍼레이드 마칭 밴드의 기강이 느껴진다. 그래서 이 노래를 듣고 '화려한 이 축제'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는 이후 정식 데뷔 과정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여러 참가자가 만들어냈던 화제성을 이어가지 못하고 점차 대중성을 잃어가는 것이 수순이었다. 그러나 <프로듀스> 시리즈의 우승자에 해당하는 데뷔 그룹은 방송 종료 이후에도 높은 화제성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프로그램의 세 번째 시즌인 <프로듀스 48>의 아이즈원은 데뷔 앨범보다 이후 앨범의 판매량이 점차 높아지면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굴레를 벗어나 완결성 있는 그룹으로서의 아이덴티티와 대규모의 팬덤을 갖게 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등장한 'FIESTA'는 짧은 기간에 큰 폭발력을 발휘했던 아이즈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다.

오디션 과정을 통해 실력과 매력을 검증받은 멤버 구성에 대중이 기대하는 바가 컸음에도 아이즈원은 그 높은 기대를 배신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오디션 중에는 잠재되어 있던 능력까지 발휘하면서 대중에게 인정받고 추가적인 팬덤 확장까지 이끌었다. 이제 '포스트-프듀' 시대에 접어든 K-POP에게 'FIESTA'는 아이즈원뿐만 아니라 전체 가요 시장에 오디션 프로그램의 기능과 의의에 대해 고찰할 것을 주문한다. 유능한 멤버와 양질의 디스코그래피를 추구하는 이 정공법을 통해, 하물며 오디션 프로그램의 후광이 사라진 후에도 아티스트의 커리어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너무나도 교과서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from 조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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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49위
제목
LION
아티스트
(여자)아이들
심사평

"I'm a lion I'm a queen." 이 곡은 걸그룹을 대상으로 한 경연 프로그램이었던 Mnet <퀸덤>에서 등장했다. 사자와 여왕을 연결 지은 (여자)아이들의 시도는 언뜻 단순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언급한 도입부의 가사 한 줄만으로는 분명 이 곡에 담긴 기개를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넓은 황야 속 크고 단단한 씨를 뿌"릴 것을, "깊은 바닷속까지 거친 멜로딜 꽂아"버릴 것을 주장하는 이 걸그룹의 행보는 경연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뛰어난 면면을 자랑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곡에서부터 "시작의 점화 가까이 온다 누가 뭐 겁나"라고 사랑에의 열망을 과감하게 노래하던 (여자)아이들은 ‘LION’에 이르러 자신들이 다른 걸그룹들과 어떻게 다른지 명쾌하게 보여주었다. ‘LION’의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견고한 자기 확신의 메시지는 그동안 수많은 경연 프로그램에서 보아왔던 “I’m the best”, 혹은 “Boys/Girls be ambitious!”라며 경쟁자에게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는 콘셉트 그 이상을 얘기한다. 뮤직비디오에서 ‘뻔한 리듬을 망치고 사자의 춤을 바치’는 이 여성들은 상대의 날카로운 발톱에 등이 긁히고도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서 떳떳하게 왕좌에 오른다. 이때 그들은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든, 어떤 무대를 선보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우리는 강하고, 거칠며, 뜨겁기 때문에. 결국 (여자)아이들은 경쟁심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확신만으로 진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 모든 서사를 가능케 한 사람은 (여자)아이들의 리더이자 작곡가, 프로듀서인 전소연이었다. 그는 Mnet <프로듀스 101>의 첫 번째 시즌과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경쟁’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자신이 만든 음악과 퍼포먼스의 가치가 재단 당하는 경험을 한 인물이었다. 덕분에 전소연은 직접 프로듀싱한 (여자)아이들이라는 그룹을 통해 더 이상 외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게 됐다. 즉, ‘LION’은 전소연의 서사가 수많은 여성들의 서사로 넓혀진 트랙이기도 하다. 프로듀서 자신이 지닌 서사와 그가 지닌 뛰어난 능력이 한국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커다란 환호를 이끌어낸, 유례없는 케이스가 K-POP에 탄생했다.

from 박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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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0위
제목
일곱 번째 감각 (The 7th Sense) (Sung by 태용, 마크, 재현, 도영, 텐)
아티스트
NCT U
심사평

현 시점에서 ‘일곱 번째 감각’은 SM엔터테인먼트의 야심찼던 ‘신문화기술’인 NCT의 사운드를 대표하기에는 조금 동떨어지게 느껴진다. 그 이전까지 SM엔터테인먼트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었던 빽빽하게 조합적인 성질은 미니멀한 비트 위에 꼼꼼히 흩뿌려진 효과음들로 축소되었고, 사실 그 이후의 NCT는 초창기의 특색을 밀어붙이기보다는 점차 소속사의 고유한 색채와 더 넓은 아이돌 팝의 지형도에 적응했으니 말이다.

사실 그렇기에 ‘일곱 번째 감각’은 NCT의 경력 자체에서부터 조금 더 넓게는 소속사나 아이돌 팝 전체를 따져보아도 닿기 힘든 위치에서 돋보이는 트랙이 되었다. 이를테면 이전까지만 해도 아이돌 팝에서 강렬한 EDM적 드랍을 추구하거나, 겉보기에 ‘힙합’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해 트랩의 양식을 사용했던 것에 비해 ‘일곱 번째 감각’에서는 서브베이스를 느리고 묵직하게 부풀리는 것으로 큰 차이를 두었다. 가라앉은 무게감은 비트로서 기능하기보다는 차라리 서늘한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이를 배경으로 삼은 채 다섯 멤버들의 다양한 음역대에서 부각되는 알앤비 창법의 보컬 라인이 오르내리며 트랙을 이끈다.

그 때문에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가 자칫 나른해질 수도 있겠지만, ‘일곱 번째 감각’은 태용의 중저음에서 도영의 고음까지 멤버들의 목소리를 교대로 배치하고 새로운 멜로디를 넣으며 긴장감을 유지한다. 무거운 비트의 틈새에 초침 소리나 문 두드리는 소리까지의 잡음들이 은근하게 삽입되어 그 몽롱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켜주기도 한다. 특히나 트랙의 중앙에서 확 치고 들어오는 마크의 꽉 짜인 랩은 아이돌 팝에서 랩을 힙합 콘셉트나 그러한 일종의 ‘애티튜드’보다도 하나의 장치처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례였다. 이런 접근법은 이전의 YG나 비슷한 시기 지코의 활동으로 대표되던 랩 스타일을 혁신하는 새로운 모델로서 작용할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자유롭게 그루브를 타듯 보이지만, 실은 정확하게 짜인 안무를 물 흐르듯 소화해내는 탄탄한 퍼포먼스가 트랙의 구성과 가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돌 팝에서 트랩의 사용이 가져올 한계에 있어 ‘일곱 번째 감각’는 신선한 사운드로 이를 정면 돌파해 매끄러운 세련미로까지 높게 발전시켰다. 이를 NCT라는 새로운 초대형 프로젝트의 데뷔곡으로 사용했던 확실한 안목과 자신감을 보면, ‘일곱 번째 감각’은 정말로 육감을 넘어 ‘칠감’에 가까운 무언가가 가득 담겨있던 트랙이다.

from 나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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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1위
제목
벌써 12시
아티스트
청하
심사평

청하라는 아티스트가 처음으로 가요계의 빈 틈을 파고든 순간이라고 한다면, 역시 <프로듀스 101>에서 선보였던 ‘Bang Bang’ 무대가 아닐까 싶다. 숨 죽여 집중하거나 아니면 미친듯이 환호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폭발적 카리스마. 뛰어난 댄스에 기인한 ‘실력파’ 이미지는 이 때 장착된 셈이다. 사실 이 때만 해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그룹활동이 대부분인 K-POP 신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퍼포머형 솔로가수 등장의 예고편이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성공적인 커리어의 서막일 줄은.

이 노래는 그간 치열하게 일궈낸 성과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결과물이다. ‘벌써 12시’라는 킬링 프레이즈는 ‘알던 사람만 알던’ 그를 만인에게 알리며 전 국민이 인정하는 K-POP 대표 솔로 아티스트로 자리잡게 만들었다. 사운드의 핵심을 이루는 신시사이저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비트의 완급 조절, 여기에 많은 사람을 홀리게 한 후렴의 임팩트까지. 전략이 가미된 강렬한 대중성에 많은 이들이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2019년 <멜론 연간차트> 11위, 그 해 <빌보드 선정 최고의 K-POP 25곡> 중 3위 등 객관적인 수치로도 증명된다. 대중과 평단을 동시에 사로잡은 대표넘버의 탄생이었다.

가창력과 안무, 무대매너의 삼박자가 보여주는 완벽한 균형감. 솔로야말로 그가 가진 잠재력 방출에 가장 적합한 형태였음을 지금에 와 더욱 절감하고 있다. 첫 <프로듀스 101> 시리즈의 선발멤버이자, 다수가 아닌 홀로 승기를 꽂은 입지전적인 인물. 이 노래는 그러한 청하의 위대함에 빛을 더하는 훈장과도 같은 노래다. 동시에 가수에게 있어 ‘범대중적 히트’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기도 한 시그니처 송.

from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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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52위
제목
비밀정원
아티스트
오마이걸 (OH MY GIRL)
심사평

항간에는 만에 하나 ‘비밀정원’에서까지 실적이 없었다면 오마이걸은 해체되었을 거라는 ‘과거완료-매우안심형’ 소문이 있다. 실체적 진실은 관계자가 아닌 이상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7년 계약에 4년 차 활동이었으니 아주 비합리적인 추론만은 아닐 테다. 오마이걸은 대표적인 역주행 그룹으로 불릴 만하다. 브레이브걸스나 EXID만큼의 드라마틱한 상승은 아니지만 싱글과 앨범, 예능 활동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여 처음의 미약함을 지금의 창대함으로까지 끌어올렸으니, 노래 한두 곡이 아닌 그룹의 존재 자체가 역주행이라 해도 될 것이다.

역주행의 시발점이 된 ‘비밀정원’은 오마이걸의 아이돌로서의 운명을 예견하는 듯한 가사가 특히 인상적이다. 아직 필 때가 아니지만 언젠가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라는 서지음 작가의 세련된 직감은 당장 ‘비밀정원’ 활동에서부터 마치 짠 것처럼 이루어진다. 전작 중 K-POP 팬들에게 숨은 명곡으로 인정받은 ‘Closer’와 ‘한 발짝 두 발짝’의 장점만 흡수한 듯한 이 노래는, 발랄한 템포 아래 몽환적인 멜로디를 얹어 멤버 각각의 매력을 비로소 무대의 전면에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여성 아이돌을 편의에 따라 혹은 게으른 태도에 의해 섹시함과 청순함으로 그 콘셉트를 분류하고는 했었는데, 오마이걸은 청순함에 입체성을 더했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소녀의 청순함이 아닌, 비밀을 간직한 청춘의 갈등과 결심 같은 것을 엿보이게 했다.

이를 다시 편의상 혹은 게으름에 의해 ‘몽환’으로 부를 수도 있겠지만, 그저 오마이걸 또는 줄여서 ‘옴걸’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비밀정원’ 이후로 ‘옴걸’은 계속 ‘옴걸’답게 ‘옴걸’하게 되는데…… ‘불꽃놀이’, ‘다섯 번째 계절’, 음악 예능 퀸덤에서 ‘데스티니’ 커버, ‘살짝 설렜어’와 ‘던던 댄스’에 이르기까지 4년째에 없어지지 않았으며 7년을 다 채우고 그 앞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줬다는 점에서 ‘비밀정원’은 그 가사만큼의 역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비밀정원’ 이후로 오마이걸은 열렸던 문틈으로 보았던 세계를 완전히 열어젖혔다. 그 안에 심어뒀던 멋지고 놀라운 것들은 이제 활짝 피어나는 중이다.

from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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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3위
제목
View
아티스트
SHINee (샤이니)
심사평

샤이니는 그들이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컨템퍼러리(contemporary)’를 내세웠다. “컨템퍼러리 밴드란 음악, 춤, 패션 모든 부분에서 현 시대에 맞는 트렌드를 제시하고 이끌어 나가는 팀을 지칭하는 것이다.” 데뷔 싱글 ‘누난 너무 예뻐’에서의 소개글에서 자신들이 어떤 그룹인지를 정의한 대로, 그들의 음악은 K-POP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앞서 나간 소리를 담고 있었다. 다만 2015년 이전까지, 샤이니의 컨템퍼러리는 ‘현 시대에 맞는’보다는 ‘이끌어 나가는’에 더 방점이 찍혀 있던 것처럼 보인다. 빈틈없이 꽉 찬 중독적인 훅으로 일관하는 ‘Ring Ding Dong’, 화려함과 긴장감, 미래적인 사운드가 똘똘 뭉친 ‘Sherlock (Clue+Note)’, 강렬하고 극적인 퍼포먼스와 딱 맞는 제복으로 덥스텝(Dubstep)을 풀어낸 ‘Everybody’에 이르기까지, 샤이니의 음악과 춤과 패션은 온 힘을 다해서 미래의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모습의 샤이니는 ‘View’의 뮤직비디오 서두에서 말 그대로 어디론가 납치당한다. 카메라와 환호성 속에서 수트를 입고 있었던 이들이 그 대신 몸에 걸친 것은 헐렁한 민소매 티셔츠와 늘어진 벨트, 빈티지 쇼핑몰이나 시장에서 골라잡았을 법한 의상들이다. 힘이 빠진 것은 의상만이 아니다. 바로 직전의 타이틀곡 ‘Everybody’에서 온 힘을 다해 풍차를 돌리는 등 격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이들은, ‘View’에서는 섬세하게 허리를 튕기고 중력과 공기에 구애받지 않는 듯한 가벼운 몸놀림을 선보이면서 작고 세심한 동작을 퍼포먼스의 주된 동력으로 삼는다. 그 모든 요소들을 감싸는 것은 딥 하우스(Deep house)와 UK 개러지(UK garage)의 문법을 빌려 온 미니멀한 팝 사운드다. 런던 노이즈(LDN Noise)와 라이언 전의 프로덕션은 소리가 빈 곳은 그냥 빈 채로, 소리가 존재하는 곳은 세밀하게 다듬은 질감으로 채우면서 샤이니 멤버들의 시원한 보컬이 불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이 모든 것들을 보고 들으며, 나는 단 하나의 단어를 떠올린다. 힘들이지 않은 듯 수월한(effortless).

‘View’가 샤이니에게 있어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이 트랙 이전까지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앞서 나가려고 했던 이들은 ‘View’를 통해서 비로소 컨템포러리 – ‘동시대’의 미감을 자신에게 체화하면서 세련의 또 다른 지평을 펼쳐 나가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그 기점은 샤이니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 동안 꽉꽉 채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던 K-POP 음악계에, ‘View’는 덜어내는 것도 "뚜렷한 색감과 여섯 번째 감각"을 깨우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4 Walls’ (f(x)), ‘일곱 번째 감각’ (NCT U), ‘Dolphin’ (오마이걸)… 이후로 등장한 많은 K-POP의 미니멀한 사례들이, ‘View’에게 빚을 지고 있다.

from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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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54위
제목
여름 안에서
아티스트
듀스
심사평

듀스의 ‘여름 안에서’가 발매된 1994년은 2018년 깨지기까지 역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해였다. 지금도 더위 하면 94년 여름을 언급하곤 할 정도다. 그런 찌는 듯한 뜨거움 속에 등장한 점조차 이 곡에 전설의 아우라를 더하는 듯 하다. 재즈색소포니스트 이정식이 연주한 이 곡의 색소폰 인트로는 세월이 아무리 가도 도무지 늙지를 않는다.

뉴잭스윙의 그 쫀득한 리듬이나 격한 댄스 무브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듀스의 최고 강점은 이현도의 탁월한 멜로디 메이킹 능력과 그를 소화해내는 김성재의 표현력이었다. 지금 같으면 신스로 대체될 리얼 색소폰부터 투박한 808 드럼. 그 위에 8박을 벗어나지 않으며 흘러가는 편안한 멜로디와 가타부타 화려한 수식 없는 순수한 가사. 그리고 이를 별다른 꾸밈이 없이, 그렇지만 힙합의 스웩(Swag)을 잃지 않은채 부르는 브라운관 속의 두 사람. 애초에 거추장스러운 부속이 없는 노래였기에 더 여름의 낭만 그 원형대로 나이들 수 있었다.

그들의 무대에서는 멋이 넘쳤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자주 쓰이는 단어 ‘스웩(Swag)’은 듀스를 위한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들 무대에서는 미국 힙합의 멋을 자기 것으로 체화하고자 한 두 멤버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김성재가 직접 챙긴 스타일링 역시 무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겠다. 특히 이 곡이 아직도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에는 지난 20년 간 힙합이 전세계 팝음악의 대세로 자라났기 때문이 클 것이다. 원본에 가깝고자 했던 그들의 연구와 노력이 이들 음악을 클래식으로 나이들게 했다.

그 동안 수없이 리메이크 됐지만 원곡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보인다. 모던한 트위스트를 주고자 추가하는 거의 모든 시도들이 사족으로 느껴질만큼, 원곡 있는 그대로가 여름의 낭만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며 추억이 덧대어지는만큼 그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9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에게도, 90년대를 겪지 않은 사람에게도, ‘여름 안에서’는 반박할 수 없는 여름의 마스터피스다.

from 랜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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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5위
제목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
아티스트
f(x)
심사평

SM엔터테인먼트의 두 걸그룹—레드벨벳과 f(x)는 비슷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또 다른 길을 향한다. 에프엑스는 발랄하면서도 엉뚱한 감각을 탑재하며 정확히 10대 소녀를 겨냥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정규 2집 [Pink Tape](2013)의 ‘첫 사랑니(Rum Pum Pum Pum)’를 통해 그 정점에 도달한다.

‘소녀’와 ‘첫사랑’은 초기의 에프엑스에게 지속된 화두였지만, ‘새로운 혈액형(NU ABO)’의 독특한 공식 또는 ‘전기 충격(Electric Shock)’의 4행시로 비유하던 첫사랑의 감정은 ‘첫 사랑니’에 이르면 조금 더 현실적으로 구현된다. 아픔과 설렘의 복합적인 정서라는 사실을 복기하는, 첫사랑과 사랑니를 중첩시킨 전간디의 가사는 어떤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는 통증은 곧 “네 마음 벽을 뚫고 자라”나는 “진짜 네 첫사랑”으로 치환된다. 더 중요한 지점은, 이 중의적 화법이 단순한 등치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화자(아마도 소녀)는 사랑니인 동시에 소녀이고, ‘너’는 소녀일 뿐 아니라 상대(아마도 소년)가 된다. 이를 통해 사랑니가 (우의적으로) 소녀에게 경고하는 것 같다가도, 소녀가 소년에게 선언하는 태세로 교란된다. ‘내가 쉽지 않다’고, ‘힘들게 날 뽑아내도 평생 그 자리를 비워두어야 한다’고 전하는 ‘특별한’ ‘새로운’ ‘짜릿한’ (소년의) 첫사랑은 이렇게 (소녀에 의해) 정의된다.

이런 가사를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이국적이고도 이색적으로 들리는 사운드이다. 인도 악기인 시타르 루프를 기본으로 하여, 캐롤송 ‘북치는 소년’과 맞닿는 구음, 마칭 드럼을 연상시키는 스네어 롤까지 섬세히 배치되어 있다. 돌림노래처럼 순환하는 동안에도, 그리고 “벽을 뚫고 자라난다” “깨질 듯이 아파온다”는 구절의 반복과 보컬 화음이 쌓이는 순간에도 분열하고 증식한다.

횡렬로 또는 직선적으로 구성된 이 노래의 무대도 흥미롭다. 타탄체크를 위시한 플리츠 스커츠가 통상적으로 소비되는 소녀의 교복을 재현하는 것 같다가도, 엠버의 랩과 바지 스타일의 복장이 만나는 순간 여타 걸그룹과는 다른 섹슈얼리티에 대한 감각이 환기된다.

더불어, 비디오테이프 형태로 아날로그적 질감을 더한 앨범 아트워크에는 화사한 핑크가 배색되었지만 단순히 핑크 감성의 재현이 아니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하이틴 로맨스”를 의도했다는 민희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주도한 ‘아트필름’을 참고하면 소녀들의 이미지는 환상적이면서도 순진무구하고, 화려하면서도 일상적인 감각을 실어나른다. 이후에 등장한 러블리즈나 여자친구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것에 비해, 몽환적이고 불가해한 듯 보이는 f(x)가 오히려 선명하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from 최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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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56위
제목
TT
아티스트
TWICE (트와이스)
심사평

‘TT’는 이전에 발매한 싱글 ‘Cheer Up’의 "샤샤샤"로 K-POP 팬을 넘어 보다 넓은 범위의 대중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 트와이스를 K-POP 3세대를 대표하는 걸그룹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곡이다. 특히 이 곡은 쉽게 따라부를 수 있고 기억에 잘 남는 달콤한 멜로디와 흉내 내기 쉬운 간단하면서도 임팩트 확실한 춤동작을 통해 일반적인 음악팬들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한 곡으로, 갈수록 K-POP이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는 ‘그들만의 음악’이 되어간다는 우려를 씻어낸 곡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트와이스는 블랙핑크, 레드벨벳, 마마무, 여자친구 등 대표적인 K-POP 3세대 걸그룹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룹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TT’의 성공 이후 범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의 척도라고 할 수 있는 TV 광고에 트와이스가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더 많이, 자주 등장한 것이 그 증거 중 하나이다.

K-POP 역사에서 이 노래가 갖는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는 바로 일본 시장에서의 대성공이다. 카라의 ‘미스터’가 일본에서 예상치 못한 큰 성공을 거둔 후 K-POP은 일본 젊은 세대의 큰 사랑을 받는 장르로 자리 잡았고 이후 많은 K-POP 가수들이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였다. K-POP이 동아시아 바깥 지역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현재까지도 일본은 여전히 K-POP 산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해외 시장이다. 그러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기습 방문 및 양국의 정치적인 갈등이 심화되며 이후 일본 내 한류는 다소 그 기세가 꺾였다. K-POP 역시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는데, 꾸준히 K-POP 가수들을 지원하는 팬들 외에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는 확장성이 약해진 것이 가장 큰 타격이었다.

그러나 ‘TT’는 일본의 10대와 20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다소 약해지던 일본 내에서의 K-POP 인기를 재점화했다. 특히 ‘TT’ 안무 속 특유의 손동작을 따라 한 후 그것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는 일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면서 일반인들은 물론 유명 연예인이나 소셜 미디어상의 ‘인플루언서’들까지 여기에 참여했고, 이는 트와이스의 인기를 보다 폭넓은 것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단지 성공한 노래로서만이 아니라 해외 시장에서의 K-POP 인기를 견인했다는 점에서 ‘TT’가 K-POP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다고 하겠다.

from 이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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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57위
제목
영원한 사랑
아티스트
핑클 (Fin.K.L)
심사평

‘영원한 사랑’으로 핑클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이 노래의 화이트 톤 뮤직비디오가 처음 공개됐을 때 전국의 남학생들은 설렘에 잠을 못 이뤘다. 사람이 아닌 요정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이젠 내 사랑이 되어줘”라는 가사로 시작된 걸그룹의 서사는 “약속해줘”라고 말하며 내민 새끼손가락과 함께 드라마가 되었다.

90년대 후반의 남중, 남고는 S.E.S.파와 핑클파로 나뉘곤 했다. 하지만 두 팀이 처음부터 대결구도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핑클의 데뷔 곡 ‘Blue Rain’은 분명 잘 만든 곡이었지만 걸그룹의 이미지보다는 기존 여성 보컬 그룹의 느낌이 강했다. 이후 핑클 2집 타이틀 곡인 ‘영원한 사랑’이 빅 히트를 치면서 K-POP 걸그룹의 역사는 핑클과 S.E.S.라는 걸출한 두 그룹의 양강구도로 서막을 열게 된다.

‘영원한 사랑’은 ‘K-POP 걸그룹의 전설’ 핑클을 상징하는 곡이다. 핑클은 K-POP 역사상 가장 많은 히트곡을 남긴 팀 중 하나인데 ‘영원한 사랑’은 그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보석이다. 핑클은 ‘영원한 사랑’으로 ‘걸그룹 = 요정’ 공식을 K-POP에 정착시켰다. 노래, 의상, 안무가 삼위일체를 이룬 그야말로 완벽한 요정이었다. 이 요정 콘셉트는 후배 걸그룹들에게 가장 오래, 가장 널리 계승된 콘셉트다. 최근의 걸크러쉬가 유행하기 이전 가장 많이 반복된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의외로 ‘영원한 사랑’을 커버한 후배 걸그룹들은 많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옥주현 파트의 난이도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그만큼 핑클은 팔색조 매력을 지닌 걸그룹이었다.

‘영원한 사랑’은 노래만큼이나 안무도 큰 사랑을 받았다. “항상 나의 곁에 있어줘” 파트에서 팔을 돌리는 안무는 동시대의 10대들이라면 한번쯤 따라해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핑클은 ‘영원한 사랑’으로 당시 인기의 척도였던 공중파 3사 가요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에 오르고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차지해 1999년 최고 인기가수의 행보를 걸었다. 아이돌그룹으로서 연말 가요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것은 H.O.T.에 이은 두번째 사례다. ‘영원한 사랑’은 젝스키스의 ‘커플’, H.O.T.의 ‘캔디’ 등과 함께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K-POP 곡이기도 하다. 피아노로 시작되는 전주만 들어도 청자를 90년대 그 시절로 데려가는 마법과 같은 노래라 할 수 있겠다.

from 권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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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58위
제목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아티스트
H.O.T.
심사평

H.O.T.로 K-POP의 역사는 시작됐다. 최초의 K-POP 아이돌그룹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소방차를 또 누군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최초의 K-POP 아이돌이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위 두 그룹이 K-POP 문화가 생겨나는데 토양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전 세계적으로 소비되는 K-POP 아이돌그룹 시장과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첫 시작점, 첫 현상은 바로 H.O.T.다.

‘전사의 후예’는 H.O.T.의 데뷔 곡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K-POP 역사에서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다. H.O.T.는 ‘전사의 후예’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한국 가요계에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했다. 이후 아이돌그룹 전성시대가 열리면서 젝스키스, NRG, god 등의 후발주자들이 등장하게 되고 본격적으로 한국 가요계의 패러다임이 아이돌그룹 중심으로 흐르게 된다. ‘전사의 후예’로 K-POP의 포문이 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사의 후예’는 학원폭력을 소재로 삼으면서 당시 10대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냈다. 이는 당시로서 매우 파격적이고 또 모험적인 시도였다. 다섯 명의 10대 소년들이 등장해 학원폭력에 대해 사자후를 날리는 모습은 동년배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는 공교육을 정면으로 비판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와는 또다른 형태의 충격이었다. ‘전사의 후예’를 통해 H.O.T.는 10대들 사이에서 단순히 인기가수가 아닌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 자리를 꿰차고 ‘10대들의 대변인’이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유영진이 만든 ‘전사의 후예’에서 나타나는 록에 기반을 둔 강렬한 사운드, 사회비판적인 가사, 장르의 이종교배는 이후 SMP(SM Music Performance)라는 SM엔터테인먼트를 대표하는 음악 양식으로 자리하게 된다. ‘전사의 후예’로 시작된 SMP는 K-POP의 사반세기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계승되며 하나의 계보를 이루고 있다.

H.O.T.는 기획사 주도로 탄생한 기획형 아이돌그룹의 원조이지만 본인들이 직접 안무를 창작하는 등 아티스트적인 면모도 보였다. ‘전사의 후예’ 안무 역시 문희준이 직접 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지금처럼 아이돌 제작 시스템의 체계가 갖추어지기 이전의 자급자족 아이돌그룹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from 권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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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59위
제목
나를 돌아봐
아티스트
듀스
심사평

“이젠 우리가 시작하겠어 바로 여기서 D E U X, DEUX! 여기서 우린 보여주고 싶어 D E U X, DEUX!”

‘나를 돌아봐’의 당찬 인트로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이현도, 김성재의 듀스는 그들의 포부처럼 등장부터 특별했다. 이는 무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전주부터 그토록 역동적인 브레이크 댄스로 시선을 사로잡다니. 어설프게나마 흉내를 낼 수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회오리 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를 돌아봐’의 움직임은 전문 댄서가 아니라면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펄쩍 뛰어 사뿐히 바닥에 엎드리고, 금세 한 바퀴를 돌며 일어나고, 부드럽게 공중제비를 도는 그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춤만 잘 춘 것이 아니다. 듀스는 음악적으로도 남달랐다. 이들보다 1년 빨랐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가 랩과 록, 댄스를 한데 모은 곡이었다면, 듀스의 ‘나를 돌아봐’는 오직 힙합에 집중한 노래였다. 가요 곡으로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우리말로 랩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정교하게 랩의 완급을 조절했고, 운율을 살려 웰메이드를 꾀했다. 비트박스, 디제잉 같은 힙합의 요소도 자연스럽게 곡에 녹여냈다. 이러한 디테일을 구상하고 노래를 만든 인물이 바로 이현도였다. 그는 힙합, 나아가 흑인 음악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고, 이를 우리 감수성에 맞춰 탁월하게 풀어냈다. ‘나를 돌아봐’를 장르 음악이 아닌 그저 댄스 음악으로만 취급하면 곤란한 이유다.

듀스의 음악은 혁신이었다. 앞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혁신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그렇다. 겨우 3년 남짓한 활동 기간에 이들은 한국 힙합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첫 활동 곡이었던 ‘나를 돌아봐’의 가치는 상당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여파로 댄스 음악이 하나둘 생겨나던 시점에 듀스는 분명한 개성과 장르에 대한 높은 이해로 이들만의 출발선에 섰기 때문이다. 듀오의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던 ‘나를 돌아봐’의 도입부는 어쩌면 근거 있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두 청년의 이유 있는 출사표였는지도 모르겠다.

from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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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0위
제목
달라달라
아티스트
ITZY (있지)
심사평

JYP에서 트와이스 이후 첫 걸 그룹을 제작한다고 했을 때, 그 성공을 의심한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원더걸스에서 미스에이를 지나 트와이스에 이르기까지 보통의 성공이 아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다른 차원의 성공을 맛본 역사가 있었다. 달리 말해 ITZY에게는 선배들이 일군 지난 성공의 역사를 계승함과 동시에 그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하는 의무와 부담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선배 트와이스와는 달리 데뷔 전용 오디션 프로그램은 없었고, 각 멤버가 어딘가 애매한 프로그램에 얼굴을 조금 비춘 게 다였다. 숫자도 다섯 명이라니, 그 시기에 유행한 다인원 아이돌의 흐름에 역행하는 바였다.

그러나 데뷔 싱글 ‘달라달라’의 티저가 공개되자마자 이 새로운 그룹에 대한 이런 걱정과 저런 불안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그리고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릴리스된 동시에 ‘달라달라’의 희한한 중독성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었다. 그 시작은 물론 노래의 시작 부분에 있다. 시작 후 1초가 되지 않아, 승부는 끝난 것이다. 3분 남짓한 가요에 간주의 자리에 사라진 건 꽤 오래된 일이다. 간주 대신 가수의 목소리가 자리하는 경우가 꽤 많다. 아님 후킹이 되는 사운드를 등장시키거나 후렴으로 가야 할 대목이 곡의 첫머리에 위치하기도 한다. 유튜브와 스트리밍의 시대, 사람들의 귀는 싫증을 자주 내고 오래 참아주지 않는다. 역시나 달리 말하자면 한순간의 반짝임으로 그들의 귀를 잡아둘 수도 있다는 말.

‘달라달라’의 시작은 이제 막 무대에 선 신인 가수의 설레는 심장 박동 소리를 닮았다. 첫마디의 긴장감을 곡이 끝날 때까지 밀어붙이는 그루브도, 그 그루브를 따라 치밀하게 구획된 안무도, 꽤 복잡한 안무를 사람 아닌 AI처럼 완벽하게 소화하는 퍼포먼스도, 모두 남들과는 달랐다. 그냥 다른 게 아니라, 다르고 또 달랐다. 나는 언니들과는 다르다는 선언으로 데뷔한 ITZY는 이후 발표하는 노래마다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이제 ITZY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퍼포먼스와 음악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제 그들은 과거의 ITZY와 달라야 할 것이다. ‘달라달라’를 넘어선 다섯 소녀의 미래를 기대한다.

from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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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61위
제목
성인식
아티스트
박지윤
심사평

혁신은 과감함을 동반한다. ‘하늘색 꿈’과 ‘Steal Away’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풋풋함을 노래하던 박지윤은 2집 [Blue Angel]에 수록된 ‘소중한 사랑’에서의 협업을 인연으로 박진영과 손을 잡아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고, 그 결과 당대 최고의 섹시 아이콘으로 거듭나며 유례없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창법과 분장, 몸짓까지 어느 하나 예전의 것은 없었다. 영화계에 [7년 만의 외출]의 마릴린 먼로와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이 있었듯, 박지윤의 반전된 국면을 펼친 ‘성인식’은 그 간극이 가져온 충격만큼이나 한국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미(美)의 심벌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당시 이미지 변화의 필요성을 체감한 박지윤은 박진영에게 미국의 알앤비 가수 알리야(Aaliyah)의 음악을 들려주며 감각적인 프로듀싱을 요구했고, 흑인 음악에 심취해 있던 박진영은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박지윤의 청초한 면모 뒤에 가려진 몽환적인 아우라, 그리고 허스키한 보이스에서 풍기는 관능미였다. 비슷한 선례인 엄정화의 ‘초대’로 성공한 경험을 가진 그는 또 한번 섹시 콘셉트를 발굴하기 시작했고, 면밀한 구상 끝에 센세이셔널한 비주얼의 ‘성인식’을 탄생시킨다.

숨소리로 이뤄진 박자에 맞춰 동양 풍의 스트링이 최면을 건다. 이에 도발적인 안무와 복장이 등장하며 시너지를 더한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등의 묘사와 여러 함의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는 성적 은유를 언급하고 해석의 여지를 남겨 청자의 상상력을 노골적으로 자극한다. 다만 외설로 치부하기에는 추상적이고, 선정적이라기에 곡은 차분하고 절제되며, 불순하다고 여기기에는 되려 순수한 고백에 가깝다. 비록 대중의 시선은 자극적인 인상에 머물렀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파고 들어가 보면 검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고도의 기술과 색(色)의 가청화 작업이 숨겨져 있다.

‘성인식’이 오늘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선풍적인 화제를 이끌며 한 아티스트의 황금기를 열었다는 상업적 측면에서는 물론, 당시 사회 전면에 드리운 유교 사상에 직접 부딪히며 터부시되던 여성의 자기표현 영역을 해금했다는 의의에도 있다. 훗날 가인의 ‘피어나’가 가져온 해방 전선의 든든한 귀감이자, 씨스타 ‘나 혼자’와 걸스데이 ‘Something’에게는 콘셉트적 지주로, 선미의 ‘보름달’에서는 캐릭터 구축의 전신이 되기도 하며 대중음악사에 지속적인 여파를 끼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성인식’은 후배들에게 시대를 초월하는 도전 과제이자 뮤즈로 자리하며 그 입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from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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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62위
제목
태양을 피하는 방법
아티스트
심사평

‘태양을 피하는 방법’은 비에게 각별한 노래다. 그는 스스로 가장 아끼는 곡이라 밝힌 바 있는 이 노래로 톱 가수 반열에 올랐다. 스물한 살에 낸 데뷔 앨범에서 ‘나쁜 남자’와 ‘안녕이란 말 대신’의 상반된 테마, 콘셉트를 천연하게 체화하며 잠재력을 드러냈던 그에게 이듬해 개성 강한 캐릭터를 부여한 곡이기도 하다. 예능 프로그램과 텔레비전 드라마를 통해 멀티 엔터테이너로 먼저 성장한 비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통해 비로소 가수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했다.

흔히 가수 ‘비’하면 떠올리는 많은 것들이 이 곡에서 완성됐다. 그는 ‘안녕이란 말 대신’의 천진난만한 소년 이미지 대신 한층 성숙한 성인 남성의 매력으로 무대를 채웠다. 호흡을 많이 섞는 특유의 거친 창법, 힘과 유연성, 절제미를 두루 갖춘 댄스 퍼포먼스, 근육질 몸매를 은근히 노출하는 스타일링이 ‘태양을 피하는 방법’부터 나왔다. 그의 시그니처가 된 보잉 선글라스를 쓰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무엇보다 돋보인 것은 곡을 소화하는 비의 풍부한 감정 연기였다. 잊고 싶은 옛 연인을 아무리 달려도 피할 수 없는 태양에 비유해 괴로운 마음을 그린 그의 표현력은 마치 뮤지컬 배우의 연기를 보는 듯 생생했다.

오직 그만이 부를 수 있는 맞춤형 노래였다. 제작자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위해 스팅(Sting)의 ‘Shape of My Heart’(1993)를 인용해 서정적인 무드를 연출했고, 아티스트는 이를 능숙하게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그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통해 차세대의 유망주에서 동시대의 독보적인 인물로 올라섰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선 그의 모습을 쉴 새 없이 패러디하며 인기를 전파했고, 가사의 여러 구절이 유행어처럼 회자됐다. 심지어 그가 잠시 미국에 갔던 2010년, 토크쇼 진행자 스티븐 콜베어(Stephen Colbert)마저 ‘Rainism’(2008)도, ‘It’s Raining’(2004)도 아닌 이 노래를 따라 했다. 남성 솔로 댄스 가수의 계보에서 이만한 인상을 남긴 곡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from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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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63위
제목
까탈레나 (Catallena)
아티스트
오렌지 캬라멜
심사평

많은 사람이 익히 알고 있듯이 오렌지캬라멜은 애프터스쿨의 유닛으로 출발했다. 본래 팀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출발했고, 당시 막내였던 세 사람이 결성하게 되었다. 밝혀진 바에 의하면 처음에는 도도하고 시크한 이미지를 지닌 본래의 그룹과 달리 귀엽고 발랄한 느낌의 유닛을 하게 되어 반발이 있었고 콘셉트에 적응하며 활동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졌고 적응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걸그룹 유닛으로는 최초로 정규 앨범도 발매하게 되었다. 오렌지캬라멜의 성공 이후 레인보우 픽시부터 우주소녀 쪼꼬미까지 키치한 컨셉의 걸그룹 유닛이 여럿 생겨났다. 이들은 자신들의 컨셉을 캔디 컬처라는 이름으로 정의했고, 유닛은 점점 상승세를 타며 아시아권은 물론 북미에서도 컬트적 인기를 얻었다. 그 덕에 오렌지캬라멜은 글로벌 유닛이 되었다.

싱글 ‘까탈레나(Catallena)’는 정규 1집 발매 이후 약 1년 5개월만에 선보이는 싱글이었다. 중독적인 후렴과 안무는 당시 많은 관심을 끌었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지에서 따라하기도 했다. 더욱 재미있었던 것은 무대 때마다 다른 의상을 준비했다는 점, 그리고 세 멤버가 모두 컨셉에 적응하여 발랄하고 유쾌하게 무대를 소화했다는 점이다. 파키스탄 펀자브 족 민요 ‘주띠메리(Jutti Meri)’를 차용하여 만든 디스코 곡은 레트로한 소리 구성에 까탈스러운 사람을 이야기하는 까탈레나라는 단어까지 더해져 더욱 흥미로워졌다. 가창력과 비주얼, 예능감까지 모두 갖추며 독특한 컨셉을 완성도 있게 표현해 B급 정서를 유지한 채 좋은 퀄리티를 보여줬고, 그 덕에 결코 허술하거나 우습지 않게 제대로 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몇 달 뒤 후속으로 발표한 ‘나처럼 해봐요’가 사실상 마지막 촬동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까탈레나’에서 보여줬던 (좋은 의미에서의) 뻔뻔함과 무대 위 플레이어로서 절정에 해당했던 기량이 어쩐지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 오렌지캬라멜과 비슷한 컨셉의 후발주자는 더 생길 수 있겠지만, 이들이 ‘까탈레나’를 했을 때만큼의 기량과 퍼포먼스는 다시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심지어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접해도 이들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fr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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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64위
제목
Roly-Poly
아티스트
티아라
심사평

티아라는 참 시류를 잘 타는 그룹이라고 느끼는데, ‘롤리폴리(Roly-Poly)’가 흥행할 수 있게 된 배경에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해 큰 반응을 얻은 영화 [써니]와 활동이 맞물리면서 그해 복고열풍을 일으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우연한 결과였다기보다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에게 잘 어울리는 트렌드를 전방위에서 참고하며 유행 가도의 중심을 차지한 회사의 전략과 각 콘셉트를 그들의 노력과 재능으로 잘 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음악 스타일과 신시사이저를 전면에 배치한 ‘롤리폴리’는 그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의 마음마저 요동치게 해 향수를 자극한다. 단순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안무는 지금으로 견주자면 틱톡 챌린지 같은 열풍을 일으켰는데, 당시 40여 개국의 팬들이 안무 영상을 올려준 데에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실은 영상을 제작했을 정도였다.

티아라와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작곡가 신사동 호랭이는 트로트에 근접하면서도 촌스럽지는 않은 적당한 함량의 뽕끼와 화려하고 명랑한 디스코, 심장 박동과 움직임을 같이 하는 묵직한 일렉트로닉 사운드,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하는 탑 라인을 버무린 이 주특기를 ‘롤리폴리’에서도 가감 없이 활용한다. 그는 티아라의 ‘보핍보핍’(Bo Peep Bo Peep), ‘러비더비’(Lovey-Dovey) 뿐만 아니라 이후 EXID의 ‘위아래’, 모모랜드의 ‘뿜뿜’까지 K-뽕끼(?)의 명맥을 이으며 케이팝 역사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됐다.

올해로 데뷔 12년 차를 넘긴 티아라. 오랫동안 활동을 쉰 시기도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그룹 중 여전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팀이 드물기에 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반갑다. 그들이 어떤 음악으로 케이팝의 한 획을 이어나갈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from 성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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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65위
제목
에너제틱 (Energetic)
아티스트
Wanna One (워너원)
심사평

누가 뭐래도 워너원은 2010년대 중반의 3세대 보이그룹 중 가장 널리 사랑받은 그룹이었다. 대중의 주목이 오디션 프로그램이 가져다준 화제성에 그치지 않고 활동 종료 이후까지도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단순한 '우승자 조합'이 아니라 마치 일원적인 주체에 의해 기획된 것처럼 그룹으로서의 완결성 또한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너제틱'은 그 완결성을 최대한으로 강조하고, 또 그 점이 잘 부각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에너제틱'의 프로듀서인 후이는 그 자신도 펜타곤의 멤버로서 다인원의 보이그룹이 어떻게 연출될 때 생동감을 가질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11명이나 되는 멤버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좋은 시너지를 만드는 방법을 '에너제틱'을 통해 효과적으로 설명한다. 도입부에서 잔잔하게 퍼져나가는 피아노 사운드부터, 간결하지만 시원하게 터지는 드럼 비트, 보컬을 유려하게 받치고 있는 신스 멜로디 리프까지, 잘 만들어진 EDM의 공식을 따르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정갈하게 조합된 모습이 청량한 이미지와도 좋은 합을 보인다. 반복되지 않고 변주되는 1절과 2절의 구성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곡에 집중하게 하는데, 베이스만 드롭됐던 첫 번째 프리코러스와 드럼, 신스까지 함께 깔린 두 번째 프리코러스, 그리고 빠른 래핑으로 변주된 세 번째 프리코러스까지의 진행 중에도 코러스의 보컬을 빼면 반복되는 구성이 하나도 없다.

오버핏의 셔츠와 데님 등으로 연출한 캐주얼 스타일링은 가벼운 업, 점프 동작 위주로 짜인 댄스 퍼포먼스를 만나 곡이 가진 청량감을 배가시킨다. 다인원 그룹임에도 동선 변화를 최소화한 대신 파트 싱어를 항상 센터에 배치하고 현란한 팔 동작 위주로 만든 퍼포먼스는 쉴 새 없이 바뀌는 비트와 반복되지 않는 곡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집중력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하며, 오히려 '에너제틱' 특유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이미 충분한 인지도와 팬덤을 얻고 시작하는 그룹의 데뷔곡답게 적당한 무게감과 밀도를 갖춘, '국민 프로듀서의 안목'에 대한 높은 설득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곡이다.

from 조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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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66위
제목
시간을 달려서 (Rough)
아티스트
여자친구 (GFRIEND)
심사평

수수한 단일 유니폼에 활력적 군무가 조합된, 일명 ‘파워 청순’ 타이틀의 여자친구는 친근함을 주제로 대중 앞에 호기롭게 등장했다. 비록 초창기에는 일본 아이돌의 비주얼 요소와 청순계 선배 그룹의 작법에서 각각 레퍼런스를 차용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큰 주목을 얻지 못했으나, 2015년 한 라디오 공개방송에서 펼친 무대로 운명을 바꾸게 된다. 악천후 속 미끄러운 무대 위, 여러 차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꿋꿋이 안무를 이어 나가는 멤버들의 모습이 SNS을 타고 퍼져 나갔고 이를 기점으로 ‘열심히 하는’ 우호적인 이미지를 확보한 것이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완벽을 위해 힘차게 일관한 태도는 전술한 캐릭터성을 공고화하며 도약의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직후 활동곡 ‘시간을 달려서’가 가져온 흥행은 예상 가능한 이변이었다. 이제 막 팬덤이 구축되기 시작한 상태에서의 그룹은 데뷔 이래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두며 폭발적인 상승 곡선을 그려냈다. 혹자는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상투적인 교훈으로 기현상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배후에는 곡의 우수한 완성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팝의 기초 공사 위에 쌓아 올린 웅장한 현악 세션과, 이에 강경한 록 사운드를 덧칠한 프로듀싱은 기존 포맷을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고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집중한다. 그리고 제목의 ‘Rough’ 표현만큼이나 빽빽하게 들어찬 변주는 박진감 넘치는 완급을 거듭 제시하며 그룹의 장점인 서정성과 역동성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철저한 포지셔닝이 두드러진 안무, 각자 파트를 면밀히 수행하는 멤버의 협응력에서는 서로 간의 믿음이 물씬 묻어난다. 시간이라는 주제를 의미심장하게 다룬 동화적 노랫말은 그룹의 성장 서사와도 맞물리며 일견 몰입을 높이는 요소로 자리한다. 실제 졸업 시즌을 겨냥하여 발매일을 정한 전략도 주요 요인 중 하나다. 뮤직비디오의 경우 지극히 현실적인 장소와 벚꽃이 휘날리는 아름다운 초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익숙함과 생경함을 번갈아 비추는데, 장면의 교차는 언제까지도 곁에 영원히 존재할 것 같지만 그 시간부로 더는 찾아오지 않을 ‘졸업’이라는 키워드가 지닌 오묘한 그리움을 덤덤하게 자극한다.

청순 타이틀을 계승한 그룹 가운데서도 유독 여자친구가 대두되는 이유는 성실한 자가 탐구로 복제품의 오인을 벗고 이면의 진정성을 인정받았으며 그 착실하게 쌓아 올린 매력도를 한 데 응축하여 결정적인 임팩트를 가져왔다는 점에 있다. ‘시간을 달려서’는 비록 ‘졸업’이라는 퍼즐 조각으로 ‘유리구슬’과 ‘오늘부터 우리는’부터 이어지는 학교 트릴로지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용도였지만, 대중의 뇌리에 본인들의 이름을 강렬하게 아로새기며 새로운 의미의 ‘입학’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결국 시간을 달려 이들이 빚어낸 것은 기약 없는 이별이 아닌, 언제 어디서도 기억할 수 있는 영속적인 젊음의 징표였다.

from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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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67위
제목
초대
아티스트
엄정화
심사평

나미, 김완선 등 20세기 한국 가요계에서 위용을 떨친 댄스 디바가 여럿 있지만, 그 가운데 현재의 K-POP과 가장 밀접하게 상호작용한 아티스트를 꼽으라면 단연 엄정화다. 단순 파괴력을 넘어 콘셉추얼함을 견지한 퍼포먼스 연출, 히트 작곡가부터 일렉트로닉 장르 뮤지션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규합해내는 프로듀서 기질 등 그의 실험 정신은 곧 현세대 K-POP의 덕목과 결부된다. 어찌 보면 K-POP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동시대적인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엄정화에게 전성기를 안겨준 곡은 주영훈의 “땐스 가요”들이었지만, 그의 커리어 전반에 가장 지배적인 영향을 떨치는 곡은 박진영의 ‘초대’일 것이다. 박진영이 오로지 엄정화의 연기력에 초점을 맞춰 작업했다는 ‘초대’는 엄정화를 위한 여백을 마련하는 데에 치중한다. 관능적인 리드 신스가 터놓은 길에 미니멀한 구성의 세션이 포장을 깔면 좁은 음폭의 멜로디로 사뿐사뿐 발을 내딛는 엄정화의 존재감이 한 눈 가득 들어온다. 여기에 댄스팀 프렌즈는 오묘한 감각을 극대화해냈다. 남성 댄서들이 이성애적인 텐션을 조성하는 대신 허리 치마를 두르고 엄정화와 동기화된 몸짓을 수행한 퍼포먼스는 단순한 성적 어필 그 너머를 시사했다.

8년 뒤, 9집 [Prestige] 활동에서 ‘초대’는 다시금 소환된다. 이태원 게이 클럽에서 쇼케이스를 열어 화제를 모은 엄정화는 첫 방송 컴백 무대였던 tvN 개국 축하연에서 타이틀곡 ‘Come 2 Me’에 앞서 ‘초대’를 선보였고, K-POP에서는 처음으로 드랙퀸을 무대에 올린 퍼포먼스에서도 ‘초대’를 첫 곡으로 선곡했다. “게이 아이콘”으로서 퀴어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이를 오버그라운드로 끌어들인 그의 행보에 ‘초대’가 간판격으로 자리했던 셈이다. 따라서 ‘초대’는 가수 엄정화의 전위적 에너지의 발판이자 K-POP 속 퀴어 미학 지류의 주요한 한 원천으로도 언급될 만하다. 이 지류는 걸리쉬 댄서들을 동원한 그의 10집 [The Cloud Dream of the Nine] 활동에서는 물론, 이효리, 소녀시대, AOA, 브라운아이드걸스, 청하 등 후속 K-POP 디바들에 의해서도 계승되었다. 살랑이던 부채질이 시대의 순풍을 일으킨 일련의 흐름을 지켜보며 한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얼마나 큰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실감한다.

from 스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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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68위
제목
Brand New
아티스트
신화
심사평

‘Brand New’는 신화가 데뷔 7년 차에 발표한 7집 타이틀곡이다. 이제는 데뷔 후 5년은 기본, 10년, 15년을 넘기는 아이돌 그룹도 생겨났지만, 초창기에는 팀이 5년만 가도 오래 간다고 했다. 신화는 이때부터 이미 장수 그룹이었다. 더구나 자신들이 태어난 소속사를 떠나 회사를 옮긴 아이돌 그룹이란 건 아예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다. 이들은 이례적으로 단 한 명의 멤버 이탈 없이 온전히 고향을 떠났고,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신화 이전까지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던 일들이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건 단연 고감도의 음악이었다.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 박근태와 조영수는 새로운 신화를 위해 팀의 여느 곡보다 대중적인 곡을 제공했다. 두 사람이 만든 매끄러운 멜로디 라인과 캐치한 후렴은 그룹의 분위기 쇄신에 더없이 잘 어울렸다. 다이내믹한 스트링 편곡이 곡에 탄력을 더했고, 역동적인 진행으로 생동감을 안겼다. 노래를 부르는 신화는 마치 이제 막 전성기에 들어선 팀처럼 신선하게 보였다. 그러면서도 멤버들의 노련한 소화력, 안정적인 밸런스와 하모니는 과연 베테랑다웠다. 파워풀했던 여성 댄서들과의 호흡도 잊을 수 없다. ‘Brand New’는 감히 신화의 최고작이자, 박근태의 역작이었다.

2004년 연말, 이들은 ‘Brand New’로 데뷔 이래 첫 대상을 거머쥐었다. 곡 제목 그대로 ‘완전히 새로운’ 신화가 되어 그저 장수 그룹이 아닌 현역 뮤지션으로서 존재감을 발휘한 것이다. 신화는 이 곡으로 롱런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한 팀 내 멤버들의 뜻이 같고 좋은 음악만 따라준다면 기존 소속사를 나와도 얼마든지 승부를 볼 수 있다는 모범 사례가 됐다. 후대의 보이 그룹 비스트가 소속사를 떠나 하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할 때도 귀감이 된 건 신화였다. ‘Brand New’는 신화의 일곱 번째 타이틀곡인 동시에, 첫 번째 타이틀곡이었다.

from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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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9위
제목
Butterfly
아티스트
이달의 소녀
심사평

비트가 순간적으로 모습을 감춘 코러스에서 "Fly like a butterfly"라는 노랫말이 그 어떤 소리보다도 가볍고 높게 솟아오를 때, 다시 돌아와 비산飛散하는 비트 속에서 한층 더 피치를 올린 "Fly like a butterfly"가 귀를 찌르듯이 비상飛上할 때, 나는 이 노래에 홀리듯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퓨처 베이스(Future bass)의 재료를 우아하게 수놓은 프로덕션, 짙은 색과 화사한 색의 보컬이 서로에게 스며들듯이 대비되는 구조, 하늘거리면서도 절도 있는 안무. 이달의 소녀가 완전체로 활동을 시작하고 두 번째로 내놓은 타이틀 트랙 ‘Butterfly’에는 그저 훌륭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잘 만들어진 곡’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소리들의 향연 위로 부드러운 고음이 뇌리에 남아 사라지지 않는 하나의 궤적을 남긴다. ‘Butterfly’의 중심을 관통하는 그 가느다란 고음은, 팝이라는 ‘안정’에 균열을 가져온다.

팝 음악에서 고음의 보컬은 보통 보컬리스트의 기교와 역량을 평가하는 잣대로 받아들여지며, 이는 한국 가요계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프린스(Prince), 비요크(Björk), 소피(SOPHIE) 등 ‘가창력’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자신의 높은 목소리를 파열과 해방, 짜릿함을 안기는 사운드적 질료로 대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끊어질 듯이 얇은 고음의 불안정성을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흔들림은 안정과 보수로 대변되는 팝의 가치관과 정면으로 대립하며 듣는 이들을 새로운 지평으로 데리고 간다.

‘Butterfly’의 고음 역시 마찬가지다. 손가락을 툭 대자마자 흐트러질 것처럼 여린 고음이 그 불안정함을 감수하고 날아오를 때, 나는 음악 이상의 것을 그 안에 투영한다. 데뷔 방식과 세계관, 신선한 사운드를 비롯해 틀을 깨는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 온 이달의 소녀의 활동을, 뮤직비디오 속 전 세계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자유에 대한 열망을, 오직 걸그룹만이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가능성을 ‘한계’로 제한짓는 어떤 선입견을 말소하려는 의지를.

설령 이 모든 것이 과한 해석일지라도, 단 하나만큼은 분명하다. ‘Butterfly’의 고음, 그리고 이달의 소녀가 선사하는 사운드와 퍼포먼스는 그 모든 해석을 짊어지고 저 끝까지, 더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는 힘있는 날개다. 비록 아주 작은 날개짓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찰나의 해방이 주는 짜릿함마저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from 정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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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0위
제목
DNA
아티스트
방탄소년단
심사평

아이돌팝의 운명론이라는 소재에 대해 고찰해본다. 각기 다른 출신으로 오로지 같은 꿈 아래 묶인 멤버들, 단순 팔로워 수준을 넘어 그룹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구축하는 팬덤. 유달리 강한 결속을 요하는 인연들로 채워진 아이돌팝에서 운명론을 빈번하게 꺼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인연을 운명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많은 부분을 생략할지라도, 그만큼의 낭만을 채워 넣기에. 운명론은 때로 상투적일지언정 분명 효과적인 소재로 자리한다.

운명론을 노래한 수많은 아이돌팝 가운데 ‘DNA'는 그를 가장 치밀하고 드라마틱하게 펼쳐 보인 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성운(星雲)을 비추던 화면이 줌-아웃되며 멤버 정국의 눈동자를 담아내는 뮤직비디오의 오프닝 시퀀스가 곡의 초월적인 스케일을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휘파람을 필두로 이어지는 인트로가 몇 안 되는 사운드 소스만으로 그에 걸맞은 공간감을 구축하면, 풍부한 사운드스케이프를 유영하는 보컬과 랩이 “운명을 찾아낸 둘”의 필연을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리고 마침내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라는 확언 뒤로 초신성이 폭발하듯 청명하게 터지는 킥과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형상화한 안무가 겹쳐지는 순간, 서로의 인연 아래 “혈관 속 DNA”의 생리와 “우주의 섭리”를 잇는 드라마는 비로소 완성된다. 비록 ’DNA‘의 맹목적인 확신은 차후 ‘Fake Love'의 나락 서사로 이어지지만, 맹목에 준하는 낭만은 그 자체로 강한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다.

‘DNA'는 방탄소년단이 쌓아온 역사 위에서 더욱 풍성한 의미를 가졌다. 의연하고도 처연한 언더독 내러티브를 끌어온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유독 현실 세계의 땀내가 짙게 묻어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런 그들이 후덥지근한 복사열을 뚫고 나와 초우주의 차원에서 가뿐한 몸놀림을 시작했을 때, 그 낙차의 짜릿함을 느끼는 것 역시 ‘DNA’의 주요한 시청 경험이었다. 아시아계 아티스트로서는 최초로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소셜 아티스트 상>을 거머쥔 뒤 내놓은 신보였기에 감흥이 더욱 컸다, 아이돌팝 속 운명론의 정점이자 방탄소년단의 운신 범위를 확장한 분기점으로 기록될 만하다.

from 스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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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71위
제목
나혼자 (Alone)
아티스트
씨스타
심사평

'청순'과 '섹시'로 단순하게 양분되던 여자 아이돌의 레퍼토리는 2세대에 들어오면서 장르의 다변화와 맞물려 여러 가지 방향성을 가진 콘셉트로 분화되었다. K-POP 걸그룹의 이미지가 지금처럼 입체적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2세대부터 시작된 다양한 실험에 기반하는데, 그중에서도 씨스타는 가장 뜨거운 여성의 이미지를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 어필했다. 하나는 씨스타를 '썸머 퀸'으로 불리게 해준 'Loving U', 'Touch My Body', 'I Swear', 'SHAKE IT' 등이고, 또 하나가 '나혼자', 'Give It To Me', 'I Like That'으로 이어지는 농염하고 고혹적인 노래들이다.

'나혼자'는 씨스타의 커리어 정점에 놓여있는 곡으로, 틴에이저를 타깃으로 최대한 어리고 발랄한 이미지를 추구하는 아이돌 팝 시장의 원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성인 여성'의 이미지를 구현했다. '나혼자'의 흥행 덕분에 이후 '서른이 넘기 전에 결혼은 할런지'로 시작하는 'Give It To Me'까지 연타 히트하며 씨스타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구축하게 된다. '나혼자'는 용감한형제의 전체 디스코그래피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곡이다. 원래 용감한형제는 정신이 산만해질 정도로 빠른 비트와 복잡다단한 레이어로 무장한 EDM에 전문성을 가진 프로듀서였고, '나혼자' 이전 씨스타의 'Push Push', '니까짓게' 등이 전형적인 용감한형제식 히트곡 문법을 따르기도 했다. 그런 프로듀서에게서 상당히 절제된 사운드 진행이 돋보이는 '나혼자'가 나왔다는 점은 신선하면서도, 동시에 특유의 가요적인 감성의 멜로디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레퍼토리의 저변이 확장된 곡이기도 하다. 여기에 효린, 소유의 보컬 퍼포먼스가 눈에 띄게 활약한 곡이기도 한데, 그루브감 넘치는 효린의 보컬은 힙합을 기반으로 해온 용감한형제의 음악과 최상의 합을 보여주고, 동시에 소유의 보컬이 이 곡이 가진 통속적인 가요색을 극대화하면서 두 보컬의 시너지가 곡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댄스 퍼포먼스 또한 쉼 없이 뛰거나 달리던 씨스타의 쾌활했던 이미지와 달리 한 자리에 선 채 골반과 다리만을 움직이는 안무로 구성되었는데, 절제된 사운드에 어울리는 퍼포먼스를 구현해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었다. 씨스타가 섹시 콘셉트를 적극적으로 견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대중에게도 호감도가 높았던 이유 중 한 가지가 바로 이 절제미에 있었다고 본다. 호감도의 나머지 한 축이었던 '건강미'는 '썸머 퀸'의 이미지로 이어졌는데, 절제된 고혹적인, 때로는 중후하기까지 했던 섹시 콘셉트와 여름의 건강미는 동시에 여성의 신체를 주체적으로 긍정하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씨스타의 성적 어필은 여성 대중에게까지도 불쾌감보다 호감으로 다가설 수 있었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이 씨스타를 그리워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from 조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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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72위
제목
It's Raining
아티스트
심사평

'It's Raining'의 뮤직비디오 오프닝은 퍽 거창하다. 모터바이크와 헬리콥터가 비가 타고 있는 트레일러 트럭을 둘러싸고, 터지는 플래시에 둘러싸여 무대에 오른 비는 “Rain is back!"을 외치는 DJ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팝 슈퍼스타의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마이클 잭슨. JYP를 위시한 ‘80s 키드’들은 저마다 한국의 마이클 잭슨을 꿈꾸며 이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21세기가 개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JYP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비를 통해 그 미션의 달성에 조금은 가까워졌다.

이 노래는 바로 그 포부와 자신감, 혹은 조금은 과잉된 자의식이 뭍어있는 곡이다. 허나 그 시절 비는 그 정도의 한류 스타였고, 그 자신감에도 근거는 충분했다. 비는 분명 그 이전 세대가 목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남자 솔로 가수였다. 전통적인 ‘보컬리스트’가 아닌 댄서/퍼포머 타입 아티스트의 계보를 잇는 그는 기존의 솔로 댄스 가수들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었던 탈-아시아적인 피지컬과 성적 어필을 함께 갖추고 있었다. 앳된 미소와 근육질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폭발적인 움직임과 카리스마는 비가 아시아권을 넘어 서구권의 대중들 사이에서도 일정한 소구력을 가질 수 있게 만든 핵심적 요인이었으며, 이는 소위 ‘짐승돌’이라는 한국 아이돌 그룹의 새로운 유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It's Raining'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와 북미까지를 넘보기 시작한 비의 포부와 자신감이 드러난 대표작으로, 프로듀서 박진영이 비를 통해 만들고자 했던 미학의 최정점에 위치해 있다. 큰 굴곡이 없는 심플한 곡구성과 최면적으로 반복되는 그루브는 가요적인 느낌을 일정부분 배제하면서도 대중적 호소력을 확보할 줄 아는 프로듀서 박진영의 전매특허라 부를만하며, 폭발적이지 않은 보컬 능력을 특유의 추임새와 텐션으로 메우며 곡이 가진 매력을 십분 끌어내는 보컬의 존재감도 탁월하다. 특히 곡 후반을 장식하는 여덟마디 그루브와 댄스 브레이크는 동시대 가요보다는 미국 팝의 정서와 수준에 근접하고 있었다. K-POP이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는 지금이지만, 아직 'It's Raining'에서의 비에 필적할 수 있는 압도적인 솔로 남성 아티스트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from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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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3위
제목
아무노래
아티스트
지코 (ZICO)
심사평

2019년, 소셜 미디어 활용에 능숙했던 아마추어 래퍼 릴 나스 엑스는 자신의 공식 데뷔곡 ‘올드 타운 로드(Old Town Road)’를 홍보하기 위해 숏 폼 동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에 노래에 맞춰 카우보이 복장으로 춤을 추는 ‘이햐 챌린지(Yeehaw Challenge)’ 붐을 일으켰다. 풋내기 신인이던 그는 이 챌린지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대박을 터트렸다. 그리고 19주 동안 정상의 자리를 지키며 빌보드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세워버렸다.

우리에게 ‘챌린지’의 위력을 실감케 한 곡은 지코의 ‘아무노래’다. 그룹 블락비 출신으로 음원 차트에서 꾸준한 성과를 얻어온 래퍼 지코는 영민한 노래로 2020년대의 시작을 선언했다. 산뜻한 보사노바 리듬의 피아노 연주 위 간결한 비트와 기타 연주를 얹고, "아무 생각하기 싫어 / 아무개로 살래 잠시"라는 소소한 일상 속 오묘한 일탈의 메시지를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멜로디와 결합했다. 결정적으로 마마무 화사, 청하와 함께 노래에 맞춰 간단한 춤을 춘 영상을 업로드했다. 아이돌 그룹 멤버, 연예인들이 차례차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고, 곧 모두가 앞다투어 ‘아무노래 챌린지’에 동참했다. 일기예보 도중 기상캐스터가 ‘아무노래’에 맞춰 챌린지를 진행할 정도였다.

‘아무노래’가 챌린지를 활용한 최초의 한국 노래는 아니다. 2018년 세계를 휩쓴 ‘베이비샤크 챌린지(#BabySharkChallenge)’에 유수의 K-POP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참여한 바 있고,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챌린지를 진행했으며 박진영은 틱톡과 함께 ‘Fever’ 댄스 챌린지를 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왕관은 지코에게 돌아갔다. 복잡한 가이드라인과 춤 실력, 시공간의 제약 필요 없이 ‘아무노래’는 어디서나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고 즉각적으로 소셜 미디어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좋은 곡으로 일군 ‘챌린지의 대중화’였다.

트렌드 세터에게는 시국도 호재로 작용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전개되며 "클럽은 구미가 잘 안 당겨 / 우리 집 거실로 빨랑 모여 / 외부인은 요령껏 차단시켜"라는 홈파티 가사가 더 큰 공감을 불렀다. 코로나19로 등교가 어려워진 청소년들이 늘어난 여가 시간에 틱톡 및 새로운 소셜 미디어 플랫폼으로 유입되며 짧은 동영상의 인기를 부채질했다. ‘아무노래’로 우리는 알게 되었다. '요새 이런 게 유행'이라는 사실을.

from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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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74위
제목
작은 것들을 위한 시 (Boy With Luv) (Feat. Halsey)
아티스트
방탄소년단
심사평

“아미! 여러분의 모든 말들은 저희를 성장시키고 나아가게 해요.”(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RM의 수상 소감 중)
세계적인 슈퍼스타로 우뚝 선 방탄소년단이 무수한 시상식을 비롯해 모든 의미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부르는 이름이 있다. 그들이 기쁠 때나 힘들 때나 늘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팬덤 ‘아미’의 이름이다.

한때의 신드롬을 넘어 세계 음악 시장 질서를 새롭게 짜고 있는 방탄소년단의 저력은 그들의 헌신적인 팬덤 아미로부터 나온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개 하루 만에 1억뷰를 넘나드는 뮤직비디오 조회수, 경이적인 음반 판매량, 끝 모르는 빌보드 차트 1위 행진 등 모든 기록들은 글로벌 아미의 화력에서 비롯된다.

2019년 봄에 발표된 ‘작은 것들을 위한 시’(Boy With Love)는 방탄소년단이 그런 아미에게 전하는 세레나데다. 이들은 사랑에 빠진 소년의 목소리를 빌려 전 세계 수많은 아미들의 ‘사소한 작은 습관들까지’ 관심을 기울인다.

이 곡은 단순한 팬송에 머물지 않기에 더 특별하다. RM은 직접 쓴 가사로 "툭 까놓고 말할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기도 했어"라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진솔한 고백만큼 팬들과의 거리는 좁아진다. 이들은 그러면서 ‘세계의 평화’나 ‘거대한 질서’에 대해 논하는 대신 아미를 위한 음악을 하겠다고 약속한다. 과거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슈퍼스타가 됐지만 팬들과 눈을 맞추며 초심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방탄소년단은 한발 더 나아가 아미가 온전히 주인공이 되는 무대를 꾸미기도 했다. 팬들이 직접 만드는 디지털 기억 저장소 ‘아미피디아’ 행사를 통해서다. 그해 봄 서울시청광장과 성산동 서울문화비축기지에는 각 1만명이 몰렸다. 전 세계 수십만 팬들은 온라인으로 축제를 함께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방탄소년단 음악에서 가장 큰 전환점을 예고한 곡이기도 하다. 앞선 ‘DNA’(2017), ‘FAKE LOVE’(2018) 등은 EDM·힙합·랩을 결합한 음악과 극대화한 퍼포먼스라는 K-POP의 강점을 살리면서 그 안에서 방탄소년단의 차별화를 모색한 결과였다. 반면 팝적인 요소를 살려 한창 가벼워진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세계 최고의 인기 그룹이 된 시점에서 전 세계 대중을 겨냥한 그들의 전략 수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Dynamite’(2020)와 ‘Butter’(2021)로 이어진 글로벌 메가히트송의 출현은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 시작한 변화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from 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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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75위
제목
아티스트
god
심사평

지오디 4집 [Chapter 4] 타이틀 ‘길’은 지오디가 그 때까지 해온 음악의 집대성과 같았다. 감성적인 미디움 템포라는 큰 틀은 역대 타이틀곡이었던 1집 ‘어머님께’, 2집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그리고 3집 ‘거짓말’을 그대로 따라 기존의 지오디에 익숙한 리스너들을 배려했다. 동시에 노랫말에는 3집의 후속곡 ‘촛불 하나’처럼 많은 이를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나아갈 길을 바라보며 인생을 자문하는 사색적인 가사가 보편의 공감을 얻었다. 단출한 비트가 가사에 집중하기 좋게끔 짜여있다. 레이드백 리듬이 서정적으로 흘러가다가 여덟 마디 끝에 별안간 팀파니가 등장해 긴장감을 조여주는 역할을 한다. 깊은 생각 중에 환기가 되는 듯한 느낌도 들고, 묵직한 주제 앞에 비장해지는 감상도 든다. 일견 슴슴하게 들리지만 세심하게 다듬은 곡임을 알 수 있다.

지오디가 ‘길’을 내놓은 시점은 이미 이들이 2집과 3집의 연이은 성공을 거둔 후였다. 또한 이 시기는 리더 박준형이 열애를 이유로 소속사인 싸이더스로부터 그룹 퇴출을 통보 받고, 또 팬들의 구명 운동을 통해 극적으로 복귀한 후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아이돌 멤버를 상품성으로 판단하는 연예 기획사와 한국에 마음 둘 곳 없는 외국 출신 멤버의 정서적 어려움, 그리고 온오프라인 결집을 통해 마침내 회사의 결정을 철회 시키기까지 한 강력한 팬덤의 등장 등 현대 아이돌 산업에 여러 시사점을 남겼다. 이처럼 ‘길’은 ‘국민 그룹’의 단맛과 쓴맛 서사를 대중과 모두 공유한 그 위에 적어내려간 곡이었다. 그냥 들어도 좋지만, 당시를 생각하며 들어보면 조금 더 복잡한 곡의 공명을 음미할 수 있다.

지금이야 싱잉랩이 보편적인 스타일이 되었다지만 ‘길’이 발매된 2001년엔 아니었다. 버스를 일명 ‘멜로디랩’으로 채운 이 곡이 발매 되었을 때 랩 음절에 음높이를 부여한 거의 모든 노래들이 소환 되어 표절이다 아니다 말이 많았다. 지금은 싱잉랩이 없는 힙합 차트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임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from 랜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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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76위
제목
뱅(Bang) !
아티스트
애프터스쿨
심사평

K-POP 역사에서 이 곡이 갖는 기념비적 가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논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여성 그룹의 섹시함을 제시하는 법에 관한 탐구다. 두말할 것 없이 매력적인 멤버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고, 노출과 절도를 조합한 의상과 안무,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감탄사 등은 당대 걸 그룹 섹시 콘셉트를 벼린 끝에 임계점을 돌파한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 곡과 애프터스쿨은 섹시함이라는 양날의 검에게 효과적인 칼집을 마련했다. 마칭밴드에게는 흔한 요소들을 조금씩 변용했을 뿐이므로, 이를 과하게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는 퍼포머들 자신에게도, 섹시함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또는 다른 것을 보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명제였다. (눌러쓴 모자 밑으로 더 날카로워 보이는 눈빛 등을 포함해) 섹시한 매력은 한껏 끌어올리되, 이에 곧잘 결부되는 음험하거나 비루한 시선, 폄훼의 말은 상당 부분 걷어낼 수 있었다.

이를 단지 성적 매력을 전시하는 전략 모색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두 번째 측면은, 섹시함에 국한되지 않는 법에 관한 탐구다. 후대의 시선에서는 “예쁘기만 한 너”, “가식적인 말들” 등 분명한 한계를 갖는 당시의 클리셰가 포함돼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Bang!’은 마칭밴드를 단순한 기믹으로 채택하고 끝내지 않았다. 저돌적인 비트와 날카롭고 공격적인 챈트, 타이트한 구조를 타고 몰아붙이는 강렬한 기세, 그리고 당시 어떤 아티스트보다도 치밀하고 일사불란한 퍼포먼스는 애프터스쿨의 그 어떤 매력보다도 박력을 최전선에 제시했다. 또한 그것은 섹시함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고도로 훈련되고 선발된 정예의 멤버들이 전력을 다한 군무와 가창으로 보여줄 수 있는, K-POP 퍼포먼스라는 이름의 압도적 광경이었다. 이 곡에서 애프터스쿨은 퍼포머로서 관람 되면서 또한 군림했다.

섹시함을 요구하면서도 동시에 천시하는 이중잣대에 익숙한 사회에서 K-POP 여성 퍼포머의 외양적 매력을 활용하는 전략은 꾸준히 변천해 왔다. 이 곡은 그 길 위에서 한 정점을 이루고, 그와 동시에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이 마칭밴드는 섹시함에 매몰되기보다 차라리 그 위로 당당히 행진했다. ‘기념비’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이유다.

from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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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77위
제목
사랑을 했다 (LOVE SCENARIO)
아티스트
iKON
심사평

흔히들 보이그룹 노래는 걸그룹 노래보다 대중성에서 밀린다고 말한다. 이는 체감으로나 여러 지표로 보나 최근 십수년 내 K-POP 흐름에서 입증돼온 사실이다. 강력한 팬덤의 힘으로 1위 트로피를 따낸 무수한 보이그룹 노래들이 대중의 기억에는 희미하게조차 남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는 이런 공식을 깬 드문 사례다. 한국 음악 시장에서 아이돌 음악과 대중 취향의 거리가 점점 벌어진 최근 3~4년 사이에, 특히 방탄소년단 정도를 제외하면 대중이 보이그룹 음악부터 외면하는 경향이 커지는 와중에서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2018년 초에 발표된 ‘사랑을 했다’는 음악 자체의 힘으로 듣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며 그해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노래에 올랐다.(2018년 <멜론 연간차트> 1위) 물론 YG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신곡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감이 초반 흥행에 얼마간의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연말까지 그 인기를 지속하며 여러 세대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은 것은 온전히 좋은 노래가 일군 성과다.

흥행 비결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멜로디에 숨어 있다. "사랑을 했다 우리가 만나/ 지우지 못할 추억이 됐다"라는 따라부르기 쉬운 후렴구가 도입부부터 곡이 끝날 때까지 노래 전체를 탄탄한 기둥처럼 떠받치고 있다. 후렴구의 변주는 곡의 나머지 부분을 채우며 중독성을 강화한다.

‘사랑을 했다’는 한국에서 전국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에게 교가보다 애창되며 신드롬을 일으키기도 했다. 비슷한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면서 마치 돌림노래 같은 인상을 만들어내는 점은 어린아이들의 ‘떼창곡’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사랑을 했다’의 성공은 비단 국내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현재 5억뷰를 넘어선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전 세계 K-POP 팬들로부터 두루 지지를 얻었음을 증명한다.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 한 세대 앞서 K-POP 선봉장 빅뱅을 넘어선 것으로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보이그룹의 최고 기록이기도 하다.

다만 이 같은 성공은 ‘사랑을 했다’를 비롯해 아이콘의 많은 곡을 쓴 리더 비아이가 약물 의혹으로 팀을 탈퇴하면서 동력을 잃게 됐다. 또 일각에서 제기된 표절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from 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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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78위
제목
REALLY REALLY
아티스트
WINNER
심사평

‘Really Really’라고 쓰고 ‘릴리릴리’라고 읽는다. 라디오에서도 예능에서도 끊임없이 흘러나온 노래 ‘릴리릴리’ 2017년으로 돌아간다면, ‘릴리리리’가 나올때마다 "널 좋아해!"라고 흥얼거렸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거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트로피컬 하우스’를 K-POP에 접목시키면서, 트로피컬 하면 위너라는 공식을 만든 곡이다. 남자아이돌이 이렇게 대중픽을 받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음원성적 역시 최고순위에서 롱런했다. 더 대단한 건 캡틴 강승윤이 메인작곡가로 참여해 4시간 만에 곡을 뽑았고, 송민호, 이승훈 모두 ‘릴리릴리’의 작사와 작곡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 타이틀로 선정되고, 대중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어버리는 멋짐이 위너에게서 드러나는 대표곡이다. 본인들의 음악을 스스로 만들고 표현하는 4명의 멤버들, 그러다 보니 ‘릴리릴리’를 통해 자유분방하면서도 모범적인 위너만의 모습을 보여줬다. 대중들에게 ‘이런 스타일의 라이프가 멋진 거다. 아이돌도 하고 싶은 음악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켄드릭 라마의 ‘HUMBLE.’을 작업한 ‘데이브 마이어스’가 총감독을 맡은 뮤직비디오에서도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흑백화면 속에서 블랙슈트를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은 과격한 칼군무가 아니라 여성 댄서들과 함께 어우러진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는데, 기존 K-POP과는 조금 다른 위너만의 색깔을 잘 표현하고 있다. 네 명의 멤버들이 가수, 프로듀서, 연기자, 예능인, 화가, 사진작가, 라디오디제이 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이런 라이프스타일이 위너의 음악에서 묻어난다. 그러다보니 라디오를 연출하면서 위너 멤버들을 만날 때면 항상 그 멋짐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릴리릴리’는 4월에 나왔지만,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노래다. "널 좋아해"를 외쳐보자.

멤버 전원이 예술가인 아이돌. 아이돌과 예술가의 영역을 넘나들면서 K-POP의 멋짐을 담당하는 아이돌. 위너가 ‘WINNER’다. 강승윤, 이승훈, 송민호, 김진우 이 네 명의 멤버들이 각자의 다른 꿈을 이루면서 위너로 영원하길 바란다.

from 손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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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9위
제목
I (Feat. 버벌진트)
아티스트
태연 (TAEYEON)
심사평

그룹의 보컬 멤버로 일찌감치 조망되고 인정받았던 태연의 정식 솔로 데뷔에는 의외로 8년이 걸렸다. 걸 그룹 출신 솔로로서 그가 선택한 것은, 가창력을 인정받기 위한 정통 발라드 노선도, 매력을 앞세우려는 소위 ‘소녀에서 숙녀로’, ‘변신’ 같은 클리셰도 아니었다. 솔로 태연의 첫 걸음은 꿈과 의지를 노래했다. 웅장한 긴장을 일으키는 기타 리프, 힘을 끌어모아 뻗는 바람과도 같은 테마의 멜로디, 성급히 앞서가는 듯한 리듬은 신비한 풍광을 누비는 모험자를 연상시켰다. 침침하고 불안한 공간에서 출발해, 레전드 래퍼의 피처링이 다소 건성인 듯 들려 가수가 더 빛나는 대목을 지나, 찬란하게 고음으로 활강하며 배후에 합창을 맞이하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태연이 말하는 ‘나’는 그런 존재였다. ‘I’라는 제목은 차라리 셀프타이틀보다도 더 의미심장하고 자신만만했다.

‘I’는 아이돌이 매력적인 여성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고, 누구보다 커다란 꿈과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말한다. 고집스럽고 따스한 목소리로 누구나 이입할 만한 꿈과 좌절을 노래하는 한편, 자아도취적일 정도로 화려한 언어와 전투적인 비트, 단단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노래 속 인물을 거의 신화적 세계로 끌어올린다. 태연의 ‘나’는 평범한 인간이자 동시에 아주 특별한 존재다. 동경의 대상과 공감의 메시지의 공존. 누구보다 단단한 팬덤의 지지를 받고 있으나 동시에 누구보다도 폭넓게 사랑받는 솔로 아티스트인 태연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후로도 수많은 아이돌이 솔로 음반의 타이틀에 ‘나’를 내걸었지만, 태연의 ‘I’와 같은 성취를 이룬 경우는 드물다. 이는 이 곡이 비단 ‘아이돌 솔로 성공사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주류 미디어에서 아이돌이 ‘꿈을 꾸는 소녀들’이라는 이미지와 결부시키기도 전, 대중에게 아이돌은 오로지 매력적인 대상이던 시기, 그러나 산업은 이미 성별에 국한되지 않은 ‘지지자’로서의 팬덤으로 전환되어 있을 때였다. 태연은 아이돌로 쌓아 올린 지지를 토대로,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말, 이 산업에서 지금 나와야 할 목소리를 관철시켰다. ‘I’는 변화한 아이돌 산업에 대한 증언이자, 앞으로의 아이돌은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아이돌들이 인간이자 직업인으로 인식될 것이고, 그에 따라 보다 입체적인 얼굴로 다양한 영토를 탐험하리라고 말이다. 이를테면 데뷔 10주년을 넘기는 걸 그룹도, 매력적인 대상을 넘어서 자신만의 풍성한 이야기로 세상을 매료시키는 아이돌들도, 앞으로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from 미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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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0위
제목
아주 NICE
아티스트
세븐틴 (SEVENTEEN)
심사평

열세 명이나 되는 멤버들과 세 개의 유닛으로 꾸려진 하나의 팀이 ‘13+3+1’이 아니라 ‘세븐틴’이라는 전체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은 잘못하면 제약이 될 수도 있을 거대한 인원수를 역동적인 무대 구성으로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세븐틴의 두드러지는 강점이고, 개성을 위한 주된 도구이기도 하다. 보컬과 랩, 퍼포먼스로 나뉘는 소규모 팀들에 더해 계범주와 함께 이뤄지는 우지의 자체적인 프로듀싱까지, 전문화된 다채로운 실력들 간의 조합으로 탄생한 완성도 높은 곡들은 언제나 세븐틴의 자랑거리였다.

그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던 정규 1집까지의 활동 중에서도 ‘아주 NICE’를 호명해보는 것은 그룹의 강점이 ‘사랑에 빠진 소년’이라는 이야기와 이를 둘러싼 청량감 가득한 콘셉트, 그리고 이를 밀도 높게 구현한 진행 때문이다. 데뷔곡 ‘아낀다’부터 타이틀곡마다 조금씩 진행되어가던 사랑의 여정은 이제 "번쩍 번쩍 눈이 떠지"는 데이트 날까지 왔다. 이에 따라 트랙도 마치 화려한 데이트 코스처럼 보컬과 랩 구간을 교대로 오가고, 매 벌스마다 새로운 탑 라인을 집어넣는다. 이것이 너무 난삽해지기보다는 짧은 구간들이 즐겁고 재빠르게 연결될 수 있었던 건 지속적으로 곡을 받쳐주는 펑키한 기타와 두툼한 베이스 리프 덕이다. 이렇게 세븐틴만의 청량한 그루브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더해 후렴구에서는 폭죽 같은 브라스가 그러한 역동성을 새롭게 이어간다. 그렇게 트랙 내 모든 특징적인 사운드가 당찬 후일담처럼 자연스레 모여들며 끝나는 구간까지, ‘아주 NICE’는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으면서도 세븐틴의 맑고 시원한 분위기를 아주 신나게 제시했다.

이런 ‘아주 NICE’만의 잘 벼려진 변화무쌍함은 서스펜더를 주요 안무 도구로 삼아 트랙의 급변하는 진행과 연동시킨 퍼포먼스에서도 빛난다. 힘 있게 움직이는 동작을 칼같이 맞춘 군무와 멤버별로 자신만의 ‘소년’을 연기하는 강조점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나눠지고 합쳐지는 동선의 흐름은 다인원 안무의 가능성을 명민하게 발휘한다. 세븐틴의 이러한 무대 구성이 종종 뮤지컬로 비유되는 것도 개개인마다의 다채로운 연기와 화려하고 정확한 아이돌 군무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덕분일 것이다. 이렇게 ‘아주 NICE’는 이후 활동에서 더욱 정교하게 성장한 무대를 보여줄 세븐틴의 본격적인 기반이자, 그룹 초창기만의 해맑게 힘찬 에너지를 ‘간질간질’하고 두근두근’하게 뿜어낸 곡이 되었다.

from 나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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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81위
제목
T.O.P. (Twinkling Of Paradise)
아티스트
신화
심사평

“파라다이스를 찾아 떠나는 여섯 명의 백조들의 무대입니다.” 1999년 7월, MBC 음악순위 프로그램이었던 <음악캠프>에서는 보이그룹 신화를 위와 같이 소개했다. 당시 이들이 불렀던 곡인 ‘T.O.P.’는 차이코프스키의 발레곡 ‘백조의 호수’를 샘플링한 트랙이었다. 도입부부터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유명한 멜로디 라인이 삽입되었고, 이로 인해 여섯 명의 멤버들은 ‘백조’라고 불리며 동화 속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왕자님 같은 자태를 뽐낼 수 있었다.

보이그룹에게 ‘백조’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실제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우아한 자태로 먼저 시선을 끄는 사람들은 주인공인 오데뜨를 포함한 발레리나들이었고, 발레리노들은 그 뒤를 따를 뿐이었다. 그러나 ‘T.O.P’라는 곡을 통해 신화는 이 익숙한 구도를 단번에 뒤집었고, 흥미롭게도 남성 댄서들 또한 누구보다 우아하며 여린 속내를 지닌 백조가 될 수 있다는 서사적 접근을 대중에 내놓았다. 특히 이들의 안무는 특정한 순간에 힘을 주었다가 부드럽게 풀어지는 과정을 반복하며, K-POP 신에서 처음 만나는 백조 왕자의 서사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T.O.P.’라는 곡은 ‘Twinkle Of Paradise’의 약자다. 서정을 품은 긴 이야기를 대중 앞에 4분 안쪽의 짧은 트랙으로 압축하면서 SM엔터테인먼트는 제목뿐만 아니라 가사에도 ‘M.I.L’, ‘D.O.P’, ‘D.O.G’와 같은 영어 약자들을 넣었다. 신세대의 정서를 고려하면서 이 곡에 독특한 정체성을 불어넣겠다는 시도였다. 실제로 이 곡이 나오고 난 뒤에 약자의 뜻을 찾아보면서 가사의 의미를 해석하는 팬들이 생겨났다. 문법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것은 클래식을 아이돌 그룹의 곡에 차용한 신화라는 팀이 제시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이런 여러 가지 시도를 담은 ‘T.O.P’는 2010년대 이후로 만들어진 K-POP이 지닌 다양한 특장점을 품은 주요한 원형 중 하나로 남았다.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자유로이 포용할 수 있고, 기존의 관점을 뒤틀어 커다란 흥미를 유발할 수도 있으며, 앨범이나 곡에 숨겨진 서사를 해석하는 재미를 줄 수도 있다는. 즉, ‘T.O.P.’는 요즘 K-POP의 인기 요인이 모두 담긴 트랙이었던 것이다.

from 박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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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2위
제목
밤편지
아티스트
아이유
심사평

K-POP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으레 따라붙는 이야기들이 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화려한 사운드라던가, 한치 오차 없는 고난이도의 군무라던가. 이런 시선에서 본다면, 아이유라는 아티스트는 약간 이질적이다. 그의 노래엔 앞서 이야기한 요소들을 찾기 힘들며, 전체적으로 싱어송라이터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이다. 그럼에도 그가 대표적인 K-POP 아티스트로 거론되는 것은, 독자적인 음악세계가 발하는 이색적인 결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가사. 처음에는 개인의 것이지만 결국에는 모두의 것으로 퍼져 나가는 그만의 감수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밤편지’는 위에서 언급한 그의 장점이 잘 살아있는 노래다. 불면증에 잠 못 이루는 경험을 빌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숙면을 빌어주는’ 유려한 언어들. 기교 없이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실어낸 진실된 가창. 순간의 폭발력을 지향하는 타 가수들과 달리 잔잔함 가운데 영원의 지속성을 부여하고, 삶에 정착하는 ‘음악’의 소중함을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새겨낸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이 노래가 세레나데인가 하면, 누군가에게는 자장가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각자에게 있어 자신만의 싹을 틔우는 씨앗의 역할을 해 온 노래임은 분명하다.

세월과 거리를 둔 덕분에 3년 연속 멜론 <연간차트> 진입, 2010년대 <연대차트>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그 업적은 꾸준히 축적되어 왔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많은 이들의 삶을 버티게 해준 만큼의 보답이 차곡차곡 쌓여 일궈낸 성과일지도 모르겠다. 언제 들어도 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노래라는 건 의외로 흔치 않다. 그 역할을 충실히 지켜온 생명력 넘치는 K-POP 대표 스테디 셀러.

from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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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3위
제목
음오아예 (Um Oh Ah Yeh)
아티스트
마마무 (Mamamoo)
심사평

히트곡을 상당히 많이 지니고 있는 마마무는 데뷔 1년차에 ‘음오아예’를 발표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이 곡을 발표하기 이전에는 일렉트로 스윙 스타일의 곡을 고수했다면, 이 곡 이후로는 스펙트럼을 넓히며 마마무만의 색을 다듬어갔다. 다양한 분위기를 소화할 수 있게끔 문을 잘 열어준 곡이자 ‘실력파’라는 오묘한 이름 붙이기를 떼고 개성 있고 멋진 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게 발판이 되어준 곡이기도 하다. 실제로 곡의 공식 소개에도 ‘어려졌다’는 표현이 있을 만큼, ‘음오아예’에서는 좀 더 발랄하고 경쾌한 스타일의 곡을 펼친다. 곡은 2015년 <가온 연간 차트> 27위, <멜론 연간 차트> 30위를 기록하였고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7위까지 기록했다.

동시대 등장했던 걸그룹과는 시작점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 것이 나름의 승부수였고 성공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데뷔 초부터 작사, 작곡 능력과 가창력을 자신 있게 내세웠고, 역량이 요구되는 곡을 능숙하게 소화해내며 기대와 찬사를 받았다. 여기에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걸그룹에게 사회가 요구했던, 혹은 기대하는 이미지와 다르게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선보이며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멤버 간의 호흡은 물론, 음색의 균형이나 역할 분담도 잘 이루어졌으며 그 덕에 좋은 평가를 꾸준히 받아왔다.

곡의 뮤직비디오에서는 멤버들이 남성으로 분장하여 연기를 펼치기도 하며, 그렇게 분장한 멤버와 다른 멤버가 눈이 맞는 등 흥미로운 전개와 비주얼을 담았다. 그러면서도 마마무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섹시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곡 역시 공을 들였다고 공공연히 드러내 온 만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면서도 매끄럽게 흐른다. 라이브에서는 중간 나레이션 부분을 공연 때마다 다르게 애드립으로 풀어내며 이들의 여유와 예능감, 실력을 모두 입증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1년차 걸그룹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다른 1년차 그룹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이후 마마무는 팀 활동도, 솔로 활동도 멋지게 이어 나가며, 오히려 더 성장해가며 커리어 초반에 보여줬던 것들이 잠깐의 것이 아님을 증명했다.

fr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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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4위
제목
Ah-Choo
아티스트
러블리즈
심사평

러블리즈의 음악은 당의를 입은 하드코어 전자음악이다. 사탕처럼 달콤한 멜로디와 자기 세계 속에 자리한 소녀적 가사, 그리고 잘 다린 교복을 갖춰입고 방긋 웃는 멤버들을 앞세웠지만, 그들이 대중 사이로 침투 시키려 하는 사운드는 그전까지는 스모키 화장을 한 심각한 표정의 댄스가수들이 주로 사용하던 전자음이었다. ‘Ah-Choo’는 데뷔곡 ‘Candy Jelly Love’부터 이들 음악에서 풍기던 미묘한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 곡이다. ‘Ah-Choo’에 전면으로 드러난 수퍼쏘(Supersaw) 신스는 본래 전자음악 장르 중에도 매니아적인 트랜스(Trance) 장르에 주로 쓰이던 악기다. 이 신경을 긁는 거칠고 인공적인 사운드가 퓨처베이스의 유행을 거치며 대중에게 꽤나 익숙해졌을 즈음, 러블리즈는 여기에 곱고 정돈된 보컬과 산뜻한 안무를 매치해 그들만의 서늘하면서도 맑은 서정성을 구현해냈다.

‘Ah-Choo’는 이들이 앞서 발매했던 ‘Candy Jelly Love’나 ‘안녕’, ‘놀이공원’ 등보다 가요적인 드라마틱함을 더했다. “너는 내 맘 모르지” 하면서 4박을 꾹 꾹 눌러주는 빌드업이 어느 새 이조한 멜로디와 함께 “아츄!” 하며 터진다. 이 카타르시스가 노래의 정점이지만, 이후 따라오는 코러스의 멜로디는 또 다분히 멜랑꼴리하다. “너만 보면 해주고픈 얘기가 참 많아" 같은 부분을 듣고 있자면 여지없이 윤상이 과거 90년대에 썼던 감성적인 멜로디라인이 떠오른다. 전작들에 비해 좀 더 이모셔널하고, 극적이고, 다소 예스럽기도 한 매력이 있다. 가사와 함께 들으면 그런 매력이 더욱 커진다. 막연한 설렘보다는 사랑이 마음처럼 잘 안 돼서 낙담하는 화자가 들린다.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꽃가루 알러지의 재채기처럼 털어놓고 마는 모습이 사랑스러운 동시에 안타까운 감상을 준다. 이렇게 층층이 쌓인 복잡한 감성이 ‘Ah-Choo’를 러블리즈의 대표작으로 만든 힘이다.

음향의 훌륭함도 빼놓을 수 없다. 보급형 헤드폰이나 이어폰 기기의 퀄리티가 꾸준히 좋아지고 있는 시대이니, 사운드가 풍성하게 재현된 러블리즈의 노래 역시 다시 즐겨 듣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 전망한다.

from 랜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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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85위
제목
Psycho
아티스트
Red Velvet (레드벨벳)
심사평

과거 사회, 문화 인식에 있어서 여성을 이분해온 차별적 시각처럼 K-POP 걸그룹은 오랜 시간 그 이미지와 콘셉트가 ‘소녀’와 ‘숙녀’로 지극히 한정돼 왔다. 전자는 ‘어린 여성’ 내지는 ‘여학생’의 면모를 강조하는 콘셉트와 스타일링, 후자는 은근하거나 노골적인 성적 어필이 그 방식이었다. 이는 아이돌 역사 초창기, 국내에 그 전통과 시스템을 이식한 J-POP의 전통을 비판 없이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f(x)는 어린 여성의 정체성은 희미하게 남기면서도 성차 너머 엉뚱하고 종잡을 수 없는 과도기적인 ‘청소년’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앞세워 2010년대 걸그룹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제시했다. 그리고 이를 이어받으면서도 ‘레드’와 ‘벨벳’이라는 추상적이고 자체적인 속성을 음악과 콘셉트로 소화한 레드벨벳(Red Velvet)의 음악은 당대 더할 나위 없는 모범이었다.

레드벨벳은 자신들의 음악이 소녀나 숙녀의 모습이 아니라 강한 비트 중심의 댄스음악 ‘레드’나 리드미컬한 그루브와 부드러운 사운드 중심의 ‘벨벳’의 그것이라고 선언하고, 이를 능숙하고 흥미롭게 풀어냄으로써 고유한 이미지를 획득했다. 두 속성이 완전히 분리된 것이 아니라 매 활동에 따라 적절히 교차 및 혼재함으로써 다양한 제3의 경계적 매력을 끌어냈으며, 이를 통해 레드벨벳이라는 그룹의 정체성만이 아니라 마냥 단순하지도, 불필요하게 복잡하지도 않은 그룹의 서사를 쌓기도 했다. 활동 중반기에 이르러 사실상 온전한 이분적 구분이 모호해지고, 레드와 벨벳 콘셉트의 조합이라고 평가받은 트랙 중에서도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2016)과 ‘음파음파(Umpah Umpah)’(2019) 등이 비교적 레드의 영역, ‘피카부(Peek-A-Boo)’(2017)와 ‘Bad Boy’(2018) 등이 ‘벨벳’의 영역으로 분류된 걸 고려할 때 ‘Psycho’는 그룹의 이후 활동과 관계없이 이러한 양면 전략의 연장 선상 위 정반합을 이루는 대단원이자 가장 균형적인 트랙이었다.

음악의 모순되고 이중적인 매력 역시 정점이나 다름없는 결론에 달했다. ‘Psycho’는 앞선 ‘피카부’의 ‘호러’ 콘셉트, ‘짐살라빔(Zimzalabim)’(2019)과 ‘음파음파’의 축제 분위기를 모두 품은 채 지질하고 지독한 사랑이라는 노래의 개별 주제까지 함께 아우른다. 업템포 어반 팝으로서 밝고 안정적인 코드 진행과 슬픈 멜로디, 인트로와 벌스의 미니멀하고 예쁜 사운드와 훅의 강렬하고 특이한 트랩 비트 사운드가 공존하며, 저채도의 영상미와 스타일링이 레이스 패션 및 그루브 있는 안무와 조화를 이룬다. 작품성 및 의의와 별개로 그룹의 최고 히트곡인 ‘빨간 맛(Red Flavor)’(2017)도 달성하지 못한 국내 연간 차트 TOP10의 기록이 대중의 반색을 함께 증명한다.

from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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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86위
제목
Dreams Come True
아티스트
S.E.S.
심사평

세계시장에 진출한 한국 음악의 개념을 넘어 ‘글로벌’의 산업과 인재가 동참하는, 경계를 뛰어넘는 산업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K-POP, 그 출발점에 S.E.S.가 서 있었다.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 및 미국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는 그룹을 만들겠다는 프로듀서 이수만의 야심은 재미교포인 유진과 재일교포인 슈를 한국멤버인 바다와 결합하면서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다. 사운드와 비주얼의 미학에 있어서 S.E.S.는 새로움으로 가득했는데, TLC, 스파이스걸스, SPEED 등 당대 최고의 걸그룹들의 음악과 이미지를 두루 연구하면서 서구와 아시아의 미학이 납득가능한 범위에서 혼재된 도시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Dreams Come True’는 ‘I'm Your Girl’과 ‘Oh, My Love’ 등으로 이미 국내 시장을 정복한 이들이 본격적으로 일본시장에 도전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새로운 변신을 꾀한 곡이다. 당대의 걸그룹들이나 여성 틴팝 스타들이 가벼운 리듬과 경쾌한 멜로디를 바탕으로 일상적인 소녀의 이미지를 구현하는데에 중점을 둔 데 반해, ‘Dreams Come True’는 가요적인 상투성과 거리가 먼 낯선 화성의 전개에 신비스럽고 몽환적인 음원들을 결합시켜 비주얼 뿐만이 아니라 사운드에 있어서도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다.

SM과 S.E.S.는 데뷔반을 통해 충분히 검증된 공식을 굳이 재활용 하지 않고 실험과 파격을 택했고, 이렇게 걸그룹의 안전하고 친숙한 이미지를 일정부분 포기하고 얻은 프로페셔널한 완성도는 후세대 걸그룹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곡은 산업으로서 K-POP의 새로운 방법론을 도모한 곡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핀란드의 작곡가 리스토 아시카이넨이 나일론 비트라는 그룹을 통해 발표했던 이 곡은 해외 시장을 다니며 새로운 사운드를 찾고 있던 이수만에 의해 발견되었고, 결국 유영진의 프로듀싱을 통해 성공적으로 리메이크됨으로써 2010년대 이후 대중화되는 한국과 스칸디나비아 작곡가들간의 공동작업의 효시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from 김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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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87위
제목
Ring Ding Dong
아티스트
SHINee (샤이니)
심사평

설명이 필요 없는 노래.
‘링딩동’이 무슨뜻인지는 몰라도 이 단어가 들리면, 머리엔 이미 "링딩동링딩동 링디기디기디기딩딩딩“이 울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각종 시험기간만 되면 라디오에 무수히 많은 사연과 신청곡이 들어오는 중독성 최고의 후크송이다.

‘수능금지곡’이란 타이틀을 괜히 얻은 것이 아니다. 가사와 노래의 중독성 때문에 이 노래를 저평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꺼내들고 딱 한번만 들어보면 된다. 샤이니는 음악적으로도 끊임없는 도전을 해왔고, 데뷔한지 1년이 조금 넘은 시점 나온 앨범 [2009, Year Of Us]는 대중들 뿐 아니라 평론가와 피디 등, 음악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시절만 해도 아이돌에게서 음악의 완성도를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샤이니와 f(x)의 등장은 음악 좀 안다는 사람들의 시선을 완전히 바꾸게 했다. K-POP은 작사 작곡뿐이 아닌, 그룹자체의 이미지나 퍼포먼스 역시 중요한데, 이 노래 하나로 수많은 대중들에게 샤이니를 각인시켰으며, 샤이니만의 뮤직퍼포먼스가 시작됐다.

‘누난 너무 예뻐’로 데뷔할 때, 온유만 20살이었고, 종현, 키, 민호가 고등학생, 태민이 중학생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더욱 놀랍다. <신동 김신영의 심심타파>에 게스트로 출연하던 신인 시절 한없이 풋풋하고 착했지만,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아티스트로서의 완벽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다섯 멤버들의 톡톡 튀는 개성이 샤이니로 뭉쳤을 땐 전혀 다른 색으로 완벽하게 표현됐고, 개인이 되었을 땐 각자의 열정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사실 이 노래 이후에는 다섯 명의 아티스트로 그리고 샤이니란 아이돌로 K-POP의 역사를 새로 쓰기 시작했다.

링딩동은 단 한번만 들으면, 멈출 수 없는 노래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울리는 링딩동. 하나 더 얘기하자면, 수능금지곡의 양대 산맥 ‘U R Man’을 부른 SS501의 김규종씨 마저 링딩동이 더 중독적이라고 언급했다.

오랫동안 보아왔지만, 신인 때부터 변하지 않고 더 노력하는 14년차 아이돌 샤이니를 진심 존경한다. 이번 ‘Don’t Call Me’ 무대에서의 완벽한 호흡, 그리고 엔딩포즈의 새로운 패러다임까지 만들어낸 K-POP의 신화들이다. 할아버지가 되어도 블링블링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온유, 키, 민호, 태민의 앞길을 응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좋은 음악과 라디오를 들려줬던 고(故) 종현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from 손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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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88위
제목
내 남자 친구에게
아티스트
핑클 (Fin.K.L)
심사평

S.E.S.가 ‘I’m Your Girl’을 대히트시키며 아이돌 걸그룹의 새로운 장(場)을 열었던 98년 초반 무렵, 당시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던 팬들 사이에서 대성기획(현 DSP)에서 곧 S.E.S.에 필적할 만한 엄청난 여성 그룹을 내놓을 것이다’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H.O.T.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던 것이 바로 대성기획 소속의 젝스키스였기 때문에 이 소문은 굉장히 신빙성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후 4인조 여성 그룹 핑클이 대성기획을 통해 데뷔한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S.E.S.를 좋아했던 많은 이들이 이들에게 큰 기대를 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흥미롭게도 젝스키스 멤버가 H.O.T.보다 한 명 더 많은 6명이었던 것처럼, 핑클도 S.E.S.보다 한명 더 많은 4명이었다.

핑클의 데뷔곡 ‘Blue Rain’은 기대만큼 큰 인기를 얻었고 S.E.S.와의 확실한 차별화에도 성공한 노래였다. 그러나 슬로우 템포의 소프트 알앤비에 가까웠던 이 곡은 팬들이 아이돌 걸그룹에게 기대하는 ‘밝고 즐거우며 통통 튀는’ 분위기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는데, 이는 후속곡이었던 ‘내 남자 친구에게’를 통해 확실히 구현된다. 신나는 비트에 달콤한 멜로디, 귀여운 가사를 지닌 ‘내 남자 친구에게’는 노래 분위기에 맞게 차분하게 톤 다운된 의상과 무대를 선보였던 ‘Blue Rain’과는 대조적인, 발랄하고 생기 넘치는 젊음을 잘 보여주는 음악과 의상, 무대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당시 10대 후반-20대 초반이었던 핑클 멤버들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Blue Rain’의 다소 가라앉은 분위기보다는 오히려 ‘내 남자 친구에게’ 쪽의 통통 튀는 분위기가 더 잘 어울렸고, 이는 데뷔곡을 뛰어넘는 ‘내 남자 친구에게’의 큰 성공으로 증명되었다. 이후 후속곡인 ‘루비’까지 연속으로 성공하면서 핑클은 데뷔 앨범에서만 세 곡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H.O.T.에 밀린 만년 2인자에 가까웠던 젝스키스와 달리 핑클은 S.E.S.에 못지않은 인기를 가진 걸그룹으로 자리 잡는다.

‘내 남자 친구에게’에서 핑클이 보여주었던 과장되지 않은 귀엽고 발랄한 이미지는 이후 K-POP 걸그룹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S.E.S.와 더불어 핑클이 K-POP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는 이유다.

from 이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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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9위
제목
Cherry Bomb
아티스트
NCT 127
심사평

국내 최다 인원의 유닛 그룹으로서 이미 NCT 내에서 가장 강렬하고 실험적인 작업물을 내놓던 NCT127이 이전 작업보다 발전적이면서도 유난히 독특한 색을 완성도 높게 구현한 노래다. 기본적으로는 흔히 ‘SMP’(SM Music Performance)라고 부르는 종래 SM엔터테인먼트 음악을 대표하는 고유 스타일 가운데 여러 시기를 아우른 공통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적극적인 장르 혼종과 과격한 퍼포먼스를 기조로 삼고 있으며, 2010년대 이후 노래들의 특징인 묵직하고 꽉 찬 사운드, 추상적인 가사와 안무 역시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

색다른 면모는 모험의 방향과 구체적인 실현에 있어 두드러진다. NCT127과 ‘Cherry Bomb’이 SM엔터테인먼트의 음악 및 노래로는 드물게 올드 스쿨 힙합과 어반 R&B를 중요하고 진지하게 차용한 점, 나아가 이를 다른 요소들과 매우 효과적으로 결합하고 개별 멤버의 랩 파트를 훌륭하게 부각한 점이 대표적이다. 힙합과 R&B를 K-POP에 본격 이식하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무수히 반복되어 왔으나 장르 모범이나 해외 레퍼런스에 대한 흉내 혹은 퍼포먼스 측면의 증명에 그친 사례가 많았다. 그러나 ‘Cherry Bomb’은 특정 하위 장르의 스타일과 매력을 완벽히 해체하고, 이를 소속사와 그룹의 기존 스타일에 독창적으로 녹여 냄과 동시에 현대적인 베이퍼웨이브 사운드 및 이미지를 덧댐으로써 전에 없던 미학을 완성했다.

한 곡에 다수의 작곡가가 참여해 여러 트랙을 조합하는 방식이 아무리 근래 아이돌 팝에 있어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해도, 이 곡에는 무려 9명이라는 작곡가와 그 수에 걸맞은 수많은 트랙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언뜻 각 파트가 분리되어 들릴 수 있는 한계를 ‘Cherry Bomb’은 퍼포먼스와 아트워크로 극복한다. Tony Testa의 안무는 비트를 일일이 쪼개거나 시종일관 힘 있는 동작을 몰아치는 과도한 움직임 없이 부분적인 강조만으로 노래의 추상적인 소재와 사운드의 분절적인 요소를 충분히 격렬하고 상징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균등한 파트 분배를 과감히 포기하고, 마크와 태용의 랩 벌스 퀄리티를 집중적으로 높였으며 그 대신 보컬 코러스의 질감을 비트의 풍성한 질감과 일체화했다. 무엇보다 사운드의 베이퍼웨이브 콘셉트를 뮤직비디오 영상과 아트워크에 미니멀한 콜라주 형태로 옮겨 놓은 연출은 곡의 난해함과 가사의 폭력성을 한층 완화했다.

from 정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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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0위
제목
벚꽃 엔딩
아티스트
버스커 버스커
심사평

아이돌 그룹에 심취해 K-POP에 새로 빠져든 해외 팬이 봄철 한국의 거리를 수놓는 노래를 듣고 궁금해 한다면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크리스마스 시즌에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있듯 한국에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이 10년째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답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버스커 버스커는 2011년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3>를 통해 대중 앞에 처음 등장했다. 우여곡절 끝에 생방송 무대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매 경연에서 인상 깊은 퍼포먼스를 보여줬고 최종 순위 2위의 영광을 안았다. 버스커 버스커만의 스타일로 편곡한 경연곡들도 큰 인기를 모았지만 이들의 진가는 이듬해 발표한 첫 정규앨범에서 드러났다.

<슈퍼스타K3>에서는 흥과 재치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경연용 무대를 주로 선보였다면 첫 앨범에서는 이후 장범준의 솔로 앨범에서 계속 이어지게 될 서정성이 보다 부각됐다. 인트로 트랙 ‘봄바람’부터 마지막 트랙 ‘향수’에 이르기까지 살랑이는 봄의 감성을 가득 담은 앨범은 많은 사람들에게 명반으로 각인됐다.

장범준이 직접 쓴 노랫말은 세계화를 지향하는 아이돌 음악이 미처 어루만지지 못한 한국인들의 정서 깊은 곳을 두드렸다. ‘꽃송이가’ 속 단대 호수, 버스커 버스커 특수를 맞은 ‘여수 밤바다’ 등이 대표적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진 않지만 천안 북일고 벚꽃축제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벚꽃 엔딩’ 역시 한국의 정취를 담았다.

버스커 버스커 1집은 당시 아이돌 편중이 심하던 음원 차트에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2012년 4월 <멜론 월간 차트> 10위 안에 무려 6곡을 올릴 정도였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 가수들이 대개 방송 당시 화제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과 달리, 장범준은 진짜 자신의 음악으로 시청자 외 대중까지 매료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타이틀곡 ‘벚꽃 엔딩’의 인기는 한때에 그치지 않고 매년 봄 다시 차트 상위권에 등장했다. ‘기상청보다 벚꽃 피는 시기를 잘 맞춘다’는 우스갯소리가 따른다. 그 결과는 2010년대를 통틀어 멜론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곡 1위. 유행가를 넘어 문자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가 된 것이다.

아이돌 댄스 음악 중심의 ‘K-POP’에 방점을 찍은 이번 리스트 선정이 ‘벚꽃 엔딩’에 다소 불리할 수밖에 없던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대중음악 전체 지형에서는 더욱 높게 평가될 명곡임이 틀림없다.

from 이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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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91위
제목
Come Back Home
아티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심사평

1995년. 가출했던 청소년들이 음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You must come back home”이라는 가사가 담긴 이 곡 때문이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시대유감’은 가요 사전 심의제를 철폐하는 계기가 됐다. 어떤 음악은 예술이나 대중문화로서의 가치를 넘어 세상이라는 벽에 돌을 던지고, 결국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Come Back Home’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들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이 곡이 발매된 당시 정체성이란 게 없을 나이였던 MZ세대도 서태지와 아이들이 K-POP 역사에 남긴 족적을 안다. 현재 K-POP을 구성하는 패션, 춤, 활동 휴지기, 뮤직비디오, 체계화된 팬덤의 원류를 찾아보면 어김없이 이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렇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빼고는 K-POP을 논할 수 없다.

곡 자체에 대해서는 해묵은 논란이 많다. 음악은 Cypress Hill의 ‘Insane In The Brain’, 안무는 Quo의 ‘Quo Funk’를 연상시킨다. 음악과 안무 모두 유사성이 짙다. 그러나 곡 자체의 세련된 완성도와 확고한 주제 의식은 누구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표절시비를 종식시키고자 이들은 Cypress Hill에게 직접 표절이 아님을 확인받고 심지어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해 두 곡을 번갈아 들으며 표절이 아님을 천명했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4집 [Come Back Home]은 24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당시 한국에서 생소하던 갱스터 랩을 선보였고, 스노보드 룩을 유행시키며 서태지와 아이들은 또 한번 대중문화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게 된다. 방탄소년단이 몰개성화되어가는 청소년들에게 ‘너 자신을 사랑하라’고 외치고, ‘Come Back Home’을 리메이크해 청소년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은 90년대의 BTS였다. 더욱이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만약 서태지와 아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방탄소년단도 없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당시의 뻔하디 뻔한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자극이 필요했다. 어떤 문화도 폭발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비록 짜깁기에 가까운 답습이라고 하더라도 잔잔하게 고여있기만 하던 한국 음악계에 논쟁이라는 파도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은 문화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음악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나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Come Back Home’은 하나의 곡이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력을 증명한 K-POP의 역사이자 사회적 현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from 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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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92위
제목
빛나리
아티스트
펜타곤
심사평

아이돌이 스쿨 보이를 연기하는 것은 심지어 1세대 아이돌 이전의 시대에도 클래시컬한 전략 중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 스쿨 보이가 순정만화의 주인공이 아닌 '너드'의 이미지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 '빛나리'의 배경은 학교가 분명하지만, '빛나리'의 무대에는 아이돌이 학원물에서 으레 연기해오던 '잘나가는' 운동부 주장 쿨가이나, 단정하고 다정한 학생회장 엄친아 대신, 얼굴 가득 주근깨와 홍조를 담고 엄마가 사줬을 오버 사이즈의 의상을 입은 '(널 사랑하는) 찌질이'가 등장한다. 덕분에 평소 단점으로 보였던 멤버 간 신장 격차마저도 무대 퍼포먼스 중에는 다양한 '찌질이'가 사는 학교의 리얼리티를 살려낸 것처럼 보인다.

교과서에 그은 두꺼운 형광펜처럼 깔끔하게 울리는 피아노 리프에 코믹하게 연출된 안무 동작이 눈에 들어오지만, 드라마틱한 퍼포먼스를 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난 팀답게 무대 곳곳에 스쿨 뮤직 드라마와 같은 장면을 배치해 음악과 안무가 균열을 일으키지 않도록 했다. 운동부 쿨가이의 트로피도, 학생회장 엄친아의 상장도 아니지만, 교실 한구석에서 노트에 고백의 말을 조용히 끄적거리던, 귀여운 찌질이의 웅얼거림은 다른 아이돌과는 다른,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청춘의 생동감을 선사한다.

펜타곤은 팀 내 멤버인 후이가 프로듀서인 '자체 제작' 아이돌이기도 한데, 그 스스로도 멤버로서 다른 멤버가 갖고 있는 장점을 충분히 파악하고 끌어내는 후이의 능력은 단순히 같은 멤버라서 알고 있다기에는 다른 셀프 프로듀싱작보다 훨씬 강력한 설득력을 만든다. 다양한 능력치와 캐릭터를 갖고 있는 다인원 그룹을 작품 안에 일관성 있게 담아내는 작업은 걸출한 프로듀서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펜타곤 뿐만 아니라 워너원, JO1 등 10인 이상 다인원 그룹에게 다수의 곡을 주기도 했던 후이는 청량하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곡을 가장 잘 만드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대중이 보이 그룹에게 필수적으로 기대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에너지'임을 생각해보면, 후이가 주로 청량하고 드라마틱한 곡을 만들어왔음에도 대중의 사랑까지 받은 이유에는 바로 그 생동감이 중점적으로 작용한다. 그 생동감을 가장 잘 살린 곡이 바로 '빛나리'였기에 남자 아이돌에게는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차트 역주행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from 조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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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93위
제목
아틀란티스 소녀 (Atlantis Princess)
아티스트
보아 (BoA)
심사평

대형 기획사의 해외 진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태어난 보아는 열다섯에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던져졌다. 30억에 달하는 데뷔 투자액과 유명 작곡진의 의기투합이 드러난 라인업은 한 사람에게 걸린 기대가 기업 수준에 가까움을 의미했고, 온갖 언론은 그의 등장에 관심을 표하며 화제성에 박차를 가했다. 그야말로 보아는 SM의 자존심이자 미래였다. 앞으로 그가 가져올 흥행은 향후 회사의 가능성을 판가름할 척도가 되고, 세계 시장 개척에 있어서도 방향을 결정할 중요한 첫 단추였다.

그로부터 불과 2년 후, 보아는 전공의 히트곡 ‘No.1’으로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라는 유의미한 기록과 더불어 국내에서도 놀라운 성적을 거두며 앞선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당시 보아의 경제적 가치 추산액은 무려 1조에 달했으며 그를 모델로 한 파생 산업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 현상을 두고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회사가 요구하는 상으로 조립하는 K-POP 산업은 구조적으로 수행자가 개입될 여지가 거의 없는, 그저 상품성에 매몰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의견이었다. 대중음악은 태생적으로 보편성을 내포하지만, 일본 진출에 사용된 활동곡 ‘Listen to my heart’나 ‘Valenti’가 안정적인 흥행을 위해 가져온 성숙의 콘셉트는 보아의 실제 나이와는 다소 거리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틀란티스 소녀’는 달랐다. 커다란 고글과 멜빵바지, 포니테일의 소녀의 스포티한 외관에는 장난기가 서리고, 배경으로는 푸른 하늘과 광채가 반짝이는 물결이 지나간다. 시계 소리와 부드러운 건반 선율이 지나고 힘찬 킥스네어가 포문을 연다. 시원한 바람의 촉감이 음향으로 번역된 듯한 공감각적 사운드, 아틀란티스 문명이라는 초현실 소재를 꿈의 목적지로 빗댄 가사, 이에 풋풋함과 노련함이 공존하는 보아의 보컬이 서로 녹아들며 미지의 지형을 그리기 시작한다. 근심이나 걱정은 존재할 수 없는 평화로운 공간, 마침내 이곳에서 우리는 ‘아시아의 별’이나 ‘한류 스타’ 같은 거창한 수식어를 걷어낸 보아의 천진난만하고도 인간적인 면모를 마주할 수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가사는 또래와의 교류보다 숱한 연습과 무대 일정으로 그 공백을 메워야 했던 보아가 잃어버린 소년기를 찾아 떠나는 모험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도 분위기는 한없이 희망차기만 하다. 수많은 후배 아티스트가 커버를 수행하며 생명력을 보존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팬들이 ‘No.1’과 더불어 이 곡을 대표작으로 뽑는 이유는 여기서 명확해진다. ‘아틀란티스 소녀’는 무거운 프로모션의 의의에서 벗어나 보아라는 인물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공통의 지점을 추상하고, 추억이나 동심과 같은 무형의 존재를 생생하게 형상화한다. 여기에 어떠한 목적이나 대가는 없다. 어쩌면 우리는 은연 중에 느끼고 있던 것이다. 그런 순수(純粹)로부터 이미 ‘커버린’ 어른들의 상실감이 일견 구원받고 있다는 것을.

from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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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94위
제목
할 수 있어
아티스트
엔알지 (NRG)
심사평

워낙 당대 좋은 보이그룹이 있었던 탓에 엔알지가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엔알지를 비롯한 몇 그룹이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이들보다 먼저 해외로 진출해 많은 인기를 얻었다. 엔알지는 그 중에서도 앞섰던 그룹이다. 물론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엔알지는 이후 그룹 멤버들의 활동이나 이미지 때문에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는 것이지 그 당시만 놓고 보면 결코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미 데뷔한 ‘하모하모’에서 멤버를 보강해 다시 등장한 것도 그 당시에는 나름대로 파격적인 선택이었지만, 새롭게 합류한 멤버들이 좋은 모습을 보이며 시너지를 내는데 성공했다. 랩의 비중도 컸지만 당시 가요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던 유로댄스 스타일의 리듬과 풋풋하고 젊은 느낌의 에너지가 더해져 좋은 기운이 더해졌고, 이 곡에 이어 후속 활동으로는 발라드 넘버를 선보이며 그룹의 장점을 선보이는데 성공했다. 이후에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다소 소모적이기는 했지만, 엔알지는 화려하고 강한 안무와 비주얼로 눈길을 끌었고 덤블링을 비롯해 격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았다. 비록 표절 논란에서 벗어나긴 어렵지만, 덕분에 중국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멤버 변동의 시간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고, 7년 여의 시간이 지나서야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 사이 엔알지의 곡을 굉장히 많은 변화를 겪었다. 좋게 평가하면 유행에 민감했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그만큼 팀의 색이나 컨셉이 부족했던 것이다. 후에 자유분방하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다시 사랑을 받기는 했으나, 초반에는 패기와 열정 가득했던 모습이 아마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긍정적인 요인이 아니었나 싶다. ‘할 수 있어’가 그러한 열정과 패기의 대표적이자 가장 손꼽히는 곡이 아닐까 한다. 특히나 비슷한 형태, 비슷한 분위기의 그룹이 제법 많이 생겨났음에도 최고라 불리었던 젝스키스와 H.O.T.를 제외하면 가장 좋은 성과를 거둔 그룹으로 꼽히는 편이니 나름의 업적이 더욱 빛을 발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from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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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95위
제목
Fly (Feat. Amin. J of Soulciety)
아티스트
에픽하이 (EPIK HIGH)
심사평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로 가득한 'Fly'의 첫 마디는 '힘들죠'라는 안부 인사로 시작한다. 다른 문화권과 달리 래퍼에게 유난히 '시적 가사'와 '메시지'를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인에게 에픽하이가 신드롬 수준의 인기를 얻는 것은 이미 예견된 바였다. 'Fly'는 시부야케이가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전에 트렌디한 사운드를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로컬라이징했던 곡으로, 당시 인디신에서 유행 중이던 일렉트로니카와 함께 조명되어 브라운아이드걸스의 'L.O.V.E' 등으로 이어지면서 큰 주류를 형성했다.

다수의 대중이 기억하는 에픽하이의 음악 역시 이 시기의 이미지가 크게 작용하는데, 음원 차트의 개념이 미비했던 시절에 디지털 음원의 저력을 보여준 곡으로, 에픽하이에게 이른바 '도토리 쓸어가던 시절'을 열어준 곡이라 할 수 있겠다. 'Fly'의 메가 히트를 시작으로 후속곡이었던 'Paris'와 이후에 발표된 'Love Love Love', 'One', '1분 1초', 그리고 2010년에 발표한 'Run'까지, 일렉트로니카 사운드에 서정적인 가사의 랩으로 구성된 히트곡의 경향성이 이어지며 에픽하이 디스코그래피 첫 번째 페이즈(phase)의 한 축을 구성한다. 'Fly'로 대표되는 에픽하이의 히트곡은 힙합이라는 장르적 특수성이 강조되기보다 대중적인 팝으로서 널리 소비되고 사랑받았는데, 이것은 에픽하이가 아이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기 아이돌을 능가하는 대규모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 시기의 에픽하이가 보여준 '한국인이 사랑한 래퍼'의 전형성과 아이돌적인 소비 방식은 이후 등장한 수많은 아이돌 래퍼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트렌디한 팝 음악과 서정적인 가사의 조합은 블락비와 지코로 계승되었고, '메시지성'을 극대화한 기획으로 각광받은 방탄소년단의 래퍼 RM과 슈가 또한 에픽하이의 음악을 듣고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고 전해져 힙합뿐만 아니라 전체 K-POP에 미친 에픽하이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도 펀치라인을 강조한 랩이 다수의 대중을 쉽게 매료시키는 전략으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 모두가 'Fly'에 도토리를 바쳤던 기억이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Fly'는 곡이 모았던 도토리의 총합보다 더 큰 의미로 K-POP 역사에 남아있다.

from 조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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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96위
제목
말해줘
아티스트
지누션
심사평

대중성으로 이룬 히트였다. 데뷔곡 ‘Gasoline’은 반항아적 성격을 지닌 어두운 힙합이었지만 그다음에 선보인 ‘말해줘’는 쉽고 경쾌했다. 또한 대중음악에서 흔히 접하는 남녀 간의 사랑을 제재로 택해서 조금도 까다롭지 않았다. 힙합을 좋아하는 이들이 주요 청취 타깃이었던 ‘Gasoline’과 달리 ‘말해줘’는 보통 음악 팬들에게 널리 확산될 요소를 확실히 보유하고 있었다.

강점은 단연 후렴이다. ‘말해줘’가 나왔을 때 많은 이가 후렴을 흥얼거렸다. 멜로디와 가사가 간단해 두어 번만 들어도 빠르게 귀에 익을 만했다. 여기에 지누와 션의 스타일이 대조되는 래핑, 남녀의 미묘한 심리 싸움을 다룬 노랫말이 듣는 재미를 더해 줬다. 노래를 작사, 작곡, 프로듀스한 이현도와 지누션 두 멤버는 아기자기한 극을 보는 것 같은 준수한 팝 랩을 완성했다.

객원 보컬 엄정화는 흥행의 또 다른 주역이다. 그녀가 담당한 후렴은 음역이 넓지 않다. 특별한 기교가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가수라면 누구든 수월하게 소화할 파트였다. 하지만 엄정화처럼 표정 연기를 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는 많지 않았다. 엄정화는 방송에서 도도하거나 고혹적인 표정을 지으면서 노래를 불러 ‘말해줘’ 무대를 더욱 맛깔나게 했다. 게다가 당시 자신의 노래 ‘배반의 장미’로 큰 인기를 끌고 있어서 지누션도 상승효과를 봤다.

춤도 ‘말해줘’를 거론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항목이다. 후렴에서 양팔을 흔드는 일명 ‘와이퍼 춤’은 따라 하기 쉬운 몸짓으로 노래의 접근성을 높였다. 그러면서도 백업 댄싱 팀의 춤, 두 멤버가 간주에서 펼치는 ‘레인보’, ‘돌핀’ 등의 힙합 댄스 동작을 통해 역동성도 표출했다.

양현석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후 남성 R&B 트리오 킵식스를 제작하지만 쓰디쓴 실패를 맛봤다. 킵식스 1집의 노래들은 작품성은 좋았으나 마니아 성격이 강했다. 절치부심한 그는 이현도 등을 프로듀서로 기용해 지누션을 내놓는다. 지누션의 1집에서 ‘말해줘’와 역시 이현도가 만든 ‘내가’가 좋은 반응을 얻어 제작자로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지누션과 ‘말해줘’가 K-POP의 중추적 레이블 중 하나인 YG엔터테인먼트의 초석이 된 셈이다.

from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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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97위
제목
누난 너무 예뻐 (Replay)
아티스트
SHINee (샤이니)
심사평

어느 가수에게나 데뷔곡은 중요하다. 특히 긴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가수일수록 데뷔곡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데뷔곡이 가진 강렬한 아우라는 종종 지금 그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지조차 희미하게 만든다. 마치 알을 낳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굳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데뷔곡에서 그 가수의 시작과 본질을 찾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근거는 분명하다. 시간이 모든 걸 바꾼다 해도, 누군가의 첫 시작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가 그렇다. 2008년 데뷔 이후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들이 대중에 보여준 건 K-POP 남성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었다. 세상을 향한 끝없는 분노로 가득 찬, 그 누구보다 강렬한 SMP ‘Ring Ding Dong’과 ‘LUCIFER’도, 폭발하는 에너지를 변칙적인 구성에 기막히게 담아낸 ‘Sherlock’도, 음악과 퍼포먼스 모두 K-POP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던 ‘Everybody’도, 산뜻한 레트로 감성을 절묘하게 포착한 ‘1 of 1’도 모두 샤이니의 것이었다. 그러나 노래의 히트 여부와 상관없이 대중이 가장 많이 기억하고, 또 가수와 팬들이 두 엄지를 드는 샤이니 제1의 이미지는 누가 뭐래도 ‘누난 너무 예뻐’로 대표되는 민트 빛 청량이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청량음료의 탄산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순식간에 솟아오르는 공감각적 심상은, 노래뿐만이 아닌 멤버 구성에서 의상과 뮤직비디오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며 어떤 콘셉트를 소화해도 그 안에는 ‘세련된 소년’이 사는 샤이니 특유의 정체성에 확고한 주춧돌이 되었다. 이후 ‘Dream Girl’과 ‘View’ 이외에도 수준 높은 수록곡들로 명성을 이어간 샤이니의 청량은, 이제는 비단 그룹뿐만이 아닌 K-POP에서 청량을 시도하는 남성 그룹이라면 필수 교양으로 수강해야 하는 ‘청량의 정석’의 위치에 놓였다. 위험하지 않은 소년이 무구하게 들려주는 이 풋풋한 사랑 노래는, K-POP 남성 그룹이 가진 청량한 매력의 원류 그 자체다.

from 김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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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98위
제목
Hug
아티스트
동방신기 (TVXQ!)
심사평

신성처럼 등장한 5인조 남성 아카펠라(?) 댄스 그룹 동방신기. ‘동방의 신이 일어난다’ 라는 뜻의 팀명처럼 그들은 데뷔하자마자 각종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고 데뷔곡 ‘HUG’를 폭발적으로 흥행시키며 본격적으로 대한민국 2세대 아이돌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했다.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싶다’며 달콤하게 사랑을 속삭이는 미소년 그룹에 대중은 환호했고, 동방신기는 단숨에 당대 최고의 그룹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렇기에 ‘HUG’는 여전히 동방신기의 단단한 뿌리로 자리잡고 있다.

이수만 회장과 SM엔터테인먼트는 영리했다. 당시에는 생소한 ‘아이돌 그룹 세계관’을 동방신기에 주입해 SM 유니버스의 초석을 다졌으며, ‘유노윤호’,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최강창민’ 같은 이국적인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멤버 본인 자체의 개성보다는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나아가 일본을 비롯,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세계관을 확립해 멤버 각각의 개성을 살린 기존 1세대 아이돌과 다른 현재 K-POP 아이돌 그룹의 기본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여타 그룹들이 강렬한 댄스곡으로 데뷔할 때, 엄청난 댄스 실력을 숨기고 동방신기가 택한 아카펠라 보컬 그룹이라는 수식어는 전형적인 아이돌 개념을 깨는 파격이었다. 립싱크 중심의 아이돌 그룹 사이에서 ‘보컬’을 내세워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눈에 띄었다. 당시엔 그 실력이 완벽히 다듬어지기 전이었지만, 동방신기는 실제로도 당시 다른 그룹들보다 라이브 무대를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하다. 두려움 없이 실전을 통해 강해지는 무협영화 속 무림고수처럼, 동방신기는 점점 더 강해질 수 있었다.

동방신기는 특히 일본을 공략해 한류 열풍을 몰고 온 주역이 됐다는 점에서 이후 등장한 다른 그룹들의 해외 진출 모범답안이기도 했다. 보아가 뚫었고, 동방신기가 꽃을 피웠다. 이렇게 그들은 SM 엔터테인먼트의 히트품이자 사업 기반으로 자리매김했다. 동방신기의 ‘HUG’는 결코 초심자의 행운 같은 것이 아니었다. 촘촘하게 기획되어 공개된 이 그룹은 꾸준히 K-POP 역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기며 뻗어나갔고, 현재까지도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 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동방신기가 이루어낸 성공은 결국 K-POP의 영역을 아시아 시장까지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고, ‘HUG’는 SM의 성공공식을 확립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일종의 승전곡으로 남을 것이다.

from 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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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99위
제목
교실 이데아
아티스트
서태지와 아이들
심사평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에 힘과 분노가 가득 실려 있었다. “됐어. 됐어.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감독 서태지는 3집의 ‘교실 이데아’에서 주입식 수업으로 점철돼 있으며, 끊임없이 친구들과의 경쟁을 강요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궁극의 가치로 두는 한국의 교육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노래를 여는 가사는 불합리한 체제에 대한 반감을 적나라하면서도 압축적으로 나타낸 명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도 교육에 억눌려 지내던 1990년대의 학생들은 ‘교실 이데아’에 뜨겁게 환호했다. 수많은 10대가 ‘교실 이데아’의 가사를 입에 달고 다녔다. 늘 입시 압박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은 직설적인 일갈에 쾌감을 느꼈다. ‘교실 이데아’는 학생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는 사려 깊은 상담사였으며, 마음속으로만 몸부림치는 아이들의 불만을 대신 얘기해 주는 용감한 대변자였다.

노래의 메시지는 세찬 음악 덕에 강한 기운을 지닐 수 있었다. 육중한 전기기타, 저돌적인 드럼, 어지러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신시사이저와 턴테이블 스크래칭, 한껏 톤을 높인 래핑이 어우러진 랩 메탈 사운드가 가사를 날카롭게 느껴지게끔 해 줬다. 헤비메탈 밴드 크래쉬 안흥찬의 억센 스크리밍 보컬도 노래가 거친 활기를 분출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1993년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앞서 노래마을이 학생들의 고충을 얘기한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를 발표한 바 있다. 이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달리 비주류 민중가요 노래패였다. 게다가 ‘불량제품들이 부르는 희망노래’의 분위기는 발랄했다. 주류 대중음악의 최전선에 위치한 톱스타가 전복적 태도로, 격렬하게 교육 문제를 비판하며 나서니 특별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교실 이데아’는 곧바로 학생들 사이에서 성가로 자리매김했고, 서태지에게는 ‘문화 대통령’이라는 영예로운 칭호가 따라붙게 됐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제도권을 향해 날린 묵직한 펀치는 아이돌 제작자들에게도 영감을 줬다. H.O.T.의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와 ‘열맞춰! (Line Up!)’, 젝스키스의 ‘학원별곡(學園別曲)’ 같이 몇몇 아이돌 그룹이 교육, 학원 문제를 다룬 노래를 내기도 했다. 10대들의 호응과 지지가 핵심 양분이 되는 아이돌 그룹들에게 ‘교실 이데아’가 좋은 소스를 제공한 것이다.

from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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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0위
제목
Trouble Maker
아티스트
트러블메이커
심사평

대중 문화 속에서 남녀 간의 성적 긴장감을 액션 스릴러처럼 팽팽하게 구현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존재했다. 대표적으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2005년 발매 영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가 있겠다. 매력을 무기처럼 쓰거나 서로 잡아먹을 듯 대치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국내에서도 영화나 드라마, 코미디 속에서 숱하게 패러디 되었다. 그러나 2세대 이후 아이돌씬에서 그런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돌 인기에 치명적인 스캔들을 주의하려다보니 자연히 K-POP은 남녀칠세부동석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았다. 백지영과 옥택연(2PM)의 ‘내 귀에 캔디’ 같은 피쳐링 콜라보레이션이 종종 있기도 했지만, 둘 중 한 쪽이 아이돌인 경우면 몰라도 양자가 다 아이돌인 경우는 없었다. 단성의 그룹을 지지하는 일에 익숙한 팬들도 굳이 혼성 무대를 찾지 않았다. 트러블메이커는 이런 배경 속에 2011년 보란 듯이 등장했다. 지금도 가장 섹시한 스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현아와 비스트의 인기 멤버 현승의 만남은 결성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전주의 휘파람과 손가락 튕기는 소리는 첫 마디만 들어도 이 곡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아이코닉하다. 같은 해 좀 더 이르게는 역시 휘파람 전주로 시작하는 마룬파이브의 ‘Moves Like Jagger’가 발매 되어 전국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Trouble Maker’는 그보다는 느긋한 bpm에, 대신 훵크 기타 리듬과 쨍한 리드로 바짝 조여 긴장감을 만들었다. 현승의 안무를 보면 마이클 잭슨을 참고한 부분들이 보여서 그러한 기타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현아와 현승의 쌍무는 발레의 파드되보다는 통속적이고 격정적이지만, 그렇다고 남미 음악의 바차타만큼 끈적거리지는 않는다. 서로 멀어지거나 당겨오고 몸을 기대거나 밀어내는 동시에 그들의 시선은 서로보다는 카메라를 매섭게 응시하고 있다. K-POP 무대의 기본 형식에 충실한 태도다.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부르는 버스를 지나 현승의 테너 보컬과 현아의 알토 보컬이 유니슨으로 겹치며 한 목소리가 되는 코러스에 닿으면, 두 끼 많은 아티스트의 팽팽한 매력 대결이 일순간 프로페셔널들의 치밀한 합동으로 전환된다.

트러블메이커의 성공 이후 유사한 혼성 유닛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원조의 아성을 뛰어넘은 팀은 아직 없다. 그만큼 이들의 임팩트가 강했다는 뜻일 것이다.

from 랜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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